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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터리 Jan 28. 2024

정직하고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유리한 직업

다큐를 지키고자 하는 한 명의 제작자 이야기


나는 방송 제작을 꿈꾸면서 방황했던 시기가 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라는 것 때문이다.



신문방송학과에서 영상을 만드는 수업을 할 때, 학과 동아리에서 방송제에 올라갈 영상을 제작할 때, 광고 공모전에서 기획자를 맡아 처음 광고 기획을 하게 되었을 때, 첫 인턴을 하게 된 웹 콘텐츠 팀에서 기획안을 작성해야 할 때 등…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3시간 산책을 하면서 걸어도 보고, 밤을 새우기도 해 보고 심지어 광고 공모전 준비를 할 때는 꿈에서 기획 아이디어를 짰던 적도 있다. 그렇게 나에게는 책상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나오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였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광고 공모전에 만난 한 친구는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친구였다. 발상이 좋아서 하나의 단어로도 관련된 이미지를 순식간에 떠올리는 재능을 가진 친구였다. 그 친구는 광고라는 분야가 잘 어울렸다. 또 학과 실습수업에서 만난 한 친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연결 잘했다. 기획에 재능이 있었다. 대외활동에서 만나는 친구는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참 잘 놀고, 잘 만드는 다재다능한 친구였다. 그리고 이들 모두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달리,

‘크리에이티브’는 나에게는 늘 숙제인 것 같았다.



이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친구처럼 발랄하기보다 진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규칙을 잘 지키는 정직한 사람이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규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래보다 깊이 생각하는 성격 탓에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크리에이티브’ 했을 때 떠오르는 재기 발랄하고 유쾌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한 영상을 만드는 직업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었다.  나는 ‘크리에이티브'랑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았고, 그 생각을 하는 동안은 방송 제작에 있어서 자신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괴롭혀오던 이 의문은 한 사람으로 인해 멈추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장기 다큐멘터리 방송을 제작하면서 만난 나의 상사분이었다. 그분은 한 회사에서 평생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보내신 분이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예능은 어느 정도 타고난 끼와 타고난 직감이 있어야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야. 다큐멘터리는 정직하고 오래 아이템을 찾을 수 있는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유리한 직업이야.” 그 말을 듣고 희망이 보였다. 



나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희망. 

나랑 잘 맞는 자리를 찾았다는 희망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불 꺼진 회사 의자에 혼자 엉덩이 무겁게 앉아, 다큐멘터리를 조금 보고, 조금 매력적인 자료를 찾고, 조금 괜찮은 인물을 보게 되었다. 이 노력이 언젠가 시청자에게 닿는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다큐멘터리에 내 희망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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