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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l 20. 2024

가려운 곳이 어딘지 모를 때

결국 원인은 나

가렵다. 뒤통수가 가려워 자꾸 신경이 쓰인다. 더 짜증 나는 건 정확히 어느 부위가 가려운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고, 왜 가려운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비행기에 앉아 짧은 뒤통수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올려 보지만, 가려움을 없애는 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 같기만 하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이번엔 아까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지만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잘 알아채지 못하도록 의도하며 긁어본다. 비상구석에 자리 잡은 나의 옆자리는 다행히 비어있지만, 바로 뒤의 세 자리는 모두 승객이 앉아 있다. '벅벅'하고 두피에 손가락이 닿는 정도는 아니고, 털이 복실거리는 푸들의 머리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예쁘다.' 하며 쓰다듬는 것처럼 최대한 얌전하게 긁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안 되겠다. 이제 앞으로 고개를 숙인 뒤에 양손으로 뒷목을 잡고 정수리까지 몇 차례 쓸어 올리기를 반복하며 가려움을 때려잡기 위한 몸부림을 쳐본다. "띵." 시트 벨트의 해제 사인이 들어오자 나는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기도 하고 양치도 해본다. 머리를 실컷 흐트러보기도 한 뒤에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 승무원이 안대를 가지고 나에게 온다. "필요하시면 이것 쓰세요." 아무래도 내가 잠을 자고 싶으나 뭔가 불편해서 못 자는 줄 알았나 보다. 감사하다며 받긴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불편한 것은 아니다.


날이 더운데 골프를 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골프 모자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골프 전문 매장이 아니라 일반 스포츠 매장으로 들어가서 구멍이 잔뜩 뚫린 흰색의 나이키 마라톤 모자를 집어 들었다. 어차피 지난해부터 시작한 달리기 연습을 할 때 쓰면 되는 거니까 이것을 사서 골프 칠 때도 쓰고 마라톤 연습을 할 때도 쓰면 되겠다. 구멍이 숭숭 뚫린 흰색 모자는 일반적인 골프 모자보다 가벼웠다. 바람이 불면 앞의 챙이 들어 올려져서 바람의 방향에 따라 휘익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벗겨질 뻔한 적도 있다. 또 확실히 뒤통수에 뚫린 꽤 많고 커다란 구멍으로 통풍이 잘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자를 쓰고 골프를 쳐도 가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난 와이프에게 내 고민을 말했다. 와이프는 나에게 다른 가려움의 원인이 될 만한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아마 샴푸가 나와 맞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비듬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데도 뭔가 좋은 기능성이라고 되어있는 샴푸를 사용해 본다. 가려움 방지, 비듬 방지와 같은 기능들을 전면에 적어놓은 샴푸다. 


'이것도 아니다.' 내 뒤통수 가려움은 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젠 그 원인을 찾았다. 가려움의 원인은 바로바로 '술'이었다. 지난해부터 한동안 술을 끊고 살다가 최근에는 다시 술을 좀 마셨다. 특히 지난번 한국으로 출장을 가서는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셨는데, 술이 바로 이 가려움의 원인인 것 같다. 베트남으로 다시 들어와서 요즘에 술을 마시지 않자 가려움이 사라졌다. 술과 연관하여 가려움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알코올에 대한 내 몸의 알레르기 반응이 맞는 것 같다. 체내에서 알코올의 독성을 잘 분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원인일 것이라고 나름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몸이 약해지기도 했고, 원래 몸에서 잘 받지 않았었는데 과거에는 늘 마시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살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항상 피부에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잘 못 견디겠다.



다시 달리기에 집중하며 술을 끊어보기로 다짐을 한다. 11월 초에 있는 호치민 시내에서의 하프 마라톤 대회(포카리 스웨트 대회)도 신청을 했다. 이제 100일이 조금 넘게 남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흰색의 모자를 쓰고 비가 그친 동네의 아스팔트 바닥을 달린다. 지금 호치민은 한창 우기 시즌이라서 하루에 한 번 정도, 약 한 시간씩 비가 온다. 다행히 퇴근 후 내가 달리기를 연습하러 나가는 시간 전에 비가 그치면 좋지만, 그러지 않고 그 시간에도 계속해서 비가 오면 헬스장으로 가서 달린다. 3Km 또는 5Km의 마라톤 연습용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하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비싼 기능성 샴푸를 써서 그런지 모발이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냥 가려울 수는 없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이었다. 그래도 해결할 있는 것이 원인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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