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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n 06. 2023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는 라면 조리법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여기는 쌀국수의 나라, 베트남. 외국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그렇게 고역이라고 하던데, 내 입에는 베트남 쌀국수가 그렇게 잘 맞는다.


일반적인 쌀국수인 포(Pho)


베트남에 와서 쌀국수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흔히 베트남 쌀국수라고 알고 먹었던 것은 베트남 북부지방에서 유명한 포(Pho)라는 것이었고, 지역마다 다른 스타일의 쌀국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북부는 포(Pho), 중부 지역에서는 분보(Bun Bo), 남쪽에는 후띠우(Hu Tieu)라는 유명한 쌀국수가 있다.


왼쪽; 달콤하고 담백한 후띠우(Hu Tieu), 오른쪽; 새콤하고 매콤한 분보(Bun Bo)


이렇게 국물에 먹는 것 이외에도 분짜(Bun Cha), 분팃느엉(Bun Thit Nuong) 등 다양한 쌀국수가 있다. 베트남에 와서 처음 몇 개월간은 쌀국수를 정말 많이 먹었다. 그러다 1년 정도가 지나면서 그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쌀국수를 먹는다. 베트남 각 지역에 출장 다니면서 그 지역의 유명한 쌀국수들. 예를 들면, 생선이 들어간 쌀국수, 오징어가 들어간 쌀국수와 같이 다양한 쌀국수를 먹어보는 것도 나에겐 소소한 재미가 되기도 한다.




베트남 법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초창기. 점심식사가 참 어려웠다. 함께 일하고 있는 한국 법인장이 사무실에 있는 경우에는 10분 거리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맛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거기밖에는 한국 식당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문제는 나 혼자 있는 날이었다.


법인장이 출장을 가는 날이면, 난 혼자 사무실과 공장을 지키며 베트남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구내식당에서는 오직 베트남 음식만 가능하다. 베트남 직원들은 맛있다며 잘 먹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 음식이 종종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음식이 한국보다 짜기도 하고, 반찬으로 개구리 조림이나 돼지 내장 요리 같은 게 나오면 조금 힘들었다. 물론 먹긴 했다. 힘들게.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와이프의 상태를 볼 때 이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 김치, 참치 등을 회사에 쌓아놓고 베트남 구내식당의 음식을 먹기도 했다. 내가 식당으로 들어가면, 구내식당의 조리사는 계란프라이를 따로 해서 내 식판에 올려주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 개씩 계란프라이를 해줬다. 조리사 아주머니가 고맙게 느껴졌고, 조리사도 '맛있지?'라는 표정으로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녀는 특별히 나에게만 베트남에서 나오는 과일들, 망고, 구아바, 잭플루트 같은 것들을 후식으로 건네주기도 했다.


하루는 라면이 먹고 싶었다. 회사에서 컵라면을 종종 먹긴 하는데, 그건 그저 간식으로 먹은 것이었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싶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인 신라면을 가지고 회사로 갔다. 나는 그냥 조리법대로 끓인 라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끓이려고 구내식당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조리사가 본인이 끓이겠다면서 라면을 봉지채 들고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이 상황을 밖에서 지켜보던 통역직원이 쪼르르 주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끓일 테니까 냄비만 주세요." 조리사에게 얘기했더니, 통역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냄비를 달라고 조리사에게 대신 얘기해 준다.


"내가 끓여줄게요." 조리사가 대답하며 웃고 있다.


"내가 끓이는 게 더 좋아서 그래요. 냄비 어딨어요?" 난 아무래도 못 미더웠고, 내가 끓여 먹고 싶었다.


"냄비가 큰 것 밖에 없어서 Mr. Lim이 끓이기 힘들어요." 조리사가 엄청 커다란 냄비를 가리키며 웃고 있다. 냄비가 진짜 커 보인다. '이건 진짜 전문가가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그러면 계란 풀지 말고 라면만 끓여줘요." 통역 직원에게 얘기했고, 조리사도 이해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주방에서 구내식당으로 나와 밥을 먹고 있는 다른 베트남 남자 매니저와 한 테이블에 앉아서 내 라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덥다. 식당 내부는 온통 파란색이다. 푸른 계열의 타일이 바닥에 깔려있고, 벽에도 푸른빛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테이블과 의자는 은색의 스테인리스 재질이다. 전체적으로 시원해 보이지만 진짜로 시원하진 않다. 에어컨 없이 천장의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다. 커다란 구내식당의 모든 창문과 출입문은 열려있지만,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 덥고 땀이 난다. 라면을 기다리며 베트남 매니저에게 날이 덥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조리사 아주머니가 커다란 은색 쟁반 위에 하얀 플라스틱 그릇을 담아 들고 나왔다. 코카콜라 한 캔이 함께 쟁반에 놓여있고, 옆에 있는 작은 접시에는 바나나도 한 송이 담겨있었다. '그래 역시 라면은 센 불로 끓여야 맛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구내식당의 센 불로 끓인 라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원래 면요리를 잘합니다."라고 아주머니가 말했다며 나와 함께 있던 남자 매니저가 얘기해 준다. 나도 그 말을 듣고 라면을 보기 전 약 0.5초간 잠깐 기대하기도 했다.


'이게 뭐지?' 나는 속으로 정말 '뜨아' 싶었다. 라면이 잘 안 보인다. 국물이 대접을 거의 넘칠 정도로 담겨있었고, 대접을 내려놓는 아주머니 엄지 손가락이 찰랑대는 국물에 담겼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이 넘치지 않게 조심스레 내 앞에 라면을 내려놓은 뒤, 조리사 아주머니는 내 표정을 확인한다. '잘했쥬?'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읽히지만 나는 얼굴 전체로 실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라면의 국물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라면이 담긴 대접 안에는 얇게 썰린 소고기, 고수, 숙주나물이 가득 쌓여있었고, 그 옆에는 반으로 잘린 라임도 있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내가 계란 풀지 말라고만 했지, 다른 것 넣지 말라는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이 분은 베트남 정통 방식의 쌀국수에 한국 라면의 콜라보를 만들어 오셨다.


최선을 다 한 조리사 아주머니에게 불만족을 표현하기는 미안했다. '뜨아' 싶기는 해도 일단 한 젓가락 먹어보았다. 역시나 싱겁고, 라면 맛이 하나도 없는 정체불명의 밍밍한 맛이다. 숙주 나물이 사각사각 씹힌다. 난 먹을만하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에게 주방으로 들어가시라고 손짓했고, 아주머니는 맛있게 먹으라며 한번 웃어주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바나나를 먹었다. 콜라도 마시고, 내 앞의 베트남 매니저가 밥을 다 먹고 잔반 처리하러 갈 때 후딱 일어나서 잔반통에 다녀왔다. 그렇게 스페셜한 라면은 통으로 사라졌다.




역시 쌀국수의 나라 베트남이다. 국수에 대한 자부심이 인스턴트 라면도 근사한 면요리로 대접하고 싶게 만들었나 보다. 참 바뀌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음식문화인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녀의 특별한 요리에 내가 특별한 반응을 보일 수 없어 안타까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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