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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양의 진주 May 25. 2021

유부남 장군의 여자 친구

필리핀 청년들의 뒷이야기

    하루에 확진자 수가 1만 명씩 늘어나면서 (실제 확진자 수는 15배 될 것으로 예상) 필리핀은 1달 동안 Enhanced Community Quarantine (ECQ) ‘강화된 지역사회 격리조치’에서 Modified Enhanced Community Quarantine (MECQ) ‘수정된 ECQ’를 병행해 왔었다. 4월에 있었던 기독교 부활절 전 일주일인 Holy week ‘성주간’에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이동을 해가며 휴가를 가지 않게 막으려는 격리조치를 실시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기간 동안 우리 콘도미니엄에는 손님 출입이 불가능했고, 식당 내 식사는 금지되였었으며, 공기업들은 물론 국가에서 지정한 필수 산업 외 모든 영업이 중지되었었다. 그 1달간 마닐라는 1년 전과 똑같이 (교통량이 혼잡할 때 눈에 보이는 공해가 없어) 맑은 하늘과 조용한 분위기를 뽐냈으며, 사람들은 집에 갇혀 지냈다.

 

    MECQ 기간 회사-집을 오가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가 (우리 회사는 국가에서 지정한 필수 산업에 해당된다) 1달이 되는 날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마침 식당 내 식사 금지가 해제되어 셋이 우동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아이스커피를 한잔씩 들고 Makati Circuit의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다. 5월은 필리핀 여름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데, 정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정도의 더위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막은 아직 가보지를 못해 더위가 얼만 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녀온 사람들의 말로는 필리핀이 습기까지 있어 더 덥게 느껴진다고 한다. 솔직히 이 기간에는 하루에 3-4번이나 샤워를 해야 더위를 버틸 수 있는 정도이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못 본 지 2년이나 된 친구들과 이야기보따리를 살살 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각자 코로나에 한 번씩 걸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바이러스에 걸렸으며, 어떤 증상들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해댔고, ‘코로나에 한번 걸렸던 사람들은 엑스레이를 찍으면 폐에 하얀 점이 보인다더라’라고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모두 한 번씩은 걸릴 거라고 하는데, 현재 필리핀 상황을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나는 안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자기 회사 동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유부남 장군의 여자 친구라고 한다. 필리핀에는 어느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나이 때 별 스폰서 의향이 있는 전문직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동료는 6개월째 필리핀 장군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상사에게도 인정받는 싹싹한 직원이자 필리핀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학인 필리핀 대학교에 나와 사내에서는 엘리트로 불리는 이 동료는 어느 날 갑자기 친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집안 사정이 못 견딜 만큼 안 좋아서도, 갚아야 할 빚이 많아서도 아닌, 추가 수입을 노리고 재미로 하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라며 신청 및 만나는 과정이 쉽고 깔끔하다고 소개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를 갑자기 내 친구에게 말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더 놀라웠다. 그 장군을 좋아하고 있다고 한다.


    ‘당신 와이프가 우리 관계에 대해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이르고 싶으면 일러봐. 나는 다 수습 가능하니까.’


    필리핀에서 장군급이라면 어느 회사보다는 월급도 많이 받고, 물론 공무원이니 복지도 좋고, 그 무엇보다 인맥이 좋을 것이다.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면 재수 없을 정도로 능력 있나 보다. 필리핀에는 정말 부자 사업가들이 아니라면 직급 있는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이 판 쳐 놓고 사니까 말이다. 아니면, 와이프도 알면서도 놔두는 걸지도 모른다, 지방에 산다고 하니 마닐라에 와 단판을 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20대 여자 친구를 가진 유부남들은 필리핀에 흔해 빠졌다. 거의 필리핀 유부남의 70%가 그러고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부터 변호사, 의사, 사업가, 그리고 하루 벌고 하루 사는 사람들까지.



    ‘그 장군의 아들, 딸이 너 또래일 텐데, 너로 인해 한 가정이 깨진다면 어떨 것 같아?’라는 물음에 그제야 그 동료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자기도 부모님이 계실 테니 외도로 깨지는 가족을 생각해보는 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여전히 그 동료는 그 장군과 만나면서 용돈을 받고 지낸다고 한다. 200만 원이면 필리핀에서 작은 돈이 아닌데 평균 그만큼의 월간 용돈을 받으며, 이 장군과 헤어진다고 해도 또 다른 스폰서를 찾을 것이라 말했다. 필리핀의 황당하면서도 또 슬픈 현실이다.


    내 한 다리 건너, 그니까 가까운 친구의 회사 동료라면 그리 멀지 않은 인연인데, 그런 사람이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여자 친구를 둔 유부남 아저씨들도 놀라웠지만, 그런 관계를 전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이렇게나 흔하다는 사실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깨끗하지 않은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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