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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Aug 23. 2023

임신도 벼락치기 Ep. 7 - 시험관 2차

수정이와 정란이

시험관 1차와 자궁경을 마치고 나니 두 달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5월 1일에 2차 이식 날짜를 잡았다. 5월 7일이었다. 이식을 하고나서 착상되기 전까지는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황과장님의 말씀에 5월 7일이 오기 전까지 빡세게 운동을 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다니던 필라테스와 헬스를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출근하기 전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시절이라 새벽 5시 반 쯤 일어나서 6시 반까지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다가 8시에 필라테스를 하고 사무실로 가는 것이 나의 하루 일정이었다. 이 또한 약 3~4번 밖에 허락되지 않는다 하니 운동을 꽤나 좋아했던 나로서는 참 아쉬웠다. 이렇게 좋아하는 운동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직장도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마음이 까끌거렸지만 어느 새인가 내 마음은 "그래, 기왕 시도한 거 끝까지 가보자"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5월 7일이 왔다. 이 날도 나는 가장 첫 타임인 9시로 시술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8시 반부터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이 날은 황과장님이 쉬는 날이었는데 중요한 수술/시술들을 모두 아침에 다 하고 쉬러 가실 예정이었다고 했다. 8시 45분쯤 시술 준비를 시작했다. 수술복을 입고 팔목에는 나의 인적사항이 적혀있는 팔찌를 둘렀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소변을 참아야했는데 이 날은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나는 시술 받기 전까지 남편과 라인으로 대화를 하며 "애기 생기면 잘 부탁해-"라고 말했다. 그 대화를 한지 10분 정도가 흐른 후 모든 시술을 마쳤고 남편에게 "다해떠"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시험관 2차는 생각보다 통증이 좀 있었다. 방광이 꽉 차있지 않아서인지 자궁경부로 무언가가 들어가는 것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러나 과장님은 "배아 상태가 아주 좋아요~ 저번에 넣었던 것보다 훨씬 좋아요~"라고 말씀해주셨고 나는 1차 때 보았던 그 모니터를 통해 내 뱃속에 무언가가 들어와서 아주 미세하게 꾸물거리더니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모니터를 보는 순간 이마 쪽에 '엇!'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술을 마치자마자 회복실에서 수액을 맞았다. 무슨 수액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아무튼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영양제였다. 혈관이 잘 잡히지 않아 손등에 바늘을 넣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한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손등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며 이번 시술은 어땠는지, 떨었고 오늘은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왠지 모를 예감에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배에 왼쪽 손을 올려놓은 채 배아들(?)에게 말했다.


'아빠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나중에 뭐 필요하면 아빠한테 해달라고 하렴. 엄마는 뭐를 해주기 보단... 그냥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너네가 둘 다 찾아올지 아닐지 나는 잘 모르지만, 기왕 올거면 둘 다 와. 쌍둥이 가즈아ㅏㅏㅏㅏㅏ'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이 "우리집에 같이 놀아줄 냥이 형제가 넷이나 있다고 얘기해 줘"라고 하였다. 나는 "어 아라써 기다려바" 라고 보내놓고 다시 미간에 정신력을 집중하며 배아들에게 전달했다.


"해써" 라고 답장을 보냈다.



시험관 시술은 3회까지만 건보료 지원이 되기 때문에 나는 3회까지만 시도하려는 마음이었다. 소득기준을 건보료 기준으로 잡다보니 나는 건보료 말고는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남편의 회사가 개인사업자로 운영되던 시절이라 직장가입자보다 훨씬 많은 건보료를 납부해야하기 때문인데,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그 기준을 따라 우리 두 사람의 건보료를 합치면 소득이 상위 10% 안에 들어가는 가정으로 분류가 된 탓이다.


그런데 3차까지 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밤, 꿈에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가 눈 앞에 나타났다. 진주 같은 색깔을 가진, 가장자리가 보송해보이는 두 동그라미였다. 큰 동그라미가 잘 자라고 있는 눈치였고, 작은 동그라미는 조용히 내 앞에 떠있었다. 그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 둘과 내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인지는 기억하지 못한 상태로 이마만 겨우 빼꼼 깬 나는 옆에 자고 있는 남편에게 "오빠.. 나 꿈에서 수정란 두 마리 만났어.."라고 했다. 남편이 자다가 응? 하더니 푸하하하하하하하 웃었다. 다시 잠에 빠지기 직전 온 힘을 모아모아 "아냐 진짜야.. 나 걔네랑 말도 했어..."


아침이 되었다.


수다가 많은 나는 이 몽롱한 꿈을 절친들이 있는 단톡방에 풀었고

우리는 이 수정란들을 하나는 수정이, 하나는 정란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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