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영진 4편
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꿈꾸는 소년인 줄 알았던 우리 김최애의 치밀한 계산과 장기적인 안목, 저번 편 읽었던 사람들은 기억하지? 내가 단언코 말하는데, 글로 표현된 건 10분의 1도 안 돼. 최대한 짧게 정리해서 알려주려고 하는데 최애가 한 말들이 다 중요한 개념들이라서 저번 편은 읽는데 노력을 좀 들였어야 했을거야.
다행인 건 뭔지 알아? 이번 편은 최애의 머릿속 계산보다는 마음 속 태도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야. 저번 편이랑 같이 곁들여서 읽다 보면 단순한 아티스트가 아닌 안과 밖이 잘 조형되어 있는 하얀 도자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거야. 기존에 네 편으로 마치려고 했던 김영진 덕터뷰는 다섯 편이 되었지만 히히히히히히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김영진 편
호황에도 침체에도 물들지 않는 이제염오(離諸染汚)의 아티스트
그 많던 <월간미술> 표지그림은 누가 다 먹었을까?
이번 단락은 내가 끼어들 구석이 없어. 아티스트들에게 적나라한 메세지가 될 수 있어서, 최애의 목소리만 담아볼게.
김최애: 제가 미술시장 붐을 딱 3번 겪어봤어요. 첫 번째는 2008년도였어요. 그 때는 제가 학생 때였으니까 선배들하는 거 멀리서 지켜보는 정도였지요. 잘 나가는 분들은 뚜껑 열리는 차들을 막 타고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문제가 똑같은 것 같아요. 목돈이 확 들어오면 착각을 하잖아요. ‘내년에도 이럴 거다.’ 그래서 벌어둔 돈을 대부분 유용하더라구요. 후배인 저는 좋았죠 형들이 밥 사주니까요. 2015년 정도에 좋은 때가 또 왔었어요. 그때는 다른 작가들처럼 술자리도 가고, 로비도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용기 내서 그런 것들을 다 해봤는데 저랑은 안 맞더라구요. 결정적으로, '이렇게 술을 마시는데 그림은 언제 그리지?'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그래서 공동 작업실 같은 곳도 안 가고 개인 작업실에서 쭉 작업만 했죠. 당시 대학원에서 교수님이 내신 숙제가 있었어요. <월간미술>이라고 아시죠? 그 표지에 나왔던 작가들이 누구고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다 조사해오라고 하시는 거에요. 이거를 왜 시키시나 하면서도 일단 해봤는데 계속 활동하는 작가들이 거의 없어요. 선생님은 ‘미술 시장은 엄청 힘든거야’라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을 수 있는 건데 저는 ‘아 꾸준히 해야하는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매년 라이징 스타가 나오잖아요. 근데 그걸 지속하는 것이 정말 힘든 것 같아요. 태양 같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 계속 결과물을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사람이 태양은 아니잖아요. 나이 먹고 한계점도 있고 하다 보니까 그런 데서 무너지기도 하더라고요. 2008년도 그렇고 2015년도 그렇고 잘 나가셨던 분들 그림이 옥션에 헐값에 나오는 거 보면 속상해요. 사람들은 이 낙찰 가격으로 그림의 가격, 그러니까 채권 가격을 확인할 테니까요.
Fine Art의 단면 그리고 뒷면
김최애랑 대화할 때 먹던 요즘 유행하는 과자야.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납작하게 생긴 건데, 내 최애는 이 과자의 좁고 얇은 옆면은 사람들이 보는 '순수예술'이고 그 뒤의 길고 넓은 부분이 예술이 현실과 더불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거라고 예시를 들어주었어.
김최애: 사람들은 '예술은 순수해'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데 이 모든 것이 경제의 일부분이에요. 그림은 무기명 채권 같은 거거든요. 미술품이라는 게 정말 이렇게 (과자의 좁은 쪽을 가리키며) Fine한 쪽도 있기는 한데, 이 또한 일반 경제의 한 부분일 뿐이라서 (과자의 넓은 부분을 가리키며) 경제 논리로 돌아가는 속성들이 훨씬 많아요. 저는 작(作)만하는 거고요. 품(品)으로 되는 순간 작품이 되는 거죠. 제가 Fine Art를 했더라도 이 그림이 상품으로서 시장에 나가는 순간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욕망의 세계로 가는 거라고 봐요.
엘덕후: 아 그러니까 작가님께서는 '작품'이라는 것은 채권이라고 보시고, 2000점의 작품을 그리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단순히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해내는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까지 생각이 뻗어간 거네요.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호당 단가 계산식을 고민하시면서 동시에 콜렉터의 미래 수익까지도 고민하신거구요. 그러다보니 작품을 화랑가로 재매입하는 것도 고려하시는,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가 하시는 거네요.
김최애: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해요. '남의 돈을 떼어 먹으면 쌍욕을 먹는다.' 저는 아직도 그림이 팔릴 때 '마티즈보다 더 비싼 그림인데 저걸 사시네' 이런 생각 많이 해요. 제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제가 열심히 작업한 시간을 그분들이 인정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비싼 그림을 사가셨는데 '죄송합니다, 작전주 걸리셨습니다!' 이럴 수는 없잖아요. 콜렉터 입장에서 예쁜 그림을 봐서 기분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 분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그 천만 원을 벌어온 거잖아요. 그 돈이 뭐 어서 나왔겠어요. 어느 간호사 분이 그림을 사신 적이 있거든요. 간호사 월급, 얼추 검색하면 나오잖아요. 근데 너무 한 달 치 월급을 넘는 그림을 사시는 거예요. 원래 잘사시는 분인가 의심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진짜 월급을 모아서 오신 거예요. 와, 진짜 그걸 딱 보고 나서 '작품 가격 관리를 안 해주면 나는 나중에 정말 희대의 사기꾼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내 돈 귀하듯 콜렉터 돈도 귀한 줄 아는 우리 김최애. 작업만 하기도 바쁜데 이렇게 콜렉터의 이익까지 생각하면서 미술은행 역할을 자처하는 내 최애의 진심, 누가 쫌 널리널리 퍼뜨려줘!
평론 - 동화 같은 아카이브, 김영진의 유토피아
김영진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작가노트이다. 삶의 다채로운 기록을 작업으로 옮겨오는 까닭에 기억은 기록이 되고, 경험은 그림이 된다. 무거운 서사나 개념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희망의 메시지로 풀어내는 것,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풍경>, <자유소생도>, <도원의 꽃> 연작들은 다음 시리즈의 영감이 되어 서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이룬다. 작가노트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내와 가족 이야기이다. 외로움을 채우는 서로 간의 관계, 사색하며 도란도란 행복을 나누는 시간들, 사랑으로 샘솟는 동화 같은 끄적거림은 작품에 왜 어린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20살을 갓 넘긴 청년 시절,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자유소생도를 통해 따스한 온기로 되살아난다. “어머니에게 로부터 시작된 여명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져서 황혼만이 남더라도 당신이 보내준 파랑새와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을 기억한다면 나는 언제든 새로운 날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2022년 9월 21일 노트) 색에서 사랑을, 빛에서 에너지를 찾는 작가는 보색관계에서 오는 과학적 인상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는다. 모든 지구상의 에너지는 빛에서 오기 때문이다. 작품 안엔 검은색이 없다.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들을 명도 대비와 발색 기법을 통해 발견한다.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확장하는 방식은 ‘그림이 희망의 발견’이라는 바람과 맞닿는다. 작가에게 조형적 에너지를 주는 아카이브는 형식과 이미지의 실천을 통해 ‘걸작(Masterpiece)을 남기려는 의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 안정현(미술 평론가, 예술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