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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Feb 02. 2024

3개월 간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전출

등 따시고 배부른 것도 하루 이틀이지 좀이 쑤셨다.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해보겠다고 했다. 6개월 한정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컴퓨터 앞에서 유튜브 영상만 보다가 하루를 마감하는 삶을 멈추었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구석구석 빈 곳이 보였다. 그걸 메우며 하나씩 완료해서 파일들을 철할 때마다 신이 났다.


갑자기 선임이 관뒀다. 그녀로 인해 사무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떠나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次) 선임도 관뒀다. 그녀는 출근할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뛴다고 했다. 한 달 만에 나 혼자 남았다.


후방에서 병참을 하다가 느닷없이 최전선으로 투입된 군인의 처지였다. 탈영자가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이 없었기에 싸울 준비가 안된 몸으로 남은 중대원을 독려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미리 조금이라도 준비했을 것인데 인생난이도가 참 높아졌다. 익숙지 않은 일이 폭풍처럼 몰아치니 육체적으로 힘듦은 둘째치고 뭔가 놓치고 있진 않은지 정신적으로 걱정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출근 시간이 천천히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꼬박꼬박 주말 출근을 하는데도 월요병이 왔다.


스트레스는 연봉의 크기와는 상관없었다. 수억을 받는 대기업 임원은 돈이라도 남지 최저임금에 준하는 내게 남은 것은 '인생은 실전'이라는 문구하나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무서움을 많이 배웠다.


그간 똑똑한 척 살았어도 남들과 똑같은 인간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것이었다.


본업을 할 때 다른 사장님들께는 잘하던 직언을 이곳에서는 할 수 없으니 돌려 말하다가 뜻이 왜곡되기 일쑤였다.

결국 나의 속마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밖으로 나왔다. 들어온 지 한 달이 갓 넘은 직원이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서 대표님께 직언을 퍼붓고 간 것이었다.


그 직원은 다음날로 관두고 나는 즉시 책임감 적은 다른 기관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호랑이를 피하니 여우는 우스웠다. 지난 3개월 간 소위 까대기를 치며 배운 것으로 대부분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옮긴 자리는 정신보다는 육체가 조금 힘들 뿐이었다.


6개월을 계획한 사회복지사 생활은 이제 후반기로 넘어간다. 남은 3개월이 나를 어떻게 바꿀지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예측된 일만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이럴 때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지금 하는 일이 값진 경험과 내공을 선물로 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버티는 게 최선이다.


끝이 정해진 존버는 견디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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