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우연한 기회에 마장(馬場)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말을 관리하면서 짬이 있을 때 말을 직접 타기도 하는데 그 수준이 꽤 높았다. 말을 타는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은 덕인지 동생은 탄수화물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밥을 먹어도 몸매를 유지하였다. 동생은 골프도 가끔 쳤다. 집 마당에 간이 골프 연습장을 깔아 두고 공을 홀에 넣는 연습을 하였다. 골프 스윙 포즈는 여느 프로선수 못지않았다.
최근 5년 동안 동생은 명절이 되어 시골집을 내려갈 때면 늘 말타기와 골프에 대해 이야기했다. 명절마다 잠시 보는 내가 봐도 열심히 하였는데 평소에는 얼마나 열심일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동생은 말타기는 대중적이지 못하니 내게 권하지 않았지만 골프는 권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골프를 권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40~50대였다. 20대 때는 갓 40이 넘은 차장들이 골프에 빠져있었다. 30대가 되자 50대 중반이 넘은 부문장이나 대표급들이 골프를 쳐보라고 권했다. 40대가 되자 주변의 비슷한 또래들이 골프장을 다니면서 골프 전도사가 되었다. 골프를 권하는 그들의 멘트는 한결같았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골프를 치는 것이 좋다며 3개월이라도 연습장을 끊어서 다녀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운동에 시간을 쓰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었다. 체질덕에 뚱뚱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꾸준히 운동을 해온 적이 없었다. 몸짱이 유행이던 시절 당시 보디빌더 준비를 하던 동생을 두세 달 따라다니며 근육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나이 40에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1년 가까이 나갔던 수영수업도 있었지만 코로나19 탓에 나가지 않게 되고는 몇 년이 흐르니 다시 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골프를 꾸준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걷기 운동도 30분은 해야 효과가 있다는데 살아오면서 매일 운동으로 그 정도의 시간을 써본 적 없는 사람이 골프라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다른 어떤 운동보다 더 강한 동기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몸매가 안 친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좋거나, 그들의 폐활량이 남들보다 크거나, 유병률이 낮다면 충분한 동기가 될 터였다. 하지만 골프는 그렇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힙(hip) 하지 않았다.
먼저 시간면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 3회 연습장에 가고 그중 1번 정도는 레슨을 받는 것을 기준으로 1년은 해야 초보 수준을 벗어나는 100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들어야 할 비용도 상당했다. 최소 시간당 10만 원의 강습료에 1년 골프연습장 이용료가 200만 원이 넘었다. 그렇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필드에 나가면 캐디피까지 30만 원 정도는 쉽게 들었다. 게다가 장비 욕심을 부리게 되면 끝도 없이 돈이 들었다.
골프는 같이 치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기와 연결되는데 그렇게 딴 돈도 같이 어울리다 보면 금방 쓰게 되었다. 지더라도 개의치 않는 멘털(mental)이 중요했다.
여러면을 고려하고 나니 골프는 중노년에 어느 정도 재산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친목을 다지며 시간 보내기 좋은 운동일뿐이었다.
이런 것을 다 알면서도 사람들은 필드에 나가면 가슴이 확 뚫린다고 했다. 한나절동안 잔디 위를 걸으며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했다. 옆에서 그렇게 떠들어도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빈말이었다. 부자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꿈이거나 그들에게서 뭘 얻으려 하는 목적이 있다면 모를까 골프는 무엇을 하더라도 확실한 효과가 예상되어야 하는 내 성격과 맞지 않았다.
아직도 내겐 최소한 운동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골프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다는 걷기와 뛰기 운동도 최소 30분은 해야 한다. 그것 조차 어려운 나와 같은 운동 초보들은 멋져 보이고, 있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 남의 시선은 무시하고 죽을 때까지 꾸준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더 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