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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an 22. 2024

작가는 모두 산책을 한다

그해 우리는

자주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서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강연회가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로 입봉작과 다름없음에도 큰 인기를 누린 작가였다. 서른도 안된 여성이 시나리오작가로 단기간에 이름이 알려졌다는 점에서 관심이 갔다.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꺼내어 공감되는 문장으로 만드는 게 아직 어려운 브런치 에세이 작가에게 수많은 대사로 스토리를 전하고 울림을 주는 시나리오 작가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저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그들은 어떤 삶을 보내는지가 궁금했다. 강연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주말 영화 상영을 위해 마련된 자그마한 도서관 상영관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강연이 이뤄지는 곳이 좁은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을까?'

곧 강연 시간이 되었고 자그마한 젊은 여성이 단상에 올라와 앉았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도서관 직원이 작가를 소개했다.


그녀를 대표하는 것은 성공한 드라마 시나리오 한편 외에는 거의 없었다. 작가로서의 경력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막내 작가에서 시작해 수년간 수련하여 데뷔한 공중파 방송작가가 아니라 트렌드에 따르는 웹드라마 작가이다 보니 요즘 감성에 맞아서 짧은 시간에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연륜이 있다고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니 이름을 알린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에게서 배울 것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찬찬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웹드라마를 만들던 독립 PD에서 16부작의 청춘드라마의 각본가가 되기까지 그녀도 인고의 시간을 보낸듯했다. 그녀는 대본 필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멘토가 될 작가의 대본을 그대로 베껴 써보면서 이 시점에서 어떤 분위기로 어떤 대사가 나가야 하는 지를 직접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수준 높은 글을 쓰기 위해서 들여야 할 시간을 생각해 보니 이미 필사에서부터 숨이 꽉 막혔다.


그녀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쓴 유명 작가의 대본을 참고하고 있다고 하였다. 글을 어느 정도 쓰는 지금도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멘토의 대본을 참고하고 있다고 하였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니 글을 쓰면 쓸수록 대박 작가의 문체가 몸에 밸 것임이 틀림없었다. 시나리오작가는 취미가 없지만 잘 읽히고 재미있는 소설은 쓸 포부가 있기에 시간 날 때마다 멘토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필사에 이어서 두 번째로 영감을 준 말은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었다. 계획을 세웠으면 그 시간 동안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이유는 글을 쓰다 보면  항상 마지막에 창의력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하나의 글이 집중과 몰입을 통해서 작품으로 거듭나는 것은 주(週)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나도 글을 며칠에 나눠서 짬날 때마다 쓰더라도 글을 마무리할 때는 집중하는 시간을 들여왔다. 짜임새를 다듬어 처음 글보다 읽기 쉽고 재밌는 글이 나왔을 때의 쾌감은 글 쓰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멘토작가가 산책을 즐긴다고 얘기했다. 자신도 동네를 산책하면서 글을 쓸 아이디어를 얻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했다. 자기가 아는 모든 작가가 산책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받고 있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운전을 하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 보면 평균적으로 서너 시간을 운전할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아무런 노래를 듣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취향의 음악을 듣는 것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이 더 좋았다. 몸은 운전을 하고 머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고속도로를 정속으로 달리는 일이 많은 나에게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바로 써놓을 수는 없으니 녹음을 하거나 휴게소에 잠시 들러서 나에게 톡을 보내놓는 방법으로 저장해 두었다. 그렇게 모인 아이디어는 컴퓨터와 다이어리에 저장되어 이후 내가 하는 일이나 작품에 쓰이게 되는 것이었다. 유명 작가들의 산책과 나의 운전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야기와 나의 생각들이 이리저리 얽힌 시간이 끝나고 강연 참여도가 높은 3명을 뽑아 대본집을 증정하였다. 내 목표는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었고 열정적으로 그 책을 받기 위해 질문하는 참가자들이 있어서 바로 포기하였다.


작가와의 기념촬영을 위해 줄 서는 사람들을 피해 출입문을 나서며 이 시간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돌이켜 보았다.


'필사, 꾸준함, 산책'


우연찮게 각본가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다음 작품의 중압감은 어쩔 수 없는 신인 시나리오 작가의 강의는 글밥을 먹는 사람이 글에 임하는 자세를 알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그녀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영감을 주기 바라며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3가지를 명심하여 정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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