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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 Mar 20. 2022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34. 정치


  정치.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픈 단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정치적 주제에 열을 올린다. 좌파네 우파네 하면서 서로를 욕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저렇게 서로를 원수 보듯이 보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가만 보면 꼭 똑똑하고 살만한 사람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진 않다. 남녀노소, 부유층과 극빈층을 아울러 다양한 영역에 정치적 맹종이 만연해 있다. 유튜브나 온라인 미디어, SNS에는 특정 정치적 입장에 대한 혐오 발언과 분노로 가득하다. 객관적이어야 할 정보 제공자나, 두루 살펴봐야 할 정보 수용자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해야 할 말이나 들어야 할 의견 따윈 없는 듯하다. 오늘날 정치적 견지에서 볼 때, 인터넷은 거대한 반향실이다. 그 속엔 자기 이념뿐이다.


  당신은 이 같은 이념의 투쟁 속에 한 발자국도 들이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정치니 뭐니 그런 건 관심도 없고, 하더라도 선거철마다 인상 좋은 후보에게 투표 종이 하나 적선하는 정도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거라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직장 생활 잘하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범법 행위하지 않고 살기만 해도 괜찮은 민주 시민 아닌가? 물론 나쁘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삶 역시 아니다. 적어도 정치에서 만큼은 냉소와 회의감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정치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어도 공직자는 선출된다. 그리고 그 선출된 공직자로부터 당신이 사는 사회의 법이 만들어지거나 사라지고, 세율이 변화하고, 교육 제도가 바뀐다. 직장의 업무 지형이 전환될 수도 있고, 고용 환경이 안정되거나 불안정해질 수 있다. 내 삶의 조건을 상당한 범위로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순전히 운에 맡기는 게 어떻게 좋은 삶일 수 있을까? 물론 당신의 결정은 잘못될 수 있다. 당신은 종종 정치인으로부터 기만당하거나, 다른 진영 사람들에게 조롱당할 수 있다. 전엔 없었던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리거나, 신경도 안 쓰던 정치적 사건에 가슴이 들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결정 능력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당신이 헤매고, 싸우고, 괴롭고, 분노할수록 당신은 더 정교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게 될 것이고, 더 괜찮은 후보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 앞에서 단지 옳다는 이유로 자기 생각을 말할 수도 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반대로 타인의 적절한 비판에 조금 더 성숙해질 수도 있고, 그 과정을 지켜본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기회가 된다면 이 사회의 크고 작은 영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서라도, 당신은 적어도 스스로 초래했을지도 모를 실수를 수습할 기회 정돈 가질 수 있다. 평생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런 실수를 말이다.


  이 이상 좋은 삶이 뭔지 구구절절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건 정치란 무엇이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이념 간의 갈등은 무얼 뜻하며, 정치적 의제는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이다. 민주주의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도 덧붙일 말이 있겠다. 





  쉬운 부분부터 시작해보자.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이다. 정치가 분배하고자 하는 자원에는 오만가지가 있다. 가장 직관적인 돈부터 해서 산업 인프라나 교통 시설, 주거 조건, 법을 조정할 수 있는 권력, 나쁜 사람을 심판하거나 선행을 장려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들도 분배의 대상이 된다. 즉, 무한정 뽑아낼 수 없는 희소 자원은 모두 정치적 쟁점이 된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파트 단지 주민들끼리 동대표를 선출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다.


  그렇기에 정치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을 결정하는 데 있어 이득을 보는 사람이나 조직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유리하도록 진행된다. 이 이득이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정치는 모두에게 두루 이득이 되도록 이뤄진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말해, 이는 이상적인 정치다. 현실의 정치는 거의 예외 없이, 어느 한쪽의 이익과 대척점의 손해로 이어진다.


  그런데 한정된 자원을 결정하는데 모든 개인의 뜻이나 사정을 고려할 순 없다. 그렇게 되면 모든 국민이 자기 이익을 주장하느라 정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즉, 이익의 범주를 국민 수만큼 잘게 쪼개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거시적인 정치는 우선순위를 세운다. 정치인은 세율 책정, 부동산 문제, 교육 제도, 국방 정책, 외교 관계 등과 같이 넓고 큼직한 자원들을 분배하는 데 주력한다. 이 과정에서 앞서 본 정치의 '두드러진 특징'이 나온다. 


  예컨대 어떤 정치인은 소득 분위가 높은 사람들의 세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확보한 더 많은 세금을 그보다 소득 분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재분배하여,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말이다. 또 다른 정치인은 전체적인 세금을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적극적인 경제 활동의 동기가 되어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결과적으로 소득 분위가 낮은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진다면서 말이다. 이들 각각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 각각은 자기들 주장이 잘 실현되는 게 '이상적인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이 나온다. 정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자원을 배분하는 걸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이 '이상향'에 따라 정치적 진영이 갈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가 그 진영의 구분이다. 진보와 보수는 좌파와 우파, 좌익과 우익 등 온갖 바리에이션으로 불린다. 진보와 보수는 각각 자기들이 대변하는 이익 집단과 '자원 분배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진보와 보수는 어떤 면에서 다른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걸까?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진보를 설명하는 단어 묶음에는 분배적 정의, 평등, 소수자 우대, 높은 세금과 폭넓은 국가 복지 등이 있다. 진보적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경제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옹호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경제적 이념의 일종인 공산주의와는 다르다. 사회주의는 워낙 모호한 용어로 인식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개개인의 이득보단 사회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진보주의자는 기존의 집단 차별적이고 관습적인 여러 관행들에 반대한다. 이들은 여성이 출산 문제에서 보다 향상된 자기결정권을 가지길 바라며, 소수 인종 집단에 대한 차별에 급진적으로 반대한다. 진보주의자는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보통 세계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동참한다.


  보수를 설명하는 단어 묶음에는 애국주의, 자유, 민족 역량 강화, 낮은 세금과 시장 자유주의 등이 있다. 보수적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를 추구하며, 경제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반대한다. 시장은 나름의 작동 논리가 있으며, 인위적인 개입을 배제해야 자연스럽게 적절한 균형을 찾아기에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대체로 전통을 존중하고, 개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이들은 국가 안보를 위한 강한 군사력을 핵심 의제로 설정하고, 자기가 번 돈에 대한 권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주의자는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나'와 이웃을 우선시하고, 보통 그 범위를 같은 민족에게까지 확장한다.


  이 구분에서 발생하는 오랜 아이러니가 있다. 적어도 정치 진영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진보주의를, 부유한 사람은 보수주의를 추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실제 투표 비율을 조사해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거나, 부유한 사람들이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정치적 입장이 경제적 문제에 따라서만 갈리는 것도 아니고, 나라마다 진보 정당이나 보수 정당이 자기들의 진영 논리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체적인 틀은 이와 같다. 현 기준 우리나라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적 입장을, '국민의힘'이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 정당들이다. 한국은 두 대표 정당이 국회의 300개 있는 의석 수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양당 정치 체제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진보적 이상향이 옳다고 믿는 시민들은 주로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을 비판하고, 보수적 이상향이 옳다고 믿는 시민들은 주로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비판한다. 우리나라는 또한 지역적 성향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확연하게 갈리는 양상도 보이는데, 이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이니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다.





  우리나라 정치 진영에 대한 스케치는 이 정도로 하고,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왜 진보와 보수는 서로 싸우는가? 왜 진보 정당은 보수 정당을, 보수 정당은 진보 정당을 '무조건' 비판만 하는가? 왜 그들은 서로를 '무조건' 정신 나간 짓거리만 일삼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정치적 의제를 결정할 때마다 엄청난 실수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성명 발표를 일삼는가? 왜 그들은 거의 항상 새끼손톱만큼의 합의도 할 수 없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선거 시스템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 선거는 대체로 '승자독식 게임'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만약 전 국민의 수가 100명인 나라에서 오늘 선거를 실시했다고 가정해보자. A 후보는 51표를 받았고, B 후보는 49표를 받았다. A 후보가 당선됐다. A 당선자는 진보나 보수 중 자기가 지향하는 입장에 따라 정책을 펼친다. 그런데 이 나라의 약 절반은 A 당선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절반의 의견은 대체로 묵살된다. 100표 차이든 1표 차이든 무관하게 A는 당선됐고, B는 낙선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선거에서 표차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실제로 표차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적은 표차로 당선된 공직자일수록 여러 정치적 의견을 두루 살피려 노력한다. 왜냐하면 본인의 지지자 중에서 조금만 돌아서도, 자신에 반대하는 국민의 수가 절반이 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대변하는 다른 정치인들에게 공격을 당해 정치적 입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탄핵되거나 정당 차원에서 파면당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무튼 민주주의 선거의 특징으로 돌아와서, 적은 표차로 이기나 큰 표차로 이기나 승자가 결정권을 쥐게 된다면, 각 진영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무엇일까? 상대방을 절대악으로 묘사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은 무엇 하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작은 꼬투리라도 잡혀 극소수의 지지자만이라도 이탈하면 정치적 판도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철엔 언제나 네거티브가 유행이다. 자기 정책과 능력을 입증하려는 후보나 정당은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시간 동안 상대 진영에선 온갖 의혹 폭탄을 던져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이 '설마' 하는 순간 선거의 방향이 결정된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지 않는다'는 속담은 이 경우엔 완전히 틀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뿌연 연기에 호도되어 그릇된 판단을 반복한다.


  이런 구조에서 '갈등과 분열의 정치'는 필연적이다. 특히 시민들의 생각이 그런 흑색선전에 좌우될 때, 더욱 그렇다. 이는 어떤 국가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선거철에 네거티브가 성행할수록, 그리고 그것에 따라 정치적 담론이 좌우될수록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미성숙하다. 하지만 승자 독식의 선거 게임에선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복잡한 정치 어젠다나 정치인의 계획엔 별 관심이 없다. 후진적 민주주의의 시민들은 공직 후보자의 추문 하나로부터 그의 경력, 능력, 앞으로 보일 것 같은 행동, 성격, 인성, 가족관계, 리더십, 청렴도 등 모든 것을 판단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치 진영 사이의 정쟁은 기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자기만큼의 규모를 지닌 상대 진영의 '모두가' '완전히' 틀릴 수 있는가? 그런데 진영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진보 신문에서는 이번에도 보수 정당이 천인공노할 짓을 했다고 나팔을 분다. 보수 신문에서는 이번에도 진보 정당이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저질렀다고 대서특필한다. 그들은 절대로 서로를 칭찬하지 않는다. 이는 여러분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도 금방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양 진영의 사람들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이런 사태에 대한 개인적인 의심을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 자기네 지지자들이 그것을 보고 한 명이라도 입장을 선회하면, 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 정치의 실태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실태에 회의감을 느끼고, 열정적인 정치 투사에서 소박한 시민 A로 전락해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치는 진저리나는 것이고, 정치인은 죄 사기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이러한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거짓말은 당선되는 순간 용서받는다. 혹은 조만간 잊혀진다. 승자는 자원 분배의 방식을 사실상 독점한다. 매번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이유다. 더불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에는 '내가 동의하지 않았으니 무효'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자발적 시민 의식의 발현이라기보단 공갈협박의 결과다.


  나는 진보나 보수 중 어느 하나가 특별히 좋은 삶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사실,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완벽한 정답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일 수 있는 능력이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인정하고 수습할 수 있는 책임감, 나와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의견이라도 괜찮은 것 같으면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형성되면서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진영을 찍고 있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혜택에 취해 있을 게 아니라, 그것의 거대한 해악과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추구해야 한다. 


  정치라는 단어를 듣고 머리 아프다며 손사래 치는 사회가 아니라, 그다음에 뒤따라올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할 줄 아는 사회가 정치적으로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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