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허구의 인물이 과학 수사에 큰 영향을 끼치다
사냥모자와 돋보기, 파이프 담배, 홈즈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여기에서 돋보기에 한 번 주목해보자. 사건 의뢰인이나 런던 경찰청의 형사 레스트레이드로부터 사건의 개요를 들은 홈즈는 왓슨과 반드시 현장으로 간다. 현장에서 꼼꼼하게 하나도 거르지 않고 살펴본다. 여기에서 돋보기가 유용하게 쓰인다. 희미한 발자국 흔적을 보고 이게 얼마나 되었는지, 이 정도 크기이면 키가 어느 정도 될지. 현장의 가구를 살펴볼 때에도 이 기구를 사용한다. 물론 홈즈는 현장에 가기 전 설명을 들을 때 하찮게 여겨지는 세부 사항도 정확하게 말하라고 요구한다. 설명을 듣고 여러 가지 추론을 한 후, 현장으로 가서 증거를 보고 사전 추론에서 가능성이 낮은 것부터 차례대로 제거해 나간다.
이 브런치 2번에서 소개한 아서 코난 도일(ACD)이 뽑은 최고의 자기 작품 얼룩무늬 밴드(The Speckled Band)에 과학 수사 기법을 적용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의뢰인 집 근처에 집시가 야영한다, 그리고 한 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났다는 말에서 집시를 유력한 용의자로 여긴다. 홈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셜록은 이 집을 방문한 후 안에서 잠근다면 그 누구도 여기에 들어 올 수 없다며 집시를 용의자에서 제거한다. 이어 의붓아버지 방에 작은 금고와 최근 발자국, 야생동물에게 먹인 우유 등을 보고 점차 범인의 범위를 좁혀 간다. 쇼스콤 고택(The Adventure of Shoscombe Old Place)에서 홈즈는 현장을 조사하면서 현미경도 활용한다.
여기까지는 상당수 수사물에서 보는 전형적인 수사 기법이다.
“범죄를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수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는 코넌 도일의 소설만큼 강력한 게 없다”
1936년 미국의 과학 범죄학 연구소장이 한 발언이다. 당시 과학수사 기법이 급속하게 발전되었고 경찰은 이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신기술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때 ‘셜록 홈즈 소설에도 나오는 수사 기법이다. 홈즈의 과학 수가 기법을 한 번 봐라’는 말 한 마디면 상당수 반대자들이 설득을 당하곤 했다.
수사에서 지문을 활용하는 예가 소설에 나온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지문이 수사기법으로 도입된 것은 1897년이다. 모국 영국에서는 4년 뒤인 1901년이다. 그해 런던 경찰청은 지문국을 설립했다. 노우드의 건축 업자(The Adventure of the Norwood Builder)에 지문 수사가 나온다. 이 사건은 1894년에 발생했고 소설이 나온 것은 1903년 11월 스트랜드 매거진이다. 같은 달 미국 잡지 콜리어스(Collier’s)에서 동시 출판되었다.
사무 변호사 맥팔레인(McFarlane)이 생면부지의 의뢰인으로부터 전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서 작성을 의뢰받는다. 그는 의뢰인 집에서 마지막으로 나왔고 피살된 의뢰인의 집에서 발견된 모든 증거가 그에게 불리하다. 결정적인 게 피살자 벽에 새겨진 피묻은 엄지 손가락 자국, 지문이다. 런던 경찰청의 레스트레이드 경위는 이번에는 홈즈를 이겼다며 의기양양하다.
1880년 10월 28일자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지문을 다룬 논문이 발표되었다. 인도에 근무중이던 영국인 치안판사 윌리엄 허셜(Sir William Herschel)경의 글이다. 그는 인도에서 지문을 활용한 예를 들며 사람마다 고유의 지문을 보유하기에 흉악범들의 지문을 보유하면 범죄인을 잡을 수 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ACD가 이 글을 읽었거나 1892년발간된 지문을 다룬 책을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셜록 홈즈는 흉악범을 잡는데도 탁월했고 이후에도 정의사회를 구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과학수사 방법 도입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기에.
사진 노우드 건축 업자 소설이 발표된 1903년 10월 31일자 미국의 콜리어스 매거진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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