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를 지키고자 하는 한 명의 제작자 이야기
다큐가 진지해야 할까?
적어도 스무 살 때 갓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다큐가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입학 전까지. 하지만 대학을 입학 후 ‘다큐=진지한 것’이라 생각하던 나의 생각을 뒤집은 한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그 선배와의 만남은 대학교 1학년, 스무 살 때 다큐멘터리 제작의 꿈을 안고 방송연구회라는 동아리에 다큐멘터리 팀에서였다. 내가 생각했던 다큐의 이미지는 차분하고, 지적이고, 조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출 선배는 후배들을 놀리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였다. 게다가 항상 까불거리고, 전공 필수 과목 F일 정도로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또 말 많은 수다쟁이였다. 그래도 무엇이든 팀과 함께하기를 좋아하고 누구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인간적인 선배였다. 선배는 우리가 밤을 새울 일이 생기면 옆에서 춤을 춰줄 정도로 웃긴 사람이고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지만 선배와 내가 만들 다큐멘터리의 결과에 대해서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리에서 만든 영상을 상영하는 방송제에서 우리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때, 의외의 반응을 보게 되었다.
우리의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편집할 때도, 시사회를 할 때도 웃긴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 관객에게는 예상치 못하게 빵 터지고 말았다. 그 일이 있기 전 나는 무겁고, 심각해 보이고 왠지 멋져 보이는 것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고 첫 회의 때 방송제에 어울리지 않는 범죄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아이템을 제안했었다. 만약 정말 나의 기획에 따라 범죄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아이템을 하게 되었다면 관객들이 가볍게 웃으면서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짝 웃음이 들어간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관객은 편안하게 시청하고 웃을 수 있었다. 그건 관객에게 우리의 다큐멘터리가 가진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우리의 다큐멘터리는 “예능보다 웃긴 다큐”라는 관객 평가를 받았다. 그건 다큐멘터리 제작자에게 있어서 보람이었다.
그 당시의 경험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서 다큐가 꼭 진지하고 심각하지만은 않아도 된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물론, 심각한 이야기를 다룰 때는 심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관객의 웃음은 연출을 담당한 선배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연출 선배가 남을 웃기고 즐겁게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웃긴 컷 편집을 할 수 있었고, 그리고 예능보다 웃긴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보면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사람을 잘 보여주는 장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도 예능보다 웃기고 몰입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하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다큐라는 장르에 스며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