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 마음먹고 저녁 식사 후 걷기를 시작한 날입니다. 운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다 작년 3월부터 11월까지 일주일에 주 5회 홈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했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6개월여 동안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병환과 죽음은 제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했고,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체중계에 올라간 것도 지난해 12월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지인들과 그동안 미루던 만남의 시간을 가지던 5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체중계에 올라갔습니다. 6년 동안 유지했던 체중보다 2.2kg이 늘어나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식단을 조절하고 저녁마다 1시간 이상 걷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혼자 하는 홈트가 운동의 전부였던 제게 산책이 아닌 운동으로서의 걷기는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매일 걷는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
가끔씩 가족과 산책 코스로 다니는 익숙한 길인데, 혼자 매일 걷는 느낌은 사뭇 달랐습니다.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땀 흘리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 아름다운 노을 풍경했던 어느 날 저녁 >
< 노래하는 분수와 무지개다리 >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시작한 운동인데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좋았습니다. 어느 순간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식사량을 조절하는 일도 더 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다이어트라기보다는 제 몸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먹고 얼마나 운동하면 다음 날 얼마나 감량이 되어 있는지 체크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좀 더 많이 먹으면 그저 더 많은 시간 걸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5월 마지막 주말 가족들과 랍스터 뷔페에 갔습니다. 사실 원래는 이날 이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할까 생각했습니다. 대식가인 제가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적게 먹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바꿨습니다. 2주 동안 다이어트 좀 하고 양껏 먹는 걸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치즈 케이크, 아이스크림까지 디저트로 배부르게 맛있게 먹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날 저녁 예상했던 대로 아침보다 1.4kg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날 아침과 체중이 같았던 것입니다.
사실 많이 먹어서 1시간 45분을 걸었습니다. 그것도 걷는 동안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마침 노래 가사가 좋아 외우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는데 반복해서 부르다 보니 가사도 다 외웠습니다. 걸으면서 노래까지 하니 감량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나 봅니다. ^^
< 16명의 가족들이 함께했던 식사 in 바이킹스워프 >
어느 날 다리 밑 작은 무대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습니다. 7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서너 번 버스킹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몇 명 없을 때도 있었고, 20여 명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 꿈을 꾸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 모습을 보니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습니다. 그날부터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언젠가 저 무대에서 버스킹을 하겠다는. 아직 시작은 못했지만 버스킹을 위해 기타도 배우려 합니다.
기타 연주와 노래,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좋은 글도 낭송해 사람들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캘리그래피도 배우려 합니다. 관람객 중 몇 명에게 좋은 글귀를 담아 선물하려고요.
< 버킷리스트에 오른 또 하나의 꿈 >
몸의 근육을 키우면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진다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리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아 생각이 많았는데 걷기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운동이 즐거워진다는 것은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아몬드와 캐슈너트, 병아리콩, 샐러드, 달걀, 그리고 영양제. 운동과 함께 요즘 매일 챙겨 먹고 있는 것들입니다. 더 이상의 체중 감량은 필요하지 않아 부위별로 근력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언니가 계단 오르기가 좋다고 해서 나흘 전부터 하루에 두 번씩 계단도 오르고 있습니다.(참고로 우리집은 23층입니다.^^)
5남매 중 막내인 제가 아버지 체형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몸을 좀 더 소중하고 귀하게 대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죽기 전까지 건강하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도.
비록 임신으로 튼살, 흰머리와 주름은 어쩔 수 없지만 몸은 노력하는 만큼 고스란히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잘 알기에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행동으로 이어가 보려 합니다. 70대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금의 몸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70대 몸짱 할머니가 되어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면 언젠가 맞이할 운동 권태기도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