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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Apr 19. 2022

성공은 어떤 모습일까

부끄러운 기억 - 1

성장욕을 인정하는 데까지  많은 감정의 동요를 겪었다. 과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부끄러운 기록이다.



성공을 위한 몸부림을 기억한다.

부록으로 달린 해답지처럼 수많은 법칙과 방법론이 있었다. 기록되어 영원히 사라질 리 없는 성공담, 세월에 누적되며 조금씩 강해지고 명확해지는 말들. 그들의 말을 따라 걷는다면 빛나는 것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배신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닿을 수 없는 격차에 좌절했다.

당시의 나는 아팠다. 제 나름의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고 여겼다. 걸으면 걸을수록 가까워져야 했던 목적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했다. 멈추어 옷매무새를 만질 때가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성공론에 구토감을 느꼈다. 이뤄낸 자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들을 향한 부러움이 질투심과 의심으로 변색되었다. 스스로를 다독일 수밖에. 그러나 가벼운 다독임으로는 부족했다. 독기를 덜기 위해서 이유를 알아야 했다. 이유를 발견하는 일은 치열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당시의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기록 1. 만들어진 성공담

찬양받는 사회적 위치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은 재해석된다. 평가하는 자들에 의해. 그리고 그걸 눈치챈 ‘훌륭한, 훌륭했던’ 자들.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든 탁월한 결과는 훌륭한 서사로 재구성되기 편리하다. 설득을 위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런 삶을 동경하는 다수. 웰메이드 된 고난, 역경, 극복, 성공 그런 스토리는 구미가 당긴다. 납득과 설득을 위하여. 맛을 내기 위한 인공조미료. 먹기 쉬운 음식. 극한의 편리함을 목적으로 정제된 그들의 말과 글.

말 한마디, 아포리즘만으로 몸을 움직이는 대중이 있다. 안전하지 못한 세계에서 안위를 취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럽다. 선구자들, 뚫어놓은 길을 따라가려는 군중은 희망을 품는다. 기대감. 자신도 고통이 부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추상적 희망이 만연한 사회.


   

기록 2. 위대한 자들

진정한 고수는 초야에 묻힌다.

돈돈돈하는 사회를 부정하는 트렌드가 있었고 견고한 권위에 도전하는 트렌드가 있었다. 도전자는 언제나 소수이다 고수였다. 이들이 택한 생활양식은 때 묻지 않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수는 각종의 때가 구석구석 묻은, 목욕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결코 씻어낼 수 없음을 아는 이들은 쌓인 오염물을 씻어 내지 못 한다.

그리고 안타까워한다. 대중을 염려하는 소수는 제 감정을 버티질 못해 세계로 나온다. 초야를 벗어난 고수는 대중 앞에 서기 위해 깨끗하고 따듯한 물에 때를 닦아내야 한다. 뱀의 머리가 되기 위해 신념을 희생한다.

다수의 귀감이 되었던 개개의 이벤트를 기억한다. 굵고 짧은 그네들의 삶, 나는 그들을 감히 초월에 발을 담근 위대한 인간이라 믿는다. 고수는 하수가 되며, 위대해진다.


   

기록 3. 성공론

성공 스토리. 다수가 바라는 풍요로운 삶을 찬양하는 말과 글. 쏟아진다. 그리고 매몰된다. 숨이 막힌다.

겉보기에 이상할 것 없는 성공론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스토리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잘 짜인 질서로운 스토리에서 매력이 보이지 않았다. 삶의 매력은 빈 구멍, 불가지의 영역에서 비롯된다. 도달할 수 없는 앎의 영역,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하며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 그것은 온전히 알 수 없는 구멍이 퐁퐁 뚫린 말과 글, 점선면에 있다. 비루한 내가 소화할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

사탕을 이빨로 부수어 강렬한 맛을 느끼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부수면 부술수록 세계와 닿는 면적이 넓어진다. 세계에서 분리될 수 없는 운명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자 했다.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뱉어내기보다는 흡수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야밤에 먹은 매운 라면처럼 소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래서 열심히 저작해야만 한다. 턱이 빠질 정도로 씹어대는 게 힘들어질 때가 많기에 구멍 많은 무언가를 찾는 걸일지도 모르겠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성공은 어떤 모습일까.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성공론에 관한 그들의 말과 글은 전부 제 나름대로 옳은 것이었다. 다만 나는 억울한 감정에 휩쓸려 이 모든 의견이 틀린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성공은 글자 그대로 '이뤄내는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목적지가 있을 수도 있고, 닿는 과정 또한 성공이다. 크게 두고 그때그때 해석하기로 했다. 오히려 지금은 그들처럼 살고 싶어졌다. 덜어내자 욕망이 순수해졌다.


성공은 주관적이다. 기준이 있을 리 없으며 위대한 자들이 마련해 놓은 길을 걷는다 한들 그들처럼 되리란 보장은 없다. 이러한 불확정성에 인간은 좌절한다. 그럼에도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마음 한켠에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는 또 다른 본능, 의미를 찾으려 하는 강력한 욕망이 있다. 이것이 다시 나를 일어서게 했다.


나는 아픈 글을 썼고 자신이 만든 송곳에 쿡쿡 찔렸다. 구멍 난 곳에 수많은 딱지가 생겼다 떨어져 굳은살이 배겼다. 아팠던 곳이 더 이상 아프지 않자, 다시 성공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주저앉은 자리에 비석을 하나 세웠다. 다시 돌아와 볼 수 있도록. 건강한 염세가 이곳에 있었노라. 비석에는 그렇게 써놨다. 무한한 욕망, 끝없는 허무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지만 다시 두 다리는 걷고자 한다.


아픈 시기를 이미 겪었다고 해서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리 없다. 걷고 뛰다가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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