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다. 이제는 KBO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 이정후 선수의 연봉 계약 결과가 발표되었다(관련 기사 클릭). 올해 연봉은 5.5억으로 프로야구 5년 차 최고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정후 선수의 연봉 상승은 경이롭다. 매번 KBO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 시즌 연봉 2억 3천만 원, 2020 시즌 연봉 3억 9천만 원, 그리고 올해 5.5억으로 3, 4, 5년 차 최고 연봉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이정후 선수의 스타성과 실력을 생각할 때 이는 당연한 결과겠지만, 나 역시 이 경이로운 기록을 만드는데 일부분 공헌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정후 선수는 과거 본인이 창업한 에이전시 소속 선수였고, 따라서 나는 3, 4년 차 연봉 협상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4년 차 연봉 협상 자료 제작을 주도했고 직접 협상 자리에도 배석했다. 4년 차에는 협상의 시작과 끝, 모든 협상 자료제작과 협상을 홀로 책임지면서 준비했기에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자료들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인 선수를 만족시키는 게 final, end purpose라면, 내 안의 내적 목표는 스포츠 산업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이정후 선수뿐만 아니라 박민우 등 좋은 스포츠의 소속 선수를 위해 본인이 제작한 협상 준비 자료는 기존 에이전트들이 사용했던 협상 자료와는 전혀 달랐다. 오죽했으면 협상을 담당했던 운영 팀장들이 협상 자료의 카피 본을 요구할 정도였다. 선수 연봉 계약뿐만 아니라 팀 마케팅을 위해 참고하겠다는 부탁도 해왔다.
일단 연봉 계산을 위해 국내외 수십 편의 논문을 읽었다. 특히 MLB 등의 연봉 산정 로직을 계산하는 경제학 쪽 해외 논문들은 연봉 산정 방법론은 물론, 그간 누적된 방대한 데이터에서 정교한 패턴들을 찾아내는데 매우 큰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KBO의 특성을 감안하여 나만의 연봉 로직을 만들어 냈다. 사실 모든 구단은 연봉 산정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들을 사용한다. 선수 시즌 기록을 입력하고 기준치만 조정한다면 즉시 선수의 연봉이 계산되어 나온다.
실제 연봉협상에 사용했던 협상 자료의 표지 페이지
그런데 본인이 만든 연봉 계산 로직은, 구단의 initial offer 가격과 max offer 가격을 거의 똑같이 맞출 정도로 정교했다. 따라서 협상은 상대방의 패를 미리 알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에 플러스알파를 덧붙일 수 있는 선수의 가치 만들기에 충실하면 되는 문제였다.
선수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서 Brand Equity 모델을 사용했고, 선수의 성적, 구단 마케팅, 팬 베이스, 스폰서십, 미디어 가치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이론과 자료를 동원하고 이를 깔끔한 PPT 자료로 만들어 연봉 협상에 임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우리 선수들이 너무 훌륭해서지만, 팩트와 논리로 무장했으니 연봉 협상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연봉 협상 로직과 과정에 대해서는 추후 다룰 예정이다.
모든 에이전트들이 그랬겠지만, 왜 나는 연봉 협상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까? 클라이언트인 선수를 만족시키는 게 final end purpose라면, 내 안의 내적 목표는 자존심이었다. 스포츠 산업을 가르치는, 스포츠 산업에 정통한, 그래서 대학 강단에 서있고, 정부의 자문 요청을 받고, 언론 기자들에게 코멘트를 주는, 그래서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자는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self-diciplined 된 욕심이었다.
실전 경험이라는 전신갑주를 입히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이트와 자신감이라는 날카로운 창칼을 들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응용학문을 가르치는 교수의 역할이다.
그렇다. 스포츠 산업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현장의 살아있는 지식, 실무에 정통한 정보, 스포츠 산업 현장의 최신의 직접 경험을 무조건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더 나은 배움과 수업을 위해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함은 교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업무이다.
그래서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의 졸업 후 실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전달로 두뇌를 채우고 검투사의 투구를 씌워 머리를 보호해 주는 단계라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실무를 경험케 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을 ‘즉시 투입 가능’한, 실전에 준비된 인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즉, 실전 경험이라는 전신갑주를 입히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이트와 자신감이라는 날카로운 창칼을 들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응용학문을 가르치는 교수의 역할이다
실전 경험이라는 전신갑주를 입는 것. 스포츠 산업 종사를 희망하는 자들의 필수 조건이다. @pixabay
따라서 스포츠 산업을 가르치는 수업은 교과서의 답습이 아니라 실무의 확장이 되어야 한다. 교육 콘텍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강의 내용의 실재(實在)는 현장의 실체(實體)가 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응용 학문이 현장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응용 학문으로서의 자격 미달이자,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죽은 학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수업의 지식이 현장의 실제'임을 입증하는 것이 교수에게 오롯이 부여된 과업이다. 따라서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라면 자연스레 졸업과 동시에 산업에 바로 투입되고 종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학생들이 스포츠 산업을 글과 책으로 배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업의 지식이 현장의 실제'임을 입증하는 것이 교수에게 오롯이 부여된 과업이다.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능력을 키워주지 못하는 교수, 스포츠 산업의 실체를 가르쳐 줄 수 없는 교수, 교육을 통해 스포츠와 사회를 바꿔나가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교수, 입으로만 떠들고 자기가 할 수 없고 해보지도 않은 것을 가르치는 교수, 각종 협단체와 기득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한 자리 차지할 욕망이 교육의 열정보다 훨씬 더 큰, 소위 '관변 교수' 등, 이와 같은 교수는 거칠게 이야기하면 참 교육자가 아니다.
강의실과 교과서에 갇혀 그저 교수라는 기득권의 탑을 쌓고 있는 사이 스포츠 산업은 너무도 달라졌다. 너무도 거대해졌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응용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
다시 첫 번째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래와 같은 과감한 문장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렇다. 나는 더 훌륭한 강의를 하기 위해, 더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직접 스포츠 에이전트가되었다.”
그리고 내가 체득한 이 살아있는 경험을 지식이란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