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만이 남은 줄 알았는데
너는 여전히 내 귀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늦게 내리는 비보다
일찍 찾아오는 바람이 내 귀를
시리게 한다는 걸 너는
모르고 있었다.
자막 없이 보는 영화는
무성영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한 너는
아직도 자막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을까.
거기서 내 귀는 여전히 펄떡이고 있고
나는 여기서 영화를 자막 없이,
무음으로 본다.
아침에는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 비가 먼저 왔구나
하늘이 열심히 슬픔을 우려냈구나
그러나
바람을 처음으로 이긴 비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나는 항상 내 마음보다 늦게 도착했으며
비에게 처음으로 진 바람의 마음을 위로하기엔
너는 어젯밤 시작한 무성영화에 몰두해 있었으며
바람과 비가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을
너에게 들려주려고 헐레벌떡 내 귀를 건네면
너는 우비와 바람막이를 번갈아 입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