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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터리 May 12. 2024

'벌레'를 키우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만났다

다큐를 지키고자 하는 한 명의 제작자 이야기

‘애완 벌레’를 키우는 특이한 피디님을 만났다.


그냥 쓱- 하고 앞 문장을 읽었을 때는 애완동물로 잘못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애완 ‘벌레’다. 피디님이 벌레를 키운다는 이야기는 동료한테서 들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기겁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충격과 함께 반사적으로 ‘왜?!’라고 물었다. 듣고 보니, 피디님이 벌레와 생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셨고, 벌레를 오래 촬영하다 보니 정이 드셨다고 한다.


놀라는 나와 달리, 동료는 그런 피디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동료 본인도 자연 다큐멘터리를 1년간 하다 보니, 어느새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 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동료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처음 했을 때만 해도 하기 싫어했었는데, 그런 동료의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


동료와 피디님을 보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촬영하고 기록하는 일 이외에도 관찰하고 애정을 갖는 일이라고 느꼈다. 일을 하면서 그 대상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직업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롭고, 애정을 가진 대상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들이 일에 대한 열정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정은 지루한 시간을 버텨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1년에 2부작~6부작을 제작하는 장기 다큐멘터리는 매주 방송이 있는 레귤러 프로그램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처음 장기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을 때는 길고 긴 제작 기간이 지루하게 느껴져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긴 시간 동안 대상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고, 알아갈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장기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져진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동료, 피디님과 함께하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 중 하나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자신만의 서사, 개성, 철학과 같은 단단함 등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상이 담겨있다. 나는 그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들에 대한 동경이 생겨난다. 나도 나만의 서사와 개성으로 살고 싶었는데, 눈치가 너무 발달한 덕에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동료와 피디님과 같이 철학과 개성이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직업에 큰 의미를 갖고, 그 일을 하기를 간절히 바랐었나 보다. 어쩌면 멋들어진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향해온 나의 동경이 내 일의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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