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업무시간이 끝나고 있다. 오늘의 하루는 월요일과는 다른 금요일의 하루였다. 그 두 요일 간 하루가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요일마다의 분위기는 법이니 오늘의 하루엔 '즐겁다'는 수식어를 붙여본다. 오늘은 퇴근시간이 가까울수록 더 마음이 들뜨는 날이다. 두껍고 투명한 사무실의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직원들의 움직임을 보아도 그렇다. 퇴근시간이 다 되었지만, 아직은 회사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30도를 훨씬 웃도는 무더운 날씨라서 아침부터 에어컨을 하루종일 틀어두었더니, 퇴근 무렵의 지금은 살짝 쌀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상 구석에 놓여있는 기다란 리모컨을 집어 들어 '띡'하고 에어컨을 껐다. 가로로 걸려있는 하얀 LG 벽걸이형 에어컨의 날개 2개가 '안녕'하며 아래로 한번 내려왔다가 다시 위로 접힌다. 내 사무실은 원래도 조용했지만, 이제는 더 조용해졌다. 이처럼 더 조용해진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문서들과 필기구들을 천천히 관찰해 본다.
그러다 컴퓨터를 끈 뒤에 관찰 대상을 사무실 전체로 넓히기 시작했다. 정확히 수치를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일곱이나 여덟 평 정도 되는 사이즈의 사무실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사무실에서 내가 앉은 책상의 왼편과 뒤쪽은 시멘트 벽으로 되어있고, 정면과 오른편은 커다란 통유리가 각각 4조각씩 이어져 벽을 만들고 있다. 밝은 색 나무로 된 내 책상은 사무실의 정중앙에서 뒤편 시멘트 벽에 있는 창문 쪽에 가깝게 위치해 있어서, 내가 자리에 앉으면 정면의 응접용 테이블을 지나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직원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오른쪽의 통유리 벽에는 책장과 냉장고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바깥쪽의 어떤 움직임들만 알아챌 수 있을 뿐 직원들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정면의 유리 벽 한쪽엔 커다란 유리문이 달려있고, 사방의 각 벽에는 사진과 지도, 또 달력들이 걸려있다. 총 두 개의 달력이 있는데, 하나는 한국에서 만든 달력, 그리고 또 하나는 베트남에서 만든 달력이다. 난 번갈아가며 한국과 베트남의 달력을 바라본다.
공휴일을 표시하고 있는 베트남의 달력
어차피 전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달력이다 보니 뭐 다를 것이 있을까 싶지만, 베트남의 달력은 내가 한국에서 보던 달력과는 다르다. 거의 모든 베트남 달력에서 일주일의 시작은 한국처럼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이다. '그래, 우리가 월화수목금토일이라고 부르니까 월요일이 앞에 있는 것도 맞겠네.'라고 싶기도 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본다. '일주일의 시작은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에 'ISO 국제표준상으로는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입니다.'라는 사무적인 대답이 적혀있다. 그렇다. 내 생각대로 일주일의 시작이 월요일부터라서 베트남은 월요일을 달력 맨 앞으로 빼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 앞에 걸려있는 사무실의 달력을 본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토요일과 일요일이 연달아 일주일의 맨 뒤에 표기된 것이 연속하여 쉬는 주말을 더 잘 표현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달력에 쓰여있는 베트남의 요일도 다시 보게 된다. 생각할수록 베트남에서 요일을 나타내는 단어의 방식이 간단하면서도 복잡해 보인다. 요일을 숫자로 표시한다는 점에서 간단한 방식이란 생각을 한다. 월화수목금토일이나 먼데이(Monday), 튜즈데이(Tuesday)와 같이 요일별의 단어를 따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에선 요일을 그저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이라고 부른다. 외국어의 학습자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다만, 복잡해지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직관적으로 월요일은 첫째 날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베트남어로 월요일은 둘째 날(Thứ Hai, 트하이)이다. 화요일은 셋째 날(Thứ Ba, 트바), 수요일은 넷째 날(Thứ Tư, 트뜨), 토요일은 일곱째 날(Thứ Bảy, 트바이)과 같은 방식으로 요일의 명칭이 정리되어 있다. (또 특이하게 일주일의 마지막인 일요일(Chủ Nhật, 쭈녓)은 한자로 쓰면 주일(主日)이다.)
즉,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루씩 차이가 나게 요일의 명칭이 되어있어서, 베트남 사람들과 요일을 이야기할 때면 손가락으로 잘 세어보아야 한다. 직관적으로는 수요일이 셋째 날 같은데, 베트남어로는 넷째 날이 되는 식이다. 그래서 베트남어로 요일을 말할 때마다 한 손으론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는 것과 같은 답답함이 연출된다. 이런 이유로 약속을 잘못 잡은 적도 있었다. 왜 이런 식으로 요일의 이름을 붙였을지 생각해 본다. 분명히 일요일을 그 주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그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과 같은 순서로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일요일을 첫째 날이라 하지 않고 주일이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지 않은 내 생각일 뿐이다. 물론 정확히 더 검색을 해서 알아볼 수도 있겠으나, 이제 즐거운 주말의 시작을 앞두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머리 복잡하게 하진 않기로 한다. 이제 퇴근이다.
이번에도 이 달콤한 주말이 지나면 또다시 쳇바퀴 돌듯 월요일이 시작되겠지. 학창 시절부터 지금껏 월요일을 좋아해 본 적이 있기는 했었던가? 몇 번 생각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좋아하지 않았다. 일곱 개의 요일을 두고 전 국민이 투표한다 하더라도 세대별, 지역별 상관없이 월요일이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하며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 요일이 될 것임을 장담할 수도 있다. 월요일의 돌아옴을 애써 잊어보고자 전 국민이 일요일 저녁마다 개그콘서트를 보던 때도 있지 않았던가? 아무리 그런다고 하더라도 봉숭아학당의 종료 음악과 함께 암울한 생각(월요일이 코앞이란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곤 했지만 말이다.
요즘의 나는 일요일 저녁에 개그콘서트를 보진 않는다. 대신 어두워진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면서 '내일이면 또다시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이 되는구나.'라며 우울한 생각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아니지, 베트남에선 내일이 둘째 날이지.' 이렇게 베트남의 요일 명칭으로 잠깐 뇌를 속일 수는 있겠다. 한 주의 시작이지만 이미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된 것 같은 착각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