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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터리 Feb 04. 2024

첫 문장부터 거짓말이라니

다큐를 지키고자 하는 한 명의 제작자 이야기

나는 책을 사기 전 첫 문장을 꼭 읽어본다. 



첫 문장이 마음에 들면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방송의 오프닝은 소설의 첫 문장과도 같다. 소설이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면, 방송은 오프닝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프닝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청자에게 ‘안녕!’하고 첫인사를 건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프닝 연출을 고민하며, 회의 시간에 팀원들과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을 보았다. 그때 보았던 다큐멘터리 중에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과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좋지 않다고 느꼈던 한 다큐멘터리는 교수님 한 분이 출연해서 연출을 위해 연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보는 사람이 다 어색했다. 연기를 하시는 교수님이 전문 방송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착용한 느낌이 있어서 불편했다. 그리고 이 기분이 그대로 시청자인 나에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좋지 않았다. 꼭 첫 만남부터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았던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WORK>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출연해서 자신의 시그니처 행동과 말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였다. 그 인물이 평상시에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연출을 위해 하는 작위적인 느낌이 아니었으며, 다큐멘터리의 시작을 유명인의 시그니처 행동과 말이 주제와 연관된다는 것에서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가 기대되고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장르이다. 시청자는 '사실'을 기대하는 데, 연출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각본대로 행동하는 느낌이 적나라하면 거부감이 든다. 내가 호감을 느꼈던 다큐멘터리는 스스로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프로그램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인물을 섭외하고, 그 인물의 일상 배경으로 시작하는 것부터 주제가 명확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물의 친숙하게 본모습들이 첫 화면에 등장할 때 그게 연출이더라도 사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요즘 다큐멘터리의 문제점을 알 것 같았다.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시청자 모두 영상을 보고, 영상을 배우지 않아도 만들 수 있다. 예전 영상을 제작하는 법을 몰랐으면, 그 '사실이 아닌 것'을 보여줘도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봤을 것이다. 시청자는 거짓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다큐멘터리 시청자는 더더욱 그것을 기대하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아니다. 이제 다큐멘터리는 습관적으로 만드는 작위적인 연출에서 벗어나 솔직해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이번 계기를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결심한 것이 있다. 앞으로 오프닝에 대해서 제작하는 데 있어서, 멋진 오프닝보다 좋은 오프닝을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작위적으로 멋진 시작을 하는 것보다,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끌리는 그런 시작을 만들고 싶다. 처음 봤지만, 언젠가 본 사람처럼 친숙하지만, 또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글의 마지막을 영화 트루먼 쇼의 마지막 대사로 끝내고 싶다. 


'Oh, in case I don't see you,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할게요.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나잇.)


이 대사는 자신도 모르게 TV 프로그램에 인생이 생중계되었던 주인공 트루먼이 모든 사실을 알고 세트장을 떠나면서 TV 프로그램을 연출한 사람에게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할게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나온 것이다. 언젠가 방송에 작위적인 연출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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