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저번 덕터뷰 서유영 1편 잘 읽고 왔어? 과학자의 길을 걷던 우리의 서최애가 미술을 접하면서 과학자 때의 성향을 미술에도 접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지. 과학자로서 예상하는 결과값을 도출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실험을 설계하듯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담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 맨 마지막 작가노트 잘 읽은 사람은 봤을 거야, 캔버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마띠에르는 결코 쉽지 않은 울퉁불퉁한 우리의 환경을 표현한다는 거!
오늘의 주제는 조색이야. 서최애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색깔들은 그 때 그 때 조색되는 거래! 한 번 쓴 색은 연이어 쓰지 않는 습성 덕분에 늘 새로운 자세로 조색을 한다는 서최애의 작업 방식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보자!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서유영 편
조색, 너 임마 일루와 딱 대!
선명한 에너지를 가득 담는 조색 과정
어떤 작가들은 트레이드 마크처럼 쓰는 색깔이 있지. 그런데 또 어떤 작가님들은 다양한 색을 쓰되 본인만의 스타일을 부각하기도 해 (-_-)v 내 최애는 후자의 작가인데, 귀여운 형태의 '집'이라는 오브제에 다양한 색깔을 입히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한다고 해.
서최애: 저는 그림에 들어가는 색이 다 다르고 그 때 그 때 조색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만약에 제가 이번에 작품에 보라색을 많이 썼다면 그 다음 작품에 보라색을 연달아 하지는 않아요. 일부러라도 한 텀을 건너 뛰어서 해요. 왜냐하면, 작가가 그릴 때의 컨디션과 마음 상태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보라색이어도 보라색마다 느낌이 너무 다르거든요. 조색할 때 본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그 전체적인 느낌이 완전 달라지더라구요. 조색을 할 때마다 제 감정과 상태가 투영되는 거죠. 이번에 엘디프 오리지널과 계약한 작품 중에 노랑에서 파랑으로 가는 그 작품 하나가 있어요. 그 작품을 20호 버전으로도 해보고 싶어서 다시 하고 있는데 색이 맘에 안 들어서 여러 번 고쳐가고 있어요. 아까도 아침에도 작업하다가 왔어요. 울퉁불퉁한 면에 바르게 붓질하는 건 이제 어렵지도 않게 느껴질 만큼 많은 훈련이 됐지만 늘 조색에서 시간을 거의 다 보내요.
서최애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 명랑하면서도 선명한 색감을 느낄 수 있을거야. 내 최애의 긍정적이고 밝은 감정 상태라고 생각하니 더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 최애의 인터뷰 속에서 거론됐던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가는 작품' 이미지 여기에 붙여 놓을게. 이 작품을 지금 20호로도 새로 작업하고 있는데 조색에 하도 까다로워서 계속 고쳐가고 있대. 제목이 <때로는 새콤달콤하게> 인데 내 최애 이거 그릴 때 새콤달콤 먹어서 그 새콤함이 반영된 거 아닐까? 침 꼴깍이야! o>_<o
우리 이제 헤어져! 색깔과 밀당하기
엘덕후: 조색에 감정을 담다보니 매번 색이 바뀌는 걸까요, 아니면 다양한 색깔을 쓰겠다는 큰 계획 하에 바뀌는 건가요?
서최애: 일단 지겨워서 그래요 *^ㅡ^* (좌중폭소 우하하ㅏ하ㅏ핳하하하!) 생각해보니까 한 달에 10호를 4개 밖에 못하는 사람이라서 한 색깔을 너무 오래 보게되는 것 같아요. 한 작업에서 보라색을 쓰고 나면 "보라색 너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잠깐 헤어져." 이러는 거죠. 그렇게 이별을 하고 새로운 색깔을 만나 적응하는데 또 시간이 걸려요. 원래 쓰던 보라색의 감이 있었는데, 새로운 색깔이랑 처음부터 다시 친해져야 하는거죠. 그래서 제 작품이 더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그리는 '집'이라는 오브제는 늘 똑같지만 질리지가 않아요.
집이라는 귀염둥이들이 계속 작품에 나올 수 있는 건 색깔들을 너무 딥하게 조졌.. 조색했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깔 하나를 제대로 조사주는 우리 서최애. 전시장에 가본 사람들은 알지? 그 오묘한 색의 차이를 따라 내 눈도 이동하게 되는 경험 말야. 아래 사진을 보면 그 보라색이 이 보라색일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어. 저 다양한 보라색의 향연을 보라구. 색의 스펙트럼을 이렇게 다양하게 펼침으로써 모든 집에게 각기 다른 아이덴티티를 부여해주는 우리 서최애.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의 집도 이 안에 있을지 몰라 o^ㅡ^o
서로 다르게 생긴 '집'은 개인이면서 사회랍니다.
조색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오브제로 주제가 넘어왔어. 집=서최애, 서최애=집 이 공식 세포가 기억하는거잖아? 오밀조밀 삐뚤빼뚤 귀여움이 뿜뿜거리는 이 작은 집들이 사실은 서최애 자신이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나이면서, 또 우리 가족이면서, 더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점을 알고 그림을 보면 우리 최애가 이 세상을 얼마나 진지하게, 또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거야.
엘덕후: 작가님 작품에 대한 소개를 읽다 보면 '집'이라는 것이 작가님 자신 혹은 우리 자신이기도 하면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구심점으로 본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이 다 다르니까 색이 늘 변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서최애: 맞아요. 여러가지 사람들을 늘어놓다 보니 그래서 똑같은 보라색을 쓰더라도 다 다른 보라색을 만들어서 쓰는 거 같아요. 20채의 집을 그렸다 치면 20채가 다 똑같지 않고 4~5채씩 묶어서 컬러를 쓰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도 채도가 비슷하지만 다 달라요.
공교롭게도 내 이름이 보라라서 이 인터뷰에 더 감정을 실어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아. 서최애의 세상 속에 있는 많은 보라들이 비슷한 듯하지만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샘솟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푸근한 마음도 생기는 것 같더라고.
너도 서최애의 그림을 보면서 너를 찾고 너의 주변도 함께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면서 우리 최애의 작업 정신을 담은 다음 편 준비하러 갈게!
평론 - "집-무리(群집)" 관계의 메아리
‘집-무리(群집)’를 이루는 한국의 거주문화, 비슷한 듯하지만 같은 삶이 없는 것도 우리 안의 개성을 보여준다. 우주 안의 별무리와 같은 생(生)의 유니버스를 다룬 작품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유영의 작품들은 집을 단위로 삼되 하나이자 전체인 우리 안의 세계관을 다양한 마티에르로 구성한다. 부딪히듯 어우러져 사는 모습들이 균형과 조화 속에서 '거주형태=생의 관계맺기’로 연결된다. 집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고 은하수처럼 구성한 유니버스 시리즈, 개별적 단위로 병렬한 납작해진 평면의 집들, 정형과 부정형의 정반합(正反合)은 ‘서유영의 세계관=생, 관계의 코스모스’를 아우르는 기본구조이다. 코스모스(κόσμος)는 ‘우주의 질서’라는 그리스어로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뜻한다.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원자로 인간인 우리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시선을 골자로 하여, 집-무리를 작품구조로 설정했다. 나와 우리에 대한 시각적 질문을 통해 ‘관계의 메아리’를 생성시키는 것이다. 납작해진 단순 구조 안에 어떤 일렁거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변의 충만한 메아리를 울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의 작품과 만나는 것은 집 하나하나의 질문들을 전체로 연결하는 우주여행과 같다.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