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지난 편에서 스스로 '못 배웠다'는 생명과학 석박 수료생의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작업에 대한 고민 잘 읽고 왔어? 오늘은 서최애의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집'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해. 서유영은 뭐다? 집이다. 집은 뭐다? 서유영이다. 저번에도 한 번 주입식 교육 했을거야. 오늘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서유영의 집은 뭐다? 나랑 너랑 '우리'다. 여기까지 한 번 가보자.
이번 편은 서최애의 현재와 과거의 작품들을 보면서 '집'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건지 나누려고 해. 쓰다 보니 나도 정리가 되면서 우리 최애의 작품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더라. 약간 도슨트 된 느낌, 뭔지 알지? 잘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긴장되고 떨리지만 차근차근 풀어볼게!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서유영 편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나와 우리의 자화상
네 시작은 수채화였으나
엘덕후: 작가님, 처음 그린 그림이 뭐에요?
서최애: 수채화에요. (핸드폰을 슥슥슥 만지면서)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그렸어요.
엘덕후: 수.. 수채화요..?????? 수채화는... 갑자기 너무 맑고 예쁜..데요???
수채화에서 마띠에르까지 대전환 무엇? 핸드폰에서 무언가를 찾던 서최애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림이 뭐게?
엘덕후: 헐!!!!! 진짜 신기해요! 다른 작가님 그림 보는 거 같은데요?
서최애: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그렸어요. 그런데 수채화를 하면서 왜 사진이랑 안 똑같냐고 짜증내고 그랬죠. 완전 제 성격 보이죠.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그림은 그림 같은 맛이 있어야지. 사진이랑 똑같이 그리고 싶으면 그냥 사진기를 하나 사.'
엘덕후: 헉 이건 너무 팩트폭행인데요?
서최애: 남편도 극 이과거든요. '너 지금 되게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죠.
네 나중은 심히 '집'이리라
엘덕후: 스트레스의 원천이 사진인 것 같네요. 사진이라는 원본이 있으니까 비교하게 되셨군요.
서최애: 네, 맞아요. 비교할 대상이 없었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냥 내 머릿속에서 온전히 나온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다음에 바로 아크릴로 넘어갔어요.
그러면서 최애가 우리한테 보여준 작품이 뭐게?
엘덕후: 오잉?? 처음부터 집이 있었네요??? 이거 뭔가 봤던 작품 같은데. 작가님 프로필이었나 인스타그램이었나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서최애: 이게 처음 그린 거예요.
엘덕후: 이 작품은 작가님이 어제 그렸다고 해도 믿겠어요! 작가님의 집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일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첫 작품부터 너무 놀래서 헐 / 대박 / 뭐지 3 단어로 돌려막기 하는 중)
서최애: 수채화 했다가 오일파스텔도 잠깐 했다가, 결국 아크릴을 시작했는데 아크릴 처음 시작한 저 때부터 계속 집만 그린 거에요.
자화상으로 시작된 '집'
서최애: 이 작품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작품이에요. 제가 실험실 생활을 그만두게 되면서 세상에 나와보니 너무 다채롭고 재미있는 거에요. 여기 보이는 주황색, 파란색 이런 것들이 제가 몰랐던 세상을 표현한 거에요. 지금까지는 실험실이라는 검정색 틀(테두리)에 갇혀 살았던 거지요. 실험 빼고는 아는 게 한 개도 없는 제 모습이에요.
엘덕후: 그럼 이건 자화상이네요?
서최애: 네, 원본이 없는 그림. 나로부터 원작을 만들게 되니까 제 이야기를 담게 된 거에요.
우리 최애가 현재도 그리고 있는 이 '집'이 2017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어. 그리고 처음 그린 '집'이 '서유영'이었다는 것도.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그림에 비춰보던 우리의 최애는 시간이 흐르면서 '무리 속의 자신'을 보기에 이르러. 자자, 본격적인 '우리' 파트 들어가기 전에 귀여운 거 하나만 더 보고 넘어가자. 모든 인간에게 '가장 첫 우리'인 '가정'을 담은 그림이거든.
서최애: 제가 집을 그리고 있으니까 우리 애도 집을 그려보겠다면서 옆에서 끄적끄적한 게 너무 귀여워서 제가 똑같이 따라 그렸어요.
엘덕후: 어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얘네들도 다 모자(=지붕)가 있네요? 눈(=창문)도 지금이랑 똑같네요!
서최애: 네, 여기 지붕이 다 있어요. 이때부터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군요 제가........ (좌중폭소)
"그렇지만 난 이렇게 반짝이고 있지 않니?"
서최애는 의대를 목표로 했었대. 그런데 굳이 목표했던 학과나 성적을 묻지 않아도 서최애랑 대화 몇 번 하면 '아, 공부 잘했던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 정도로 총명해. 그런데 어느 순간 남들이 말하는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자신을 보게 되었나 봐. 사회 속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로의존법칙>이라는 작품은 거기서 탄생해.
서최애: 우리는 소위 '진짜 성공의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좋은 대학을 가려면 이 학원을 다녀서 과학고를 가고 수능을 보고 - 이런 루틴한 길들을 밟으려고 하죠. 우리나라가 특히 심한 것 같아요. 이 작품 제목은 경제학 용어예요. "정도(正道)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밟다 보니 길이 된 것이다"라는 개념을 담고 있어요. 저는 의대를 가려고 했는데 사범대를 갔고, 선생님이 되지 않고 또 자연대를 갔어요. 대학원 면접 볼 때 거의 혼나듯이 본 기억이 있어요. 사범대 나와서 선생하지 않고 왜 자연과학으로 오냐는 거죠. 지금은 '너 왜 과학 안하고 그림 그리냐' 이런 소리도 듣구요. 전 늘 약간 주류에서 벗어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여기 빨간집, 노란집은 푸른색 행렬을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고 저이기도 해요. 저는 이 아웃사이더 집들을 통해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반짝이고 있지 않니?" 하고 말하는 거에요.
얘기할 땐 이 작품의 제목을 몰랐는데 덕터뷰를 정리하다보니 이 작품인 것 같아. <경로 의존 법칙> 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작품명이더라고. 경로 의존 법칙이 뭔가 하고 찾아보니까 "한 번 경로가 정해지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성과 경로의 기득권 때문에 경로를 바꾸기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해지는 현상을 ‘경로 의존(path dependency) 법칙’이라고 한다. "라고 네이버 지식백과가 친절히 알려주더라.
엘덕후: 어떤.. 세상이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키워드와 자아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깨달으신 부분들을 그림에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서최애: 네, 그리고 '나'라는 한 개인에 대한 사유가 사회를 향한 생각으로까지 넘어가게 되는 거에요.
엘덕후: 설명을 듣고 나니 작가님 작품들이 자존감이 높은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 스스로에게 '나 이렇게 반짝여'라고 말해주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 부분을 본받고 싶네요.
처음에는 실험실을 갓 나온 밍밍한 하얀색의 집에 자아를 투영했다면, 점차적으로 '타인과 우리'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그 '우리'가 만들어내는 흐름 속에서 나는 어느 모습으로 있는지를 그림으로 표현해온 서최애. 우리 덕후들도 이제 <우물 안 개구리>, <즐거운 나의 집>, <경로의존법칙>이라는 작품으로 그 변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거야. 그러면 다음 편에서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우주 질서까지 뻗어나가는 서최애에 대해 더욱 깊이 덕질하면서 서유영 세계관 끝판왕이 되어보자!
서유영의 작업노트 - 봄빛 스며들다 6
반짝이는 별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은하수를 만들듯이, 풀, 꽃, 나무들이 모여 아름다운 자연을 이루듯이 하나하나 소중한 개인이 모여서 '우리'가 된다. 꽃잔디, 겹벚꽃, 이팝나무, 양귀비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봄꽃과 나무에서 컬러를 따왔으며, 색채의 그라데이션과 집 구성의 흐름(rhythm)을 통해 각기 다른 개인들이 관계를 맺고, 의견 차이를 조율해가며, 소통을 통해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닮아가는 과정을 표현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