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처음에 밝혔듯이 어머니께서는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지금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모습을 전해 들은 어머니께서는 분명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양이? 고양이는 왜? 기르지 마라. 아 알레르기 검사해본다고 했지? 그래 결과 나오면 다시 얘기해보자. 일단 알레르기 검사부터 해 봐."
알레르기 검사 결과 나와 큰딸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잘 됐다. 그럼 이제 고양이 안 기르겠네? 고양이 기르지 마라. 아이 알레르기도 있는데."
하지만, 구슬이를 만나고 구슬이와 함께하게 된 뒤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네 자식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고양이를 기른다고?"
라고 하면서 한숨을 쉬셨다.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기에 고양이를 기르지 말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말씀이시지만, 실은 고양이를 싫어하셨기에 하신 말씀이셨을 테다. 아이들의 알레르기는 당신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고양이를 기를 수 없는 하나의 핑계가 되셨을 것이다. 물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 않기에 어머니께 잔소리를 들을 일도 많지 않고, 가끔 어머니를 만났을 때 하시는 이야기만 참아 넘기면 되는 일이었지만 나는 어머니께 고양이를 기른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숲길을 같이 걷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이가 드신 어머니와 천천히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꽤나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다. 어머니께서도 손녀가 숲길을 씩씩하게 걷는 모습도 예뻐하셨고, 아들과 같이 걸으며 데이트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매우 좋아하셨다. 한참 걷다 내가 구슬이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께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눈치셨지만, 그래도 끝까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적한 숲길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니까.
구슬이를 처음 만났던 이야기, 두 번째 만났던 이야기, 그리고 현재 구슬이의 눈 상태와 우리가 구슬이를 돌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곤조곤 말씀들 드렸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항상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하셨던 분이기에, 구슬이의 존재를 인정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내 이야기를 다 듣고서는 잠시 후 나직하게 말씀을 내뱉으셨다.
"복이 있는 고양이구나. 너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까."
"어머니, 이 고양이를 우리가 기르는 것이 맞겠죠?"
"그럼. 길러야지. 그 고양이는 너희 가족과 인연이야. 두 번이나 찾아왔잖아. 보통 인연이 아닌거야. 그래. 길러야지."
어머니께서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마음속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괜히 울컥했다. 어머니께서 구슬이 밥을 한 번 주시지도 않을 테고, 화장실 청소를 한 번 해주시지도 않을 테지만. 뭐 고양이 간식 하나 사주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음이 한편이 따뜻해졌다.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계신 어머니께서, 구슬이의 존재를 인정해준 것이 이리 뿌듯할 일인지, 마치 어릴 적 시험 점수 100점 맞고 칭찬 듣는 아이마냥 기뻤다. 물론 그 아이는 이제 장성하여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어머니께서 나를 만나시면 구슬이의 안부를 묻지는 않으신다. 자주 연락드리지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불효자식인지라 내 안부와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묻기에 바쁘시다. 하지만 구슬이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이 어머니의 입장에서 나를 위한 최대한의 배려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나를 키웠기에, 구슬이는 복이 좋게도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역시, 복이 좋은 사람도 좋지만, 우리 아이들을 만난 누군가가 복이 좋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