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 오전 패키지 일정은 시티투어이다. 우리는 팡라오 성당, 성 어거스틴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곳에 내렸다. 차가 성당 바로 앞에 멈추고, 다들 들어가는 바람에 성당 외관을 멀리서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
성 어거스틴 성당은 커다란 밝은 회색빛의 돌로 지어져 있었다. 틈 없이 쌓인 커다란 돌의 구석에는 까만색 곰팡이가 보였고, 군데군데 흠집과 구멍도 뚫려있어서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지어진 지 오래되었어도 외관이 깔끔하게 정돈된 성당만 가봤던 터라 큰 돌으로 지어진 웅장한 성당외관은 마치 중세시대 지어진 성곽처럼 외부의 침입을 막을 용도인 듯 단단하고 튼튼해 보였다. 필리핀이 스페인에 점령당한 시대에 지어져서 그럴까? 유럽의 성처럼 주변의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게 다른 문화를 품고, 세워져 있었다. 스페인을 안 가봐서 유명한 가우스의 건축물들은 보지 못했지만, 스페인의 건축양식을 손톱의 반절만큼이라도 느낀 것 같았다.
바깥이 투박하고 네모난 돌벽으로 이루어졌다면 내부는 그야말로 섬세한 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천장화,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대칭이 들어맞는 모든 조형물...
지금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 주민들은 얼마나 더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특히나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이런 성당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을 것 같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엄숙하고 역사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미사 시간에 왔다면 이 건물과 분위기가 더 어울렸을 것 같다. 관광객으로 가득 찬 성 어거스틴 성당은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기쁨의 현장을 천사들이 웃으면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천장화는 환상적이다. 성 삼위일체 그림은 팔각형 모양 안에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림을 중심으로 8방으로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천사들은 사다리꼴 모양의 네모칸 안에 그러져 있었는데, 각 그림은 액자에 끼워 넣은 듯 앤티크한 액자프레임 모양이 갈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천장화에 쓰인 모든 무늬와 색감이 아름다웠다.
하늘색, 갈색, 명암이 들어간 금색 또는 노란색.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르고 천장을 바라봤다.
성당의 양쪽으로는 길게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는 비워져 있었다.
바닥의 무늬는 화려하면서도 고상했다. 양쪽 의자부근은 같은 무늬였고, 가운데는 더 화려한 무늬였다.
아치형의 성당 입구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마치 축복처럼 밝게 성당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성당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성스러운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가이드는 팀별로 햇빛이 쫙 뿌려지는 가운데에 서게 하고 사진을 찍어줬다. 포토스팟이었다.
패키지여행으로 가서 성당 내부에서 돌아가면서 사진으로 인증한 후, 밖에 나가는 급한 분위기였다.
제대로 성당을 느끼고 감상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시간이어서 아쉽기만 했다.
아치형의 문과 창문으로 햇빛이 밝게 들어왔던 팡라오 성당
가이드는 말했다.
"이 성당 의자를 가지고 미군이 쓰던 지프에 설치한 게 우리가 탔던 지프니예요."
지프니
설마 진짜 성당 의자를 떼어다가 썼을까? 하지만 성당 의자가 지프니의 모티브가 되긴 했을 것 같다.
스페인에서 온 종교 '가톨릭'과 미군이 쓰던 '지프'가 합해져서 '지프니'라는 새로운 필리핀의 교통수단이 되었다니.문화의 결합이 재미있었다. 미군이 먹던 햄에서 유래된 우리나라 부대찌개 같은 느낌이랄까?
지프니는 양쪽으로 긴 의자가 있고 입구가 뚫려있었던 차인데, 여러 명이 타기에 좋았다. 패키지여행을 함께하는 모든 인원이 따닥따닥 붙어서 타면서 길게 된 창문으로 바깥을 보고, 또 입구에 문이 없어서 뒤로 이것저것 보기에 좋았다. 지프니는 두 번 탔는데, 한 번은 매연이 심해서 냄새가 안까지 다 들어왔었고, 다른 차는 그다지 매연이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빨간 지프니와 연두색 지프니를 타면서 자리가 부족할 때, 현지인 가이드가 바깥에 매달려서 오기도 했다. 우리는 가이드가 위험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한 후, 타라고 했지만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했다. '레이디스 퍼스트'정신으로 입구에 앉으면 혹시라도 여성들이 위험할까 봐 여성은 안쪽에 앉고, 가장 바깥쪽에는 남성들이 앉았었다. 나는 안쪽에 앉아서 떨어질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가장 바깥쪽에 앉았다면 천장에 달린 안전바를 꼭 잡았을 것 같다.
우리의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 필리핀 지프니
트라이시클
필리핀의 교통수단 하면 빠지지 않는 건, 트라이시클이다.
알로나비치에서 숙소까지 오갈 때마다 남편과 나의 발이 되어줬던 트라이시클.
트라이시클을 타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알로나비치와 리조트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저녁 7시가 마지막 셔틀버스이고, 알로나비치의 졸리비 앞에서 타면 된다고 했다. 남편과 졸리비에서 7시 전부터 기다렸지만 7시가 넘어서도 셔틀버스는 오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비가 툭툭툭-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비를 맞는 것도 재미있어서 졸리비 앞에서 남편과 대화를 계속하다 보니 저녁 7시 40분이 넘어갔다. 우리 앞에는 트라이시클이 계속해서 멈춰 서서 어딜 가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7시가 되기 전부터 "리조트 셔틀버스를 탈거예요."라고 말했는데, 트라이시클 기사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손님으로 태우려고 "모든 리조트 셔틀버스는 지금 운영하지 않아."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늦어지고, 비가 더 많이 오면서 남편은 트라이시클을 잡아탔다. 트라이시클을 타면 비를 다 맞을 줄 알았는데 비닐막이 있어서 아주 조금만 비를 맞았다. 오히려 창문을 조금 연 것처럼 들어치는 비바람이 시원하고 재미있었다. 우리 둘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트라이시클 뒤에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대화를 했다. 깜깜하고, 비 오는데 트라이시클을 둘이 탄 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비 오는 날 밤에 둘이서 이거 타니까 너무 재밌어."
"셔틀버스 안 타긴 잘했다. 이게 더 재밌어."
"생각보다 비가 많이 안 들어오네."
"이거 봐봐. 이거 타고 투어도 할 수 있나 봐."
남편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을 처음 만난 날에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려고 하니 비가 오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큰 우산을 씌워줘서 함께 우산을 받고 조금 먼 카페로 걸어갔었다.
그때의 어색함과 설렘이 기억난다.
어느덧 어색함은 친숙함이 되었지만 여전히 남편의 옆에 있는 건 설렌다.
비 오는 날의 데이트가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를 되살린다.
리조트 셔틀버스가 오지 않았던 것은 우리에게 낭만을 선사하기 위한 서사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비 오는 날에 트라이시클을 함께 탈 일이 얼마나 될까?
3박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날씨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안 타본 교통수단을 타보는 것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