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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Lee Oct 11. 2021

어쩌다 보니 캄보디아

상사맨 이야기 : 날벼락같은 기회

'라오스, 캄보디아 한 달 정도 다녀와!'

 2014년 2월에 뜬금없이 내려온 부장님의 지시였다.
 
 '어랏? 나 1년 가까이 베트남 시장 조사하고 베트남어 공부 이제 시작했는데, 왜 갑자기 라오스, 캄보디아로 바뀐 거죠? 베트남 주재원으로 나갈 준비 하라면서요! 저 라오스, 캄보디아는 아는 게 거의 없는데요?'

 '그래, 그래서 갔다 오라는 거 아냐, 회장님께서 6월에 한 1~2주 정도 라오스, 캄보디아에 가실 테니 그전까지 만나볼 만한 업체도 주선하고 현지에서 해볼 만한, 가능성 있는 사업들도 추려봐'

 저 말마저도 날벼락이었는데, 부장님께서 덧붙인 말씀은 더 큰 날벼락이었다.

 '네가 먼저 다녀온 이후에 회장님 출장의 전 일정을 네가 직접 모셔야 할지도 몰라'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기껏해야 대리 2년 차 말단 직원이 그룹 회장을 모시고 해외 출장을 다녀야 하는데 자기가 잘 모르는 나라에서 '건수'를 개발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으니 그 막막함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사실 회장님과 같이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 회장님 말단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식사를 같이 하고, 티타임도 자주 가지면서 젊은 직원들의 생각과 트렌드를 경청하고 스킨십을 많이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재벌에 대한 선입견 많이 줄 '재벌도 사람이네? 괜찮은 분이다'라는 친근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당시는 너무 어렸던 나이어서 최고 경영진에 대한 경외심보다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치기 어린 당돌함이 앞섰던 시절이었다. 그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침묵(Silence)을 지키기보다는 발언(Speak)을 더 많이 했던 시기였다. 침묵의 가치보다는 발언의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인지라,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러한 어필이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귀엽고 또 그 당돌함이 용서가 될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영화 제목 말마따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아니 지금은 그렇게 하면 큰일 난다.


 나 같은 경우는 회장님과 해외 출장을 몇 번 다녀본 지라 회사의 최고 경영자와 함께 출장을 가는 것 자체가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회장님과 함께 갔던 출장들은 이미 법인, 지사가 설치되어 있는 관할 지역에서 경험 많은 주재원들이 잘 짜둔 동선을 따라 막내로서, 그리고 옵서버 (Observer)로서 다녔던 출장이었고 내가 할 일은 그저 경영진 옆에서 말단 직원으로서 보조 수행을 하는 것 밖에 없었던 말 그대로 쉬운 귀족 출장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준비해야 할 출장은 내가 직접 스케줄과 동선을 일일이 짜고 적절한 업체를 찾아 격에 맞는 미팅을 주선해야 하는 등 처지가 180도 바뀌었으니 숨이 턱턱 막힐 수밖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러한 미션이 얼렁뚱땅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점은 다 알 것이다. 몇 번의 동반 출장, 몇 번의 식사와 티타임, 수십 수백 건의 보고, 관리자들의 평판들을 통하여 한 직원의 인사이트(Insight)와 끼를 살펴 한번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생긴 것인데, 그것이 나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다가온 것이다. 나 역시 그때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번 건은 나에게 직장 생활에서 치고 나갈 기회가 되던지, 아니면 그저 그런 회사 직원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는 빨리 치고 나갈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봄 비 오는 날 계동에서 내려다본 창덕궁


 그래서 열심히 출장 준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회사에서 근무를 하던 3월 어느 한 날, 갑자기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앉아 있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예전에 고시 공부할 때 어쩌다가 두어 번 왔었던 이석증이 또 왔나 싶어서 잠깐 회사를 빠져나와 근처 이비인후과를 갔다. 역시나 처음에는 이석증 같이 보인다고 가볍게 이야기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이래저래 진찰을 하더니 갑자기 다급해지면서 종합병원으로 당장 가라고 하지를 않는가. 의원을 나오면서 내가 큰 병에 걸렸나 하고 덜컥 겁이 나면서도 모교 출신 병원비 할인 그거 좀 받겠다고 근처 서울대병원으로 가지 않고 더 먼 곳에 있는 고대병원으로 갔다. 응급실로 가서 병원 침대에 눕혀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이런저런 기계 촬영을 하더니 결국은 전정신경염이 왔다고 당장 입원하여 최소한 1주일은 입원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참고로 이석증은 귀 안에 미세한 칼슘 덩어리가 떨어져 나와 귀 안에 돌아다니면서 어지러움을 유발하는데 통상 며칠 있으면 그 덩어리가 귀에서 빠져나오거나 귀 안에서 녹아 없어지면서 낫는 병이다. 반면 전정신경염은 귀 안에서 평형을 유지하는 전정과 반고리관에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염증을 유발하는 더 심각한 질병이다. 그런데 이석증이든, 전정신경염이든 직장인들이 많이 걸리는 병인 걸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걸리는 병인 거 같다. 나는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게 도대체 뭐하는 상황이야!!'

  후다닥 입원 수속을 받고 부장님께 입원했다고 보고를 드렸더니 부장님이 덜컥 화부터 내었다. 사람이 입원했는데 왜 화를 내는지 그 순간 울컥하고 섭섭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오묘한지, 전화를 끊고 나서는 그 부장님의 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에 말에 '이거 큰 일 났다, 당장 한 두 달 후에 출장이 잡혔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깐. 그 화냄이 나에 대한 화가 아니라 황당함의 화냄이었음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다행히 4~5일째에 상황이 호전되어 일주일째 퇴원 절차를 밟았다. 의사가 퇴원해도 괜찮냐고 여러 번 물어봤는데 더 이상 있었다간 나의 출장 기회가 날아간다는 불안감과 어마 무시한 병원비도 갈수록 커져갔기에 무조건 괜찮습니다라고 하고 얼른 퇴원을 했다. 한 달간 일주일에 2~3차례 내원하면서 재활 치료를 계속해야 되기는 했지만 3월의 봄날 한창때를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잘 자고, 병원의 정원에서 꽃구경하고 지내다 보니 퇴원할 때는 입원하기 전보다 더 몸이 튼튼해진 느낌이었다. 본사에 바로 복귀하니 부장님이 미안하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출장 준비한다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던가 보다고 말씀하고 다니면서 내내 보양식을 사 먹여 주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의 보스에 대한 섭섭함이 날아가는 것이고 또 나의 내공은 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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