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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식 Jan 24. 2021

서울에 정착해서 산다는 것

오지은 - 서울 살이는

지난 주말, 한남동을 지나다 갑자기 떠오른 기억. 생활도서관 활동 시절, 시사인 고재열 기자님이 주도하던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었다. 전국에서 헌책을 '책 정거장'으로 모은 뒤, 대안학교나 다문화 시설 등 필요한 곳에 책꽂이를 만들어주는 소셜 프로젝트였다. 물론 좋은 일이긴 했지만 나 좋은 일 했어요 깨시민처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 옛 기억을 뒤져 TMI를 시전 하는 이유는.. 해당 프로젝트에 책 정거장이던 밝은세상안과에서 그다음 해 겨울 라식 수술을 받았기 때문.

실제 노선. 한남대교에서부터 압구정을 통과하는 구간은 악명 높은 지체 구간이기도 했다.

참여했던 관계자나 봉사자들에게 수술비 할인 혜택을 준다는 말에 혹해 압구정의 병원까지 다니게 되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게을러 택시를 애용했지만, 장거리를 매번 탈만큼 여유롭진 않았던 학생 시절이라 한 시간 반씩 걸리는데도 꼬박꼬박 472 버스를 타고 갔었다. 심지어 수술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를 탔었지.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떠보라는 말에 아현쯤 도착해서 눈을 떴는데, (과장을 십원 어치 보태) 드레스샵 쇼윈도에 비즈까지 보여서 너무 놀랬던 기억이 난다. 라식수술 만세!


단순 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에도, 혹시 다시는 못 볼 풍경일까 봐 눈에 열심히 담아두려고 했었다. 한남대교를 건널 때 강물에 비치던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빌딩 숲 사이를 향해 솟아오르던 새들의 움직임은 얼마나 힘찼는지, 정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이어지던 퇴근길 차량 행렬은 얼마나 이질적이었는지, 지친 몸과 풀린 눈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버스는 매번 정해진 노선을 달릴 뿐인데, 부지런히 다른 풍경들을 보여주며 서울의 삶을 조금씩 알려주었다. 이방인으로서 생경하기만 했던 서울의 조각조각 단면들. 애처롭기도, 우습기도, 너무 거대했다가, 너무 아무렇지 않았던 그 풍경들.


한강 다리 통행량 1위는 한남대교라고 합니다.


아마도, 물리적 세계가 신촌 밖으로 확장되었던 첫 기억이라 깊숙이 남아있던 거 같다. 그전까지는 신촌 주민이었지 서울 시민은 아니었다고 할까. 그 이후 때론 누군가의 도움으로, 때론 스스로의 힘으로 서울 안에서의 외연을 넓혀가며 나름대로는 성장해온 셈이다. 낯섦 외에는 별다른 감정 없던 도시였는데, 별안간 그간의 소회를 말하고 있자니 이상하다. 사회경제적 구성원으로 자리잡기까지 나도 모르게 이 도시와 많은 연을 맺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탓이겠지.



어제는 마침 대휴라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러 동사무소에 갔다. 사진을 같이 제출해야 되는 걸 미리 체크하지 못해, 어떻게 안될까요? 빌어 보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던 길. 서울에 살게 된지 9년, 마포에 살게 된지는 벌써 5년째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민증을 다섯 번이나 잃어버렸지 후훗 나 자신) 첫 안착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반년을 보내야 했던 지질함이, 신촌을 도망치듯 떠날 때의 그 지긋지긋함이, 연남동과 안녕할 때 그 아쉽고 씁쓸했던 마음이, 은행의 도움으로 망원동에 자리 잡을 때의 그 떨림이 떠올랐다.


그 모든 총합이 '서울과 나'라고 생각하니, 과연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세계와 세계가 만난다는 일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도. 문득 당신과 서울은, 언제 어떻게 만나 서로에게 익숙해져 왔는지 듣고 싶어 진다.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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