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루는 직업 - 1
지금 하고 계신 일, 마음에 드나요?
일에 관한 책이 많다. 말도 많다. 노래도 많다. 만화도 있고 그림도 있다. 그리고 옆사람의 말이 있다.
자기 이야기가 부끄러운 인간들. 결국 이 모든 표현들이 가리키는 건, 일생에 부과된 과업의 의미와 가치임에도 옆자리를 의식하는 상냥한 마음에 우리는 결국 말하지 못해 썩어간다. 귀 기울이는 자는 도망한다.
떠도는 말이 많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이 주제에 대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과도기의 인간, 미완의 인간이 떠안은 이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펼치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말들이 나올까. 설익은 여드름을 면봉으로 짤 때처럼 튀어나올까. 아물 때가 돼 굳이 바늘로 찌르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고름처럼 흘러나올까.
'쓰다 보면, 앞줄과 뒷줄을 오가며 타자를 두드리다 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점 돌파, 한 분야의 일을 오래도록 해본 기억이 없다.'
직업관, 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깨닫고자 한다면 비교군이 필요할 텐데. 쌓아둔 기억이 없다. 비교하기엔 무리다. 제로와 비교할 순 없으니.
주변 모두가 이것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에 그들이 뿜은 입냄새와 각종 물감들에게서 백지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긴 힘들지 않을까? 그럼에도 말해야 한다. 담긴 기억이 왜곡되는 한이 있더라도, 남겨두어야 한다.
이쪽저쪽, 나는 방황했다. 배워온 것이 그것뿐이라 자연스럽게 공과계 회사에 들어갔고, 그대로 내 인생이 이어질 줄로만 알았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평생 봐왔고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외의 것을 생각해 본 기억은 없다. 불안했다. 정확히는, 불안해하는 내가 있었다.
"이내 흘러오게 된 곳. 떠내려오던 부목이 큰 돌덩이에 걸려 머물게 된 이곳, 나는 물에 젖어 식어버린 몸과 마음을 다시 데울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사람 다루는 업. 그리고 의도를 숨겨야 할 일이 많은 업. 직업보다는 업이 란 말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일’
잘 버틸 수 있을까? 이 부목, 이 업계는 무게중심이 어디쯤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