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임신은 어려운 상황이에요. 시험관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와 남편이 원하면, 우리 마음의 준비만 되면 임신은 언제든지 될 줄 알았었다.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거치게 될 줄 알았다. 재작년, 나는 몸속에 있던 근종을 떼어냈고 남편은 작년 초에 오랫동안 먹었었던 호르몬 약을 끊음으로써 우리는 부모가 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작년 여름부터 자연스럽게 피임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올 아이를 기다렸다.
생리가 조금만 늦어져도 임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한 달에 한 번 때맞춰 생리를 시작했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단순히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조금 늦어지더라도 언젠가는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 크게 초조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조금씩 걱정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올해로 5년 차, 이제 2세 소식을 들려줄 법도 한데 감감무소식이었으니 궁금했나 보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나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 나이로는 35세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회적 나이로는 35세인 내 나이도 점점 크게 다가왔다. 검사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병원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있으면 바로 난임 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다는 주위의 조언을 새겨듣고 혼자 용감하게 난임 병원으로 가서 난임 검사를 했다. 당연히 별 이상 없을 건데, 굳이 뭐하러 남편과 함께 가나?
난임 병원에 가서 사전 정보도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나팔관 조영술을 했고, 눈물이 날 만큼 아팠던 시술을 무사히 마쳤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검사하길 잘했다고 말하며 깔깔 웃었고, 검사 하나를 마쳤다는 뿌듯함에 취해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맛있는 밥을 차려먹었다.
그리고 사흘 후, 나팔관이 양쪽 다 유착되어 있어서 시험관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현재의 내 상태에 대해 차근차근 말씀해주셨다. 나는 네 하고 대답은 하지만 이미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지금도 그때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옆자리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했고, 먼나라 이야기 같았던 난임이 내 이야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상담을 마친 후 집에 가기 위해 차를 타자 말자 눈물이 쏟아졌고,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나 대신 남편이 운전을 했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를 위로했다. 의사 선생님은 자연임신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때의 나에겐 닿지 않는 위로였다.
그 후로 병원을 몇 번 더 갔고, 의사 선생님은 내 난소 나이가 어린 편이니 자연임신을 조금 더 시도해보자고 하셨다. 올해 여름까지 자연임신을 시도해보고, 안되면 시험관으로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시험관 전에 인공수정이라는 단계도 있지만, 나팔관 유착으로 인한 난임의 경우에는 인공수정은 의미 없는 시도일 뿐이었다.
그 후로 두 달이 흘렀고, 여전히 남편과 나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생리 전 증후군이 확실한 나는 곧 생리를 할 것임이 느껴져도, 예정일보다 늦어지면 ‘혹시’하는 마음을 품고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본다.
얼마 전, 남편과 친정에 잠시 간 적이 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잠깐 비우자마자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물었다.
“너희, 아이는 계획하고 있는 거지?”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면서 답을 했고, 엄마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많이 궁금해한다고 한다. 차마 나에게는 물어보지 못하고, 애꿎은 언니에게 내 이야기를 그렇게 물어본다고 한다.
아직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난임 판정을 받았고, 자연임신은 어려운 상황이고, 시험관을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곧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 많이 담담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와중에 왈칵 눈물을 쏟게 될지도.
가족에게는 최대한 별 일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내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 시간은 조금 더 필요하다. 그래도, 자연임신 시도가 실패한다면 늦어도 올해 여름 말이나 가을 초부터는 시험관을 시작할 예정이다. 시험관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상태이긴 해도, 시험관 준비를 계획보다 늦추진 않을 생각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 될 테고, 걱정도 많이 된다. 비용 부담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노력해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봐야지.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기를,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