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이스트원

어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지금, 마흔.


살면 살수록 삶의 무게가 쌓인다. 글을 쓰면 쓸수록 인생의 쓴맛이 느껴진다. 그나마 달리면 달릴수록 마음의 단맛이 느껴져 다행이다.

어른이 되면 쉬워질 줄만 알았다. 인생도, 글쓰기도, 달리기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요령이 생기고, 아픔도 잘 참을 수 있으며, 힘들었던 일들이 모두 수월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쉬워지는 게 아니라, 그저 익숙해지는 것이다. 쓴맛이 익숙해지고, 고통에 익숙해지고, 무게가 익숙해지고, 매일매일이 익숙해진다.


학창 시절 그토록 싫어했던 체력장 오래 달리기.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억지로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숨이 차오르고 옆구리가 쑤셔도, 친구들 전부가 나를 추월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기록을 재야 했고, 등수가 매겨져야 했다. 그때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나 스스로 달린다. 호루라기도 없고, 기록을 재는 사람도 없다. 등수도 필요 없다. 그런데도 매일 달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 러닝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간다.


달리기는 지금도 힘들다. 여전히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다. 하지만 그 힘듦을 이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고통 속 단맛마저 느껴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땀으로 옷이 비 맞은 듯 젖을 때, 한껏 달리고 힘 빠진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 순간이 싫지 않다.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수동적으로 살았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갔고, 남들의 속도에 맞춰 달렸다. 그게 안전하고,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자기만의 길과 속도가 있었다. 이제는 삶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내 페이스대로 살아가려 한다.

내 멋대로 살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위 시선을 덜 의식하면서, 주위 흐름에 쉽게 휩쓸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들이 빨리 달린다고 나도 무리해서 따라가지 않는다. 남들이 포기한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나의 호흡으로, 나의 보폭으로 달린다.


이 책은 잘 달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달리기 최적의 자세도, 기록을 단축시키는 방법도, 마라톤 완주 비법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마흔 살 아빠가 달리면서 삶에 대해 배운 것들을 담백하게 적은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함께 달리자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나처럼, 오늘 하루를 잘 버티기 위해 러닝화 끈을 묶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