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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Aug 08. 2023

임신도 벼락치기 Ep. 6 - 자궁경과 시험관 1차

인생 첫 프로포폴과 스치듯 안녕한 배아들

시험관을 시도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난자 채취일 것이다. 호르몬 주사와 질정을 통해 난자를 성숙시킨 후에 자궁경부를 통해 시술 도구를 넣어서 난포를 터뜨려 난자를 채취하는 것이다. 자궁을 뚫고(?) 채취를 하는 시술인 것인지 무엇인지, 복수가 차는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시험관 카페에서 눈팅을 열심히 하던 나로서는 ‘수술방’에 처음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2020년 12월 14일 오전 9시 40분경부터 수술실에 들어갔다. 남편은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은밀한 방에서 영상을 보며(!) 씨를 모아 제출하였다고 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들 생일이다.) 수술대에 처음 누워보니 생각보다 작았다. 아담한 이 수술실에 잘 웃는 여자분들 서너명이 나의 자세와 위치를 지정해주고 말을 걸어주고 팔에 라인을 잡아주는 과정이 생경했지만 싫지 않았다. 친절한 응대 덕에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로 황과장님께서 오시길 기다렸다. 과장님이 오셨고 내 다리 아래 쪽에 있는 의자에 앉으시기 전에 나를 보며 눈웃음을 날려주셨다. 아니 왜 저 웃음은 늘 기분좋을까?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마취과 선생님께서 팔에 수면마취제를 넣겠다고 말하셨고 이내 차가운 기운이 내 오른쪽 팔을 사아악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차가움이 목 부근에 닿았다고 생각할 때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깨 보니 회복실이었고 11시 15분쯤이었다. 오, 수면마취란 이런 것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 마취약이 말로만 듣던 프로포폴인데, 나는 “오마이갓 내가 우유주사를 맞았다니!!! 나도 이제 유명인이여!“ 라고 남편에게 메세지를 보내면서도 프로포폴 맞는다고 잠을 푹 자는 것 같지도, 특별히 더 개운하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프로포폴에 목말라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아무튼 좀 묵직하다 싶은 정도의 생리통이 느껴졌지만 워낙 생리통이 심했던 나에게 이 정도 통증은 견딘다는 표현도 필요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나는 간호사님의 안내를 받아 일어났고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현 상황을 알리면서 상담실로 갔다. 남편이 병원 한 켠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와 함께 상담실에 들어갔고 간단한 안내를 받은 후 귀가하였다.


집에서 고양이를 주렁주렁 매달고(우리집엔 총 네 마리의 냥님이 계시다) 한참 자고 있는데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난자 채취 후부터 복수, 복통, 두통 등 난소 과자극 증상이 심해지면 이온음료를 듣고 처방약을 복용하라. 출혈이 많아서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어지러워지면 내원해야한다. 적정량의 질출혈은 정상이지만 생리혈처럼 많으면 병원 와라. 부부생활, 탕목욕, 과격한 운동 등은 2주 정도 삼가라 등등. 착하게 지내라는 말이었다. 그 날은 별 증상 없이 잘 보냈기에 나는 내가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숨이 좀 차더니 배가 뻐근하게 아팠고 복수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원해서 여쭤보니 이 정도 복수는 복수 천자를 할 정도도 아니고 그냥 버텨야한다고. 이온음료를 많이 마시라고 하였다. 그래 뭐, 숨은 조금 찼고 배불뚝이가 되었지만 딱히 많이 힘들지는 않으니까.



난자채취 결과를 들어보니 정말 놀라웠다. 25개 난자를 채취했고, 성숙난자는 무려 20개였으며, 배아는 18개나 만들어졌고, 13개의 배아는 매우 등급이 우수하다고 하였다. 내 자궁 나이가 25살이라더니(실제 나이는 이보다 10년 가까이 많았음) 난자가 많기도 많았다. 배아는 5개 5개 4개 4개 총 4팀(?)으로 나누어 냉동한다고 하였다. 신선이식을 기대해보기도 하였으나, 황과장님은 그럴 계획이 없으셨는지 자궁경을 하자고 하셨다. 내 자궁에 있는 작은 용종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용종이 착상을 방해할 수 있고, 또 용종을 제거하면서 자궁 벽을 조금 긁어놓는데(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 착상이 더 잘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 그래요...? 착상이 더 잘 된다구요...? 그러면 진짜 임신이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임신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추진력이 묘하게 용솟음쳤다.


자궁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병원을 하루 두 번 방문해야한다. 12월 31일 12시 30분 경 병원에 도착하여 자궁경부를 여는 질정을 넣었다. 병원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 돌아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은근한 생리통과 함께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슬금슬금 왔다. 다시 시간 맞춰 병원을 갔고, 14시 30분 경 수술복으로 환복한 후 자궁경을 시작했다. 역시나 목까지 타고 올라온 차가움이 느껴지기 무섭게 나는 잠에 들어버렸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회복실이었다. 배와 다리에 검붉은 소독약이 바구바구 발라져있었다. 빨간 소독약을 보니 약간 정신이 번뜩 들긴 했지만 시험관의 시작 치고는 괜찮은 느낌이었다.



자궁경 후 첫 생리가 지나갔다. 생리 시작과 함께 병원에 내원하였고 또 새로운 주사와 질정을 처방받았다. 이제 나는 내 배에 주사 놓는 건 프로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늘 즐거웠으므로 주사와 질정도 즐거이(?) 하였다. 2월 3일 경 초음파로 난소의 현황(!)을 관찰하시더니 2월 8일 첫 배아 이식을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식하기 전날인지 그 전전날인지 난포터지는 주사를 맞았던 것 같다. 이식 당일 첫 타임으로 이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8시 30분보다 더 이르게 병원에 도착하였다. 화장실을 너어어어어어무 가고 싶었는데 방광에 소변이 땐땐하게 차 있어야 방광이 자궁을 눌러져서 카테터가 들어갈 때 안아프다고 하였다. 자궁이 굴절되어 있으면 카테터가 자궁을 쿡쿡 찔러서 아프다고, 참으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당황했었다 ㅋㅋㅋ


한시간 정도 기다린 후 9시 30분 쯤 수술실로 옮겨졌고 9시 45분에 남편에게 “이식 끝났어!”라고 말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누워있었더니 황과장님께서 들어오셨다. 수술실 왼편에 있는 별도의 방(?)에서 한 의료진께서 아주 느리지만 신중하게 배아 2개를 긴 카테터 안에 옮기는 작업을 한 것 같다. 이내 그 카테터는 황과장님께 전달되었다. 과장님께서 약간의 화이팅을 담은 말씀을 해주셨고 배아 이식이 시작됐다. 터질 것 같은 방광을 초음파로 꾸욱 누르며 카테터를 진입시키는데! 나도 모르게 “으아..;;;;”하는 소리가 났다. 과장님이 “소변이 너무 마렵죠~ 근데 덕분에 초음파도 잘 보이고 아주 좋아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하였다. 초음파 결과가 보이는 모니터를 나도 볼 수 있었고 무언가가 살과 살 사이로 주우우욱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식합니다~” 정도의 말이 들렸다. 모니터를 보니 카테터 끝 부분에서 무언가 물 같은 것이 미세하게 나오는 것 같더니 이내 카테터가 슉 빠져나갔다. 늘 밝은 과장님께서 내 팔을 꾸욱 잡아주시면서 “기대하고 있을게요오오 :)”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명랑하게 “네~”라고 말했다.


아니 근데 잠깐, 뭐여? 이게 다여?


다가 아니었다. 바로 일어나지 말고 40-50분동안 누워 있다가 가라고 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변 보는 것도 여전히 금지였따..... 진짜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은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분만 더, 10분만 더!!! 하다가 간호사님께서 이제 일어나라고 말씀해주셔서 냅따 화장실로 뛰쳐갔다!!!! 진짜 세상에 이렇게 화장실 가고 싶을 수가 없었다. 소변을 무사히 보고 다시 사무실에 가서 일을 했고,  내 인생에 이런 새로운 경험이 있다는 것에 신기해 하며 쫑알쫑알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컸다. 예감인지 희망인지 착상이 안 될 것 같은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나는 내 느낌을 믿으면서 두려운 마음을 가다듬기로 하였다.



2월 18일 경에 피검사를 했고 수치는 1.8 이었다. 이 사실을 전해주시는 황과장님의 당황스러운 눈빛이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기억난다. 이건 뭐 임신도 아니고 임신 아닌 것도 아니여! 라는 느낌의 표정이었다 ㅋㅋㅋㅋㅋ 아빠와 함께 땅을 보러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일정을 마친 후에 남편은 남편차로, 나는 아빠차를 타고 음식점으로 가고 있었다. 아빠에게 시험관을 했는데 수치가 1.8이 나왔고 나는 느낌상 안 될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더니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될 것도 된다“라고 하셨다. ”엄.. 저는 간절하게 바라지 않는데요...? 전 지금의 삶도 좋아요. 아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요!“라고 말했더니 아빠는 그래도 마음을 ‘된다는 쪽’으로 가져보라고 하셨다.


며칠 간격으로 또 피검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1.4가 나왔다. 나에게 설명을 해주시는 간호사님도 으잉,,,? 이러셨다. 이 수치가 0이 되어야 임신이 끝나는 것이고(시작은 했는가?) 다시 시험관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하였다. 3으로 시작해서 임신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질정과 같은 약을 계속 처방받았고 나는 마실 수 없는 맥주를 계속 마시고 싶어했다 ㅋㅋㅋ 하루이틀 뒤 또 피검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1.7이 나왔다. 간호사님이 이건 또 뭐냐며!!! 어이없어 하셨지만 0을 볼 때까지 피검사를 계속 다녔고 결국 0이 나왔다. 그러자마자 바로 생리를 시작했고, 나는 드디어 맥주를 들이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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