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의 씨 자도 모르는 취준생이 영화과에 들어가게 된 이유 (2)
밴드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요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면서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공부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보냈다. 공부는 지긋지긋 했다. 이제는 뭐든 재밌어 보이는 걸 하리라 생각했을 무렵, 신입생 OT에서 이상한 밴드 동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 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전쟁과 군대가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조약골 <평화가 무엇이냐>
가사가 신기하기도 했고 공감이 가기도 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컬이었던 선배가 잘 생겼기 때문에, 뭣도 모르고 그 밴드 동아리방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뭣도 모르고 동아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게 내가 ‘운동권’으로 불리던 무리에 속하게 된 계기였다.
처음엔 ‘민중가요’라는 것을 부르는 게 우리의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에 노래 부르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삼삼오오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어느 날에는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갔고, 어느 날에는 ‘청년 주거권 보장’을 외치며 거리로 나갔다. 노동절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광화문을 점령했고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이 처한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처음에는 그저 선배들이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갔지만, 실제로 광장에 나와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을 보고 나서는, 세상에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매일을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갔다.
하지만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언제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사람’이었다.
지금에 와서 나는 운동권이나 종교단체나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종교단체가 그러하듯이 운동권 또한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종교단체가 그러하듯 운동권 사람들 또한 하나의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념은 매우 강력하다. 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는 말이지만 가슴으로는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 할 것이다. 나는 20대를 통과하는 내내 신념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신념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어떤 물리적 힘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일 뿐인 신념이 사람들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다.
당시의 내게도 신념이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게 내 신념이었다. 그런데 타인의 존엄을 위해 외치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동지들의 존엄은 무시했다. 말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그들은 함께 하는 이들의 존엄에 생채기를 냈다. 그런 경우를 무수히 많이 목격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신입생들을 ‘조직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고,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도구처럼 대했다. 또 그들 중 누군가는 여성 동지의 몸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함부로 만졌고,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보다 경험이 부족한 동지를 ‘멍청하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신념과 나의 신념은 같을 수 없었기 때문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