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터리 May 06. 2024

시청률 0% 지원사업 0개 다큐 멸망의 시대가 온다

다큐를 지키고자 하는 한 명의 제작자 이야기

어떤 문제든 예고하고 오는 경우는 없다. 다큐멘터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다큐 멸망의 시대’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 다큐멘터리 시청률은 0%~1%. 그것보다 더 문제인 건 지원사업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예산은 없고, 프로그램에 담을 수 있는 창의력은 점점 사라져간다. 무엇보다 예산이 없어지면 제작 환경이 좋아지지 않는다. 담당 피디님의 깊어진 주름과 함께 높아진 잔소리 때문에…


다큐멘터리에 큰 예산을 들여 만들어도 그만큼의 시청률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지원 사업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피디님은 지원 사업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이 작업이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예산은 그만큼 프로그램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평소에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시던 피디님도 지원 사업 기획안을 작성하는 그날만큼은 조금 날이 서있었다. 덩달아 나도 긴장하게 되었다.


긴장한 탓일까. 실수하게 되었다. 지원사업 제출은 오전 11시. 나는 오전 10시까지 피디님이 찾아달라는 자료가 아닌 엉뚱한 자료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나는 그날 피디님이 화를 내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 재촉하는 피디님의 말 속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고, 계속해서 가는 시간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 자료가 없어도 제출하는 데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마음도 들면서 피디님의 예민함에 공감이 어려웠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 마우스는 뭐라도 클릭하려고 움직이고 있었고, 정말 예상 밖에도 그렇게 찾던 자료가 그곳에 있었다. 피디님께 바로 보내드리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후에 결론은 다행히 해피엔딩이었다. PT를 거쳐 무사히 지원사업을 확보했다. 이때 큰 성취감과 함께 프로그램에 대한 큰 애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모든 팀이 우리처럼 운이 좋지는 않았다.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의 내용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예산을 아끼려고 조연출과 취재 작가를 고용하지 않기도 했다. 제작 상황은 열악해지고, 그런 다큐멘터리는 또 인기가 없어질 것이다. 이제 곧 다큐멘터리 지원사업이 0개인 시대는 우리의 코 앞에 있다.


한 피디님은 말했다. 


“드라마 속에서 정통 연극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색하고, 몰입이 깨지잖아요?
유튜브 콘텐츠가 가득한 곳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는 것도
그것처럼 어색한 그런 느낌이에요. 그게 고민이에요.”


나는 이 말 속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파티장에서 모두가 드레스를 입고 왔는데, 나 홀로 잠옷을 입고 왔을 때의 외로움.


그 외로움 속에서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시청자 댓글을 발견할 때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에게는 큰 보람이다. 그때만큼은 다큐멘터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뒤에 두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다큐멘터리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기심은 어디에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