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몰라서 생리대를 챙겨갔었는데, 해외여행 마지막날 밤에 예기치 못하게 생리가 터졌다.
예정보다 너무나도 빠르게...
배란을 해야 될 거 같은데 생리가 된 것이다.
생리주기가 이상해졌다.
다음 생리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
배란을 해야 될 거 같은데 또 생리를 했다.
아예 배란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유산 후 두 번의 생리, 그리고 두 번의 해외여행이 끝났다.
유산할 때만 해도 더 늦어지기 전에 재임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해외여행을 갔다 오니 "이렇게 좋은 여행도 안 하고 살았네. 더 자주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이사 간 다음에 새로운 보건소에서 서류를 떼서 다시 난임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정도만 더 쉬고 싶기도 했다. 난임시술과 유산을 겪으면서 지쳤던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유산 후 자궁상태도 보고 시험관 상담도 하러 난임병원 가긴 할 건데... 이번달 한 번만 자연스럽게 지켜봐야겠다.'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생리 한 번만 하고 바로 임신해도 된다고 했지만, 배란일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임신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난임병원 가기 전에 혹시나 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해 봤다.
너무 간절히 원하면, 환상이 보이는 걸까?
연한 두 줄이 매직아이처럼 아른아른거렸다. 사막에서 너무 목마를 때, 신기루로 오아시스를 본다고 한다.
내 눈이 이상해진 걸까?
양손으로 눈을 비비고 임신테스트기를 위로, 아래로 각도를 틀어서 다시 봤다.
한 줄인 것 같으면서도 두 줄 같기도 했다.
난 한쪽눈에 난시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을 불러서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이게 한 줄이에요 두 줄이에요?"
한 줄이었다가 두 줄이었다가 아리송했다.
사실 두 줄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두 줄이야."
눈이 좋은 남편이 말했다.
어리벙벙했다.
화학적 유산으로 끝났던 임신도 이것보단 테스트기 색깔이 더 진했었다.
입 밖으로 내면 다 없던 일이 될까 봐, 차마 말로 꺼내지도 못했다.
이러다가 또 잘못되어버릴까 봐 기대하지 않고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적어도 지난 아이를 잃은 9주가 되어야지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귀한 보석을 갖게 되었지만, 깨져버릴까 봐 무서워서 조마조마하며 보석함에 넣어놓고, 자물쇠로 잠가놨다.
아직은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아직은 꺼낼 수 없다.
두 손으로 조심조심 잡아도 놓쳐버릴까 봐...
믿기지 않고, 현실이 아닌 것 같다.
몇 밤 더 자고 아침에 눈을 떠도 그대로면... 그때는 꿈이 아니라는 게 믿길까?
임신테스트기가 너무 연하게 보인다.
설마 맞나 아닌가 잘 모르겠다.
어제는 소화가 안 되는 듯 가슴이 얹힌 기분이 났고
오늘밤에 누웠는데 아랫배가 아파서 혹시나 하고 임테기를 했다.
4주째는 배가 아팠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내내 아랫배가 아파서 아기집이 생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혹시나 잘못될까 봐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금요일이 되자 배가 안 아파서 동네에 있는 카페에 갔다.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배가 안 아파서 나왔어."하고 기쁘게 말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불안함 또는 쓸데없는 걱정이 몰려왔다.
"배가 아프다가 안 아픈 건 혹시... 임신이 멈춘 건가?"
화학적 유산으로 임신테스트기가 연해지는 걸 보기도 했고, 초기유산도 겪었던 터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시 누워서 시험관을 하다가 남았던 질정을 넣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배가 아파도 무섭고 안 아파도 무서워요. 배가 아팠을 때 유산했었고, 갑자기 안 아프니까 임신이 멈췄을까 봐 무서워요."
남편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면서 날 안심시켜 줬다.
"솔직히 8주까지는 안심이 안 될 것 같아요."
9주에 유산한 걸 알게 되었다.
아이는 이미 7주 차에 심장이 멈췄었다.
매주마다 아이가 무사한지 보러 갈 것 같다.
유산을 해보니 두줄을 봐도 안심이 안 된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겠어요."
"다음 주에 간다며?"
"내일 피검사나 초음파를 봐야지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임신인지 뭔지 확인하고 질정도 받아올래요."
갑자기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한 줄로 변할 것만 같았다. 흐려질 것만 같아서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아직은 진한 두 줄이다.
유산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후, 몇 달 만에 방문하는 난임병원이다.
접수를 하며
"두 줄은 언제 보셨어요?"
"마지막 생리일은 언제예요?"
의 질문을 했다.
늦게 올걸 그랬나?
아기집이 안 보이면 어떡하지?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직 초음파를 보기에는 이르다고 하시면서 임신초기에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날 위해서 유산방지약을 처방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