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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양의 진주 Jun 03. 2021

기억해 줄까 그리워해 줄까

팬데믹이 준 가르침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워할 건 알아요' (스티븐 콜버트 쇼: 키아누 리브스 인터뷰)



    내가 죽는 것이 슬프지 않을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두렵지 않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잘 살았는지 생각해 보았을 때 후회되는 것들이 많을까 봐 두려운 것이지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았다.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은 살면서 해본 것들보다는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더 강하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그것보다 나를 그리워해 줄 뻔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에 후회할 것 같다.


    나는 정말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물론, 자랑은 아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최근에, 나에 대해 어떤 친구의 솔직한 비판을 들었을 때 부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나에게 중요한 시간, 사람, 물건이 아니라면 소중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나 자신을 판단하자면 계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 스스로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원하는 것들에 집착하게 되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쉽게 배제하는 습관이 생겨 그런 것 같다. 챙길 사람이 많지 않고, 항상 진심일 필요가 없던 그 삶은 일차적으로 편했다. 나만 생각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한둘 떠나가더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떠나가던 그 시간들 마저에도 나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번 팬데믹 기간에 동생과 나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만큼 많이 싸웠다. 같이 있으니 서로의 행동, 말투를 더 알게 되고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더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항상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며 싸웠었는데, 그러다 두통이 온 적이 있어 그 후로는 ‘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나 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동생이 말할 때 나는 껴들지 않고 듣고, 내가 말할 때 동생은 껴들지 않고 들으며 대화 형식으로 싸우기로 했었다. 그러다 한번 동생이 말할 차례가 되었을 때 동생이 울분을 터뜨렸는데, 내가 이기적으로 사는 게 싫다며, 나는 내 틀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을 다 나쁜 것으로 판단하여 해쳐버린다고. 자기에게 피해가 가는 건 동생으로써 어느 정도 참고 살아보겠는데 이렇게 살면 나중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평생 같이 살아야 할 미래 남편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내 옆에 있지 않으려 할 것이라 했다. 네 살이나 어린 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드라마틱하게 이야기하는데 정말 진심이 느껴졌다.



    기억하는 것과 그리워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서 외출하실 때 나를 돌봐주시던 아줌마를,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기억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여름방학에 잠깐 키우다 갑자기 얼어 죽어버린 토끼를 기억하고, 암으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다.


    얼마나 사랑해야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서 그리워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준 사람이어야 우리는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리워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나를 돌봐주시던 아줌마도 분명 그때 당시에는 나에게 큰 존재였을 것이다. 한참 교육이 필요할 나이에 놀아주고, 챙겨주었으니 말이다. 따분한 여름방학을 보내던 내가 먹여주고, 똥 치워줘야 했던 그 토끼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꽤나 신경 쓰이지만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벗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나'란 사람도 없었을 '아버지'를 낳으시고 키워주신 할머니. 그만큼이나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셨지만, 살면서 몇 번 뵙지 못한 할머니는 나에게 그리움보다는 기억으로 남는다. 이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어서 그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통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테다.


    계산적으로 살았던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있는가. 나만 생각하고 사느라 그들이 나에게서 멀어지게 두고 나는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죽는다면 누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계절이 바뀌어도 나를 그리워할 사람들이 있겠는가. 많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다가 나를 그리워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 아무도 모를 사람일에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면 그 죽음은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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