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능력, 협업.
여기, 아주 바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편의상 X라고 하자. X는 매일같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워커홀릭이다. X는, 이를테면 A, B, C 등의 여러 집단에 걸쳐서 제각각의 역할을 역임하고 있다. X는 자신이 유능하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많은 일들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처리할 순 없으리라. X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좋게 평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X는 자는 시간도 줄이고, 취미를 즐길 여가 시간도 희생하며 일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X는 자신이 속한 모든 집단에서 '골칫거리'로 취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논점이 등장할 수 있다. 스스로 돌보지 못한 X 자신의 성격적 결함, 사무에 집중하느라 비인간적으로 비춰지는 태도, 철새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행적 등등. 이들 각각은 모두 논의하기에 흥미로운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능력의 분산을 통해 나타나는 무능'이다.
아마도, X라는 인간은 그 자체로만 볼 때 어느 정도 유능한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은 다양한 관심사를 토대로 여러 층위로 분류될 수 있는 각종 프로젝트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그에 걸맞은 일말의 근거가 존재할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어쨌든 아무런 근거 없이 단지 스스로 유능하다고 믿을 뿐인 사람은 여러 일을 병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지 못하거나, 시도해본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X가 그 능력을 '여러 일'에 할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늘상 일상생활 속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의식을 할당한다. 그 중요도에 따라 더 주의 깊게 다루는 문제가 있고, 덜 신경 쓰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처리하는 우리의 능력이 특별히 부족하다고 평가받진 않는다. 이 자체가 문제라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공통적인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을 비롯해서, 주위를 둘러봐도 일상에서 그런 종류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닌 듯하다.
문제의 양상은 이렇다. A 그룹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팀에 부과된 프로젝트에 열중하거나, 많아봐야 두어 개 정도의 일만 병행하는 사람들이다. B 그룹도 대체로 그렇고, C 그룹도 마찬가지다. 즉, 이들은 해당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1인분'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로써, 다른 팀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명시적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X는 너무 바쁘다. X는 여러 그룹에서의 업무를 병행하느라, 각 그룹에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작업의 수준을 과소평가했다. 물론 X는 최선을 다했다. X는 평범한 사람이 자기만큼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가정할 시, 쉽사리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상술했다시피 X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만 볼 땐 유능한 축에 속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X가 해내는 모든 일의 총량은 일반적인 한 개인에 비해 탁월한 수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X는 억울하다. X는 사람들이 '내가 바쁜 와중에도 이만큼 훌륭한 성과를 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런 불가피한 부분을 배려해주길 원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A 그룹 사람들은 팀적으로 볼 때, X가 A 그룹에서 할당하는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외엔 어떤 것도 관심이 없다. 그건 B 그룹에서도, C 그룹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X가 자신의 환경적 여건'치고는' 잘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X가 보여준 실적이 팀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가면 쌓여갈수록, X는 스스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뿌듯함을 느낄진 몰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X에 속한 여러 그룹의 사람들은 X의 사정을 이해해줬어야 했을까? X의 실적을 X의 개인사에 비추어 헤아려줘야 했을까? X는 그래 줬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X는 그들이 '그래야만 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X의 마음엔 억울함이 가득하니까.
결국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모종의 팀 작업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약속 이행과 자기 능력 파악이다. 팀에서 요청한 일, 그래서 하겠다고 약속한 일에 대해선 어떤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인드 세팅이 필요하다.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애당초 일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불가피한 상황에선 보다 독한 마음으로, 개인사를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 조건, 역량을 넘어서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선 다소간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거절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결국 떠밀려서 한 약속은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단순히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역량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개인사를 조율할 수 있는 재량, 상황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 같은 것들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그러니 유능하고자 하는 사람은 되도록 많은 변수를 고려하면서 업무에 임해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가능한 일'에 대한 믿음은 일정 부분 환상이다. 현실에선 온갖 변수가 발생하며,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상태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여유 기간을 도입하는 게 결과적으로 이로운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달성하면 적어도 성실한 사람이 되고, 그보다 빨리 처리하면 유능한 사람이 되니까.
문제는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불화를 일으키게 되고, 시스템 상의 갈등과 긴장을 초래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해당 구성원이 퇴출되거나 팀이 붕괴된다. 바꿔 말하면, 이런 요인을 과감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팀은 붕괴된다.
자기 능력을 잘못 평가하는 사람, 특히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약속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규모의 문제를 떠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축소해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사람도 팀 차원에선 마이너스 요인이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 충분히 할 수 있는 일까지 애꿎은 사람이 떠맡게 되기 때문이다.
핵심은, 상황 점검이 필요할 땐 각각의 '닫힌 시스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확장해 개인사나 노력, 헌신의 정도 같은 시스템 외적인 요인을 가미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면, X처럼 '억울한'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해당 예시에서는 X가 부당한 평가를 받은 게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각각의 닫힌 시스템이 요구하는 성과보다 낮은 수준에서 할당하는 건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된 것이고, 자기 인식도 부족한 것이다. 즉, X는 유능하지만 무능하게 일을 처리했다. X는 자신의 삶에 너무 취해 있었다.
X의 삶의 태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X의 예로 비추어 보자면, 그냥 일을 조금 줄이면 해결될 일이다. 그럼 애당초 유능했던 X는 각각의 그룹에서 평균 이상의 성과도 내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론 현실에서 이 같은 문제 상황에 봉착하면 X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좌절한다. 보통은 크게 낙담한다. 이렇게 살아온 의미는 무엇이며, 내 노력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등 다양한 회한에 빠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재기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문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선택들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자신이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해당되는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어렵다. 그건 어쩌면 자신이 매달려온 노력의 가치를 전체를 부정하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자신에게 매몰되지 않고,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단순한 원칙일수록, 지켜지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런 얘기들이 새어나오는 이유는 아마 그것이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