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양의 진주 Aug 20. 2021

길가에 구걸하는 사람들의 정체

안쓰러움과 무서움 그 사이

    지금 살고 있는 콘도미니엄에서 사무실까지 나는 매일 오전에 걸어서 출근을 하고, 오후에 걸어서 퇴근을 한다. 너무 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20페소 (460원 정도)를 내고 트라이시클을 타고 집에 오기도 하는데, 코로나가 계속 심해지는 요즘 걸어가는 걸 선택할 때가 더 많아졌다. 하루 일을 마친 후에 오후 5시가 되면 퇴근 준비를 하고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친구랑 통화를 할까, 음악을 들을까, 팟캐스트를 들을까’ 생각을 해보고 한 가지를 선택한 후 이어폰을 낀다. 회사에서 집까지 8분 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음악 두 곡이나 짧은 팟캐스트를 듣는데, 온 신경이 귀에 있기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어느 차들이 서있었고, 지나온 카페에는 사람이 많았는지 신경을 쓰지 않고 걷는다.


    여느 다른 날과 다름없이 퇴근 후 집에 걸어가는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청년들이 우리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 근처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15살에서 18살 정도로 돼 보이던 남학생 4명 정도가 흩어져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잔돈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필리핀에는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 기타를 치거나 하모니카를 부는 장님들, 신호등 앞에 서있는 차들의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사람들, 서있는 지프니나 버스에 타 깡통을 악기 삼아 노래 부르며 구걸하는 사람들, 등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나는 내 옷깃을 잡거나 내가 가는 길을 막으며 구걸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내가 외국인이니 돈이 많아 보여 나를 다치게 해서라도 돈을 달라고 할까 무섭기도 하고, 코로나로 최대한 접촉을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 더 무서워진 것 같다.


    나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그냥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 주말에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선가는 이 구걸하는 사람들을 접할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봤을 때 가장 인간적인 반응은 ‘안쓰럽다’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리고 나 또한 어렸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어느 나이에 다다랐을 때 구걸하는 사람들을 돕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 그 사람들 중 순수히 삶을 유지하기 위해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수가 뒷이야기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1) 입에 풀칠하기 위해 구걸을 시작했다가 굶주림을 잊게 해주는 마약을 소개받고, 적은 돈을 써 며칠 동안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하여 마약 중독자가 되는 사람들,

    2) 부모를 잃은 고아나 갈 곳 잃은 사람들을 무진장 납치한 다음 폭행과 고문으로 협박하여 구걸하게 만드는 테러조직들,

    3) 일부러 멀쩡한 눈이나 몸의 일부를 상하게 한 다음 장애인 행세를 하며 구걸하는 사람들,

    4) 옆집 아기를 빌려 구걸하러 나가는 사람들, 모두 하나하나 말하자면 정말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정말로 안쓰럽고 안 됐다. 하지만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계속 있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도 하여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끊기지 않는 그 현상을 다 같이 노력하여 끊어보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끊기지 않는 현상을 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무진장 무시하고 살아가려 노력해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아예 돕지 않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필리핀 국화 삼파귀타(Sampaguita)로 손수 만든 목걸이를 팔려 차 창문을 두드리는 여자 아이들을 보면 동전 몇 개 주지 않기가 어렵고, 길 옆에서 동생들과 빵 한 조각을 나눠 먹는 남자아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바로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내가 사는 나라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을 감고 내 갈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매정한 것 같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자기를 안 보이는 귀신 대하듯이 무시하는 사람들을 이 사람들은 하루에 백 명에서 천명 정도 대하겠지. 냉정하게 자기 갈 길을 가겠다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처음 경험했을 때 무슨 느낌이었을까? 구걸하는 사람들 중에 어린아이들도 있는데, 나중에는 ‘나는 무시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무시받는 게 당연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까? 일생동안 구걸을 하다가 다 자란 사람들은 매정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래, 그냥 지나가라. 너는 천벌이나 받아라. 네가 지나간 후에 그다음 사람 그리고 그 다음다음 사람한테 동전을 받아 돈을 모으면 빵 한 조각과 오늘 할 마약을 사면 돼’라고 생각을 할까? 길가에서 구걸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배경을 뒤로하고 길가에 내버려져 내가 직접 구걸을 하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나를 돕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번 실망하고, 여러 번 무시를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화가 나고, 매일 그런 일상을 반복하게 된다면 세상 그리고 내 운명이 원망스러울 것 같다. 내가 마음이 얕은 사람이라 그리 생각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라면 모두 비슷하게 그렇게 생각을 할 것 같다.


    원래라면 평온했을 나의 퇴근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횡단보도에 서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던 내가 60초가 6초인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제발 5페소만요 (20원)’라고 끈질기게 구걸하는 남학생들에게 동전을 주었는가? 나는 결국 낯설지는 않지만 당황스러운 그 상황이 무서워서 지갑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내가 차에 타고 있었더라면 잠시 지갑을 꺼내 몇 푼이라도 줬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순간 혼자 서있던 나에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내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돕지 말아야 된다고 교육해준 사람의 말처럼 이 동네에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한둘 생긴다면 그들은 이 동네에서 정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 보이지 않던 그들은 어디에서 왔고, 그 후 어디로 갔을까? 어느 이유로 구걸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해 줄까 그리워해 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