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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Feb 08. 2024

유산 후 재임신은 너무 무섭다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건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유산만으로도 힘들었다.

잔류태반제거한 날을 끝으로 더 이상 지지부진하게 상처를 끌고 싶지 않았다.


계속 침대에만 있는 날 보던 남편은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혹시나 몰라서 생리대를 챙겨갔었는데, 해외여행 마지막날 밤에 예기치 못하게 생리가 터졌다.

예정보다 너무나도 빠르게...

배란을 해야 될 거 같은데 생리가 된 것이다.


생리주기가 이상해졌다.


다음 생리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

배란을 해야 될 거 같은데 또 생리를 했다.


아예 배란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유산 후 두 번의 생리, 그리고 두 번의 해외여행이 끝났다.

유산할 때만 해도 더 늦어지기 전에 재임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해외여행을 갔다 오니 "이렇게 좋은 여행도 안 하고 살았네. 더 자주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이사 간 다음에 새로운 보건소에서 서류를 떼서 다시 난임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정도만 더 쉬고 싶기도 했다. 난임시술과 유산을 겪으면서 지쳤던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유산 후 자궁상태도 보고 시험관 상담도 하러 난임병원 가긴 할 건데... 이번달 한 번만 자연스럽게 지켜봐야겠다.'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생리 한 번만 하고 바로 임신해도 된다고 했지만, 배란일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임신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난임병원 가기 전에 혹시나 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해 봤다.


너무 간절히 원하면, 환상이 보이는 걸까?

연한 두 줄이 매직아이처럼 아른아른거렸다. 사막에서 너무 목마를 때, 신기루로 오아시스를 본다고 한다.

내 눈이 이상해진 걸까?

양손으로 눈을 비비고 임신테스트기를 위로, 아래로 각도를 틀어서 다시 봤다.

한 줄인 것 같으면서도 두 줄 같기도 했다.

난 한쪽눈에 난시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을 불러서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이게 한 줄이에요 두 줄이에요?"

한 줄이었다가 두 줄이었다가 아리송했다.

사실 두 줄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두 줄이야."


눈이 좋은 남편이 말했다.


어리벙벙했다.

화학적 유산으로 끝났던 임신도 이것보단 테스트기 색깔이 더 진했었다.


입 밖으로 내면 다 없던 일이 될까 봐, 차마 말로 꺼내지도 못했다.

이러다가 또 잘못되어버릴까 봐 기대하지 않고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적어도 지난 아이를 잃은 9주가 되어야지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귀한 보석을 갖게 되었지만, 깨져버릴까 봐 무서워서 조마조마하며 보석함에 넣어놓고, 자물쇠로 잠가놨다.

아직은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아직은 꺼낼 수 없다.

두 손으로 조심조심 잡아도 놓쳐버릴까 봐...

믿기지 않고, 현실이 아닌 것 같다.

몇 밤 더 자고 아침에 눈을 떠도 그대로면... 그때는 꿈이 아니라는 게 믿길까?




임신테스트기가 너무 연하게 보인다.

설마 맞나 아닌가 잘 모르겠다.


어제는 소화가 안 되는 듯 가슴이 얹힌 기분이 났고

오늘밤에 누웠는데 아랫배가 아파서 혹시나 하고 임테기를 했다.



4주째는 배가 아팠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내내 아랫배가 아파서 아기집이 생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혹시나 잘못될까 봐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금요일이 되자 배가 안 아파서 동네에 있는 카페에 갔다.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배가 안 아파서 나왔어."하고 기쁘게 말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불안함 또는 쓸데없는 걱정이 몰려왔다.

"배가 아프다가 안 아픈 건 혹시... 임신이 멈춘 건가?"

화학적 유산으로 임신테스트기가 연해지는 걸 보기도 했고, 초기유산도 겪었던 터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시 누워서 시험관을 하다가 남았던 질정을 넣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배가 아파도 무섭고 안 아파도 무서워요. 배가 아팠을 때 유산했었고, 갑자기 안 아프니까 임신이 멈췄을까 봐 무서워요."


남편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면서 날 안심시켜 줬다.

"솔직히 8주까지는 안심이 안 될 것 같아요."

9주에 유산한 걸 알게 되었다.

아이는 이미 7주 차에 심장이 멈췄었다.

매주마다 아이가 무사한지 보러 갈 것 같다.

유산을 해보니 두줄을 봐도 안심이 안 된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겠어요."

"다음 주에 간다며?"

"내일 피검사나 초음파를 봐야지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임신인지 뭔지 확인하고 질정도 받아올래요."


갑자기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한 줄로 변할 것만 같았다. 흐려질 것만 같아서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아직은 진한 두 줄이다.



유산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후, 몇 달 만에 방문하는 난임병원이다.

접수를 하며

"두 줄은 언제 보셨어요?"

"마지막 생리일은 언제예요?"

의 질문을 했다.


늦게 올걸 그랬나?

아기집이 안 보이면 어떡하지?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직 초음파를 보기에는 이르다고 하시면서 임신초기에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날 위해서 유산방지약을 처방해 주셨다.


"먹는 약으로 일주일 처방해 드릴게요. 아침저녁으로 드세요. 오늘 피검사하고 나서 수치를 볼게요."


유산방지약을 처방받고, 주사실에 들어가서 임신 호르몬인 융모 생식샘 자극 호르몬 (hCG)를 측정하기 위해서 피를 뽑았다.


"자연으로 뜨신 거 맞으시죠?"


피를 뽑으면서 간호사 선생님이 물었다.


"네. 아직도 안 믿기네요."


피검사 결과가 나오고, 아기집을 보고, 심장 소리를 들으면 실감이 날까?


남편은 산부인과에 계속해서 같이 가준다.

남편이 주차하는 사이에, 유산한 사실을 혼자 듣게 한 게 미안한가 보다.

이번 임신은 꼭 병원에 같이 가주려고 한다.


'당신이 안 와줘도 우린 항상 같이야.'

안 와도 남편의 마음을 다 아는데...


유산방지제를 2주 복용하면서 외부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누워있었다.

이번에 혹시 평상시처럼 활동하다가 또 유산하면, 나 자신이 용서 안 되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서웠다.

유산은 난임보다 더 큰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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