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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Feb 12. 2024

임신초기 복통 증상

전화가 왔다.


"피검사 나오셨던 거 수치 632로 잘 나오셨어요. 먹는 약 잘 사용하시고, 다음 주 목요일에 초음파 보자고 하셨어요. 그때 오시면 돼요."


시험관을 했을 때나, 자연임신을 한 지금이나 임신 피검사 결과를 듣는 전화는 항상 떨린다.


어쨌든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은 정말 두 줄이었고, 임신이다.

임신이라고 의식하니 임신 증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궁벽에 수정란이 더 깊이 파고드는 게 느껴지는 양 아랫배가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러 오라는 날으로부터 이틀 전부터 아랫배가 너무 아팠다.

"나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 병원 가볼래요. 배가 아파서 병원에서 빨리 확인해보고 싶어요."

유산했을 때 내내 배가 아팠었기 때문에 복통이 유산의 증상일까 봐 덜컥 두려워졌다.

유산하기 전이었다면 "착상통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텐데...


남편은 날 위해서 반휴를 쓰고 함께 병원에 가줬다.

"배가 많이 불편하시다고요. 초음파 좀 봅시다."


"출혈은 없으셨죠?"


"네. 없었어요."


초음파 화면에서 조그마한 게 보인다.

"여기 보시면 아기집이 있고, 특별한 건 없어요."라는 말이 들렸다.


"지금 위치는 별 문제가 없으니까 남은 약 마저 드세요. 그것만 드시면 더 안 먹어도 돼요. 그런데 저번 일로 좀 불안하다고 그러셨죠?"


"네. 불안해요."


유산방지효과가 있는 프로게스테론 질정을 끊은 그 주에 아이의 심장이 멈췄던 트라우마가 있어서 유산방지약을 먹어야지만 이 아이가 계속 살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고 싶었다.


"일주일만 더 드릴게요. 그 정도면 될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고 이제 위치는 확인했으니까 2주 있다가 심장 뛰는 거 확인하면 돼요. 약만 드릴 테니까 드시고 그때 오세요."


그렇게 유산방지약을 먹으면서 집에서 요양을 했다.

밥 먹는 것 빼고는 최대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쉬다가 심장소리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남편과 심장소리를 듣고, 난임병원을 다닌 후 처음으로 전원의뢰서를 받게 되었다.

이제야 특별관리대상이 아닌 평범하고 건강한 임산부가 된 것 같았다.





예정되었던 이사를 하게 되었다. 포장이사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휴가를 내고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사과정은 알아서 할 테니 나는 쉬고 있으라고 했다. 이삿짐 쌀 때 집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짐정리를 도와줄 것 같아서 나는 차에서 쉬고 있겠다고 했다.


임신초기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진 않으려고 했지만, 이사하면서 냉장고 코드가 뽑힌 채로 반나절이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이사 전날과 그 전날에 냉장고와 부엌만 정리했다. 묵은지 빼고 남은 반찬은 다 정리해서 깨끗해진 냉장고 안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사 당일, SUV 뒷좌석에 담요를 덮고 누워서 오전 내내 쉬다가 점심엔 남편과 함께 집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정든 동네를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간다니 아쉬워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도 했다. 점심 안에 모든 이삿짐 포장이 끝이 나서 이삿짐센터와 우리는 새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푹신한 방석을 조수석에 깔고 편안하게 앉아서 의자를 뒤로 젖혔다.

"천천히 가주세요."


임신 초기에 차를 타는 게 무리가 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조심하고 싶었지만, 이사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이사 갈 지방으로 도착해서 남편은 새 집에 올라가서 정리를 도와줬고 나는 차 뒷좌석에 누워서 쉬었는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자 혹시나 무리해서 유산이 되나 싶어서 얼굴이 점점 파래지고 창백해졌다.


뒷좌석에 몇 시간 동안 누워있는데 이사는 끝날 생각이 없었다. 유산방지약을 먹었는데도 불안했다. 남편에게 이사 끝나면 바로 산부인과에 가자고 했다. 유산방지주사라도 맞아야 조금이나마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차를 탔던 게 많이 무리가 됐나?' 남편이 잠시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남편에게 배가 아프다고 했다.


"어떻게 해. 이사해서 많이 스트레스받았나 봐."

이삿날만큼은 아무런 육체적 노동도 하지 않고 차 뒷자리에서 쉬기만 했는데 힘들 일이 뭐가 있다고...

'전날 냉장고 정리를 괜히 했나 봐.'     

'차 타는 게 무리가 됐나.'      

         

남편과 산부인과에 갔다.     

"10주면 배로 초음파를 볼 수 있는 시기니까 배로 볼게요."     

의사 선생님께서 배초음파를 보는데 화면에 까만색이 잡혔다.      

까만 화면은 몇 초에 불과했지만 마치 5분처럼 느껴졌다.      

골반쪽으로 내려왔을 때 화면에 태아가 잡혔다.      

태아가 보여도 죽어있을까 봐 그게 무서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심장소리를 들려주셨다.      

"주수에 맞고, 심장소리도 잘 뛰고 있어요."     

그때서야 안심이 되었다.                

"자궁경부 길이도 좋아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에 안도가 되었다.               

아랫배가 아프고 밑 빠지는 느낌이 난다는 말에 자궁이 커지면서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정리해 주시는 직원이 "와이프는 왜 안 와요?"라고 물어봐서 남편이 임신해서 쉬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정리도 깨끗하게 해 주셨다.                

깔끔하게 정리된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쉬었다.     


통증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엄마아빠가 다음날 집에 오셨는데, 배가 아파서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누워서 병간호를 받았다.      

다행히도 이사 3일째 되는 날부터 더 이상 배가 아프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 가장 무서운 건 다름 아닌 복통이었다.

유산했을 때와 임신 초기에 겪었던 복통은 날 헷갈리게 하고 정신적으로 대미지를 주었다.

임신을 겪는 내 약점은 바로 복통이다.

유산주수를 넘어서고, 복통이 끝나자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면서 또 다른 증상들이 시작될 테고, 출산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하겠지만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이 가득하다.

바라던 아이를 품고, 남편과 함께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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