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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Sep 23. 2023

무섭고 징그러운 것을 대하는 태도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오 마이 갓!

이 녀석을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태어나 처음 본 녀석이었고, 징그럽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생물체가 기다란 몸 전체에 달린 촘촘한 다리를 가지고 꿈틀거리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통통한 지렁이 같기도 해 보이지만 너무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고, 지네라고 하기에는 몸통이 너무 연약하다. 지렁이의 2~3배 정도 되는 굵기를 가진 이 녀석은 온몸에 용수철 같은 무늬를 두르고 있다. 은회색 한 줄, 그리고 검은색 한 줄. 이렇게 두 가지 색을 한 쌍으로 수십 개의 쌍이 온몸을 두르고 있다. 이 한 마리의 몸에는 그어져 있는 은회색 줄과 검은색 줄을 보고 있으면 다시 한번 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구두를 신고 있고, 이 녀석을 그냥 밟아 버릴 수도 있긴 하지만, 내 두꺼운 구두 밑창을 통해 밟히는 이 녀석의 촉감이 두려워 결국엔 새끼발가락 쪽의 구두 한쪽 끝으로 이 놈을 저만치 밀어내기만 했다. 밀어내는 느낌도 징그러웠다. 발로 휙 밀쳐내면 이 녀석은 몸을 똘똘 말아 암모나이트 같은 모양으로 감아버린다. 그러면 똘똘 말린 바깥쪽의 은회색과 검은색 고리무늬는 더 넓어지고, 안쪽의 무늬는 좁아져 버린다. 베트남의 우기가 시작될 무렵, 공장 흙바닥에서 보이기 시작한 이 녀석은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났다. 아무튼 한국에 살면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어떤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서도 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아마 본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 녀석을 사진 찍거나 그려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조차 두렵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간 수십, 수백 마리의 이 생명체와 맞닥뜨려야만 했다. 타워 디펜스 게임에 나오는 괴물처럼 똑같은 모양의 징그러운 녀석들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꿈틀대며 전진해 왔다. 피할 수가 없었다. 공장 앞마당으로 나갈 때마다 마주쳐야 했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 숫자가 많아진 이 녀석들은 사무실 계단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발로 차고, 도망치며 이들을 죽여보기도 하고 애써 이들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자 노력하기도 했으나,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얼마 후에 마음을 바꿨다. 제일 통통하고 소름이 돋는 한 놈을 뒤따라가서 스마트폰으로 근접 촬영을 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의자에 앉아 바라보았다. 확대해서 통통한 몸통을 계속 보면서 한번 더 몸을 부르르 떨어보기도 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큰 화면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계속 보다 보면 나중에는 별거 아닌 지렁이 같은 정도로 생각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관찰하다 보니 정말로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구글에도 검색해봤더니 '노래기'라는 멀쩡한 이름도 있는 녀석이었다. 외모만 가지고 평가하면 안 되는 거지만, '난 널 아무리 오래 보아도 예뻐해 주진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익숙해졌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이제 전처럼 몸이 떨리며 공포스럽진 않다.


노래기(최대한 작은 사진으로 올렸어요. 죄송)


직업의 특성상 농장에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돼지를 키우고, 닭을 키우고 하는 농장엘 간다. 베트남 시골에 있는 농장은 아직 작은 규모의 곳들이 많고, 시설이 좋지 않은 곳들도 많이 있다. 베트남의 농장주들은 그런 냄새나는 농장 앞에 나를 위해 커다란 테이블을 차려놓고 식사를 준비해 주기도 한다. 테이블 위에는 돼지고기 수육, 닭백숙이 올라와 있고, 바로 뒤의 농장 건물에서는 돼지가 꿀꿀대며 소리를 질러댄다. 파리는 테이블에 까맣게 올라앉아 있고,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의 분뇨 냄새는 농장주가 차려놓은 음식 냄새를 덮어 버린다. 농장주인은 맛있게 먹으라며 닭다리를 하나 뚝 잘라서 내 앞접시에 올려놓고 나를 계속 부른다. 난 농장 건물 앞에 서있다. 파리가 날리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만, 오늘 여기서 밥을 먹고 가야 한다. 난 농장 앞에 서서 가축의 분뇨 냄새를 맡는다. 숨을 더 들이킬 수 없을 때까지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셔 폐에 가득 채운다. '됐다.' 


"네! 사장님! 같이 맛있게 드시죠."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러면 그 상황을 똑바로 바라본다. 물론 너무 싫은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이다. 그 상황이 예뻐지진 않을 테지만, 견딜 만 해질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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