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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r 01. 2024

시골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오해

팔순이 넘은 어른 한분이 계신다. 그분은 도시 변두리의 시골에 혼자 사신다. 자녀들은 20여분 떨어진 도시 한가운데에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시골 기와집에서 주말을 보내기가 따분하면 동네 노인정에 가신다. 노인정에 오는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식사를 챙겨 잡숫기도 어렵다. 냉장고 한편의 김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울 뿐이다. 자녀들이 한주에 한 번꼴로 집에 방문하기는 하나 대화 상대가 마땅치 않다. 그나마 얼마 전에 데려온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있어 덜 외롭다.


G할머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을 우리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인지가 좋으시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이든 잘 참여하신다. 청기백기 게임은 틀린 적이 없고 빠진 낱말 맞추기, 단어와 단어 짝 맞추기도 척척이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신체기능은 떨어지신다. 허리가 굽어 무릎을 잡고 걸으시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다. 그래도 후마네트, 요가 등 몸을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신다.


2월의 첫날, 낮시간을 주간센터에서 보내신 G할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러 갔다. 아직 해가 짧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주변은 깜깜했다. 그분이 사시는 마을은 센터에서 10분 거리인데도 시골길을 한참 들어가야 했다. 요즘은 도로가 잘 뚫려 있어 10분이지 옛날 같으면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할 골짜기 마을이었다.


할머니의 댁은 도로에서 50미터 정도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목 도로 옆 밭 한구석에는 자그만 끌차(카트)가 세워져 있었다. 걷기가 힘든 어르신이 송영차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데 꼭 필요한 도구였다. 차에서 내린 어르신은 오르막을 그 카트를 밀며 올랐다. 넘어지실까 봐 옆에서 같이 걷는데 멀리서 흰 강아지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뛰어나왔다.


"달랑 달랑달랑~ 달랑 달랑달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학교길에 마중 나와서 반갑다고 꼬리 치며 달려온다~

달랑 달랑달랑~ 달랑 달랑달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바둑이 방울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하루종일 혼자 집을 지킨 강아지가 할머니 걸음걸음마다 주변을 빙빙 돌며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어르신의 집은 전형적인 촌집이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광(창고)과 소를 먹이던 축사, 사랑채는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테가 났다. 말린 시래기가 곳곳에 널려있었다. 마당은 비가 오면 질어지는 흙바닥이고 현대적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어르신이 주로 계시는 안방만이 리모델링을 통해 내부가 원룸처럼 꾸며져 있어 그나마 나았다. 차를 타고 있을 때만 하여도 2024년도였는데 몇 걸음 이동하니 1984년도가 된 듯했다.


힘들게 걸어 집에 도착한 어르신은 보행을 보조하던 끌차를 한편에 놓고 마루에 걸터앉으셨다.

"해도 짧은데 선생님도 얼른 가거래이~"

"그럼 잘 주무시고 내일 뵐게요. 어르신"


쌀쌀한 날씨에 주위가 깜깜하고 적막한 이곳에 어르신을 혼자 두고 가는 것이 께름칙했다. 내 부모가 아닌데도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을 미리 보는 느낌이었다. 자식들의 짐이 되긴 싫은 부모가 살던 집을 지키며 홀로 있으려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도 남의 얘기였다. 그 모습을 직접 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무서울 수 있어 보였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센터로 돌아와 다른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좀 전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셨다. 괜히 나만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인가?


다음날 즐거운 표정으로 센터에 나오시는 G할머니를 보면서 나만 청승 떤 느낌이었다.


그렇게 주간보호센터에서의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 3월의 첫날이 되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G할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나와도 밖이 환하다. 적막해 보이던 동네에 제법 차가 다니고 둘레길이 뚫려있어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더 이상 할머니가 혼자 강아지를 벗 삼아 사는 게 안타까워 보이지 않는다.


도시 한복판에 살아도 매번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먹지 않으면 티슈통에서 휴지 하나 뽑는 것도 안 되는 분, 치매로 계속 배회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G할머니는 오히려 행복한 분이었다.


딸내외가 한주씩 돌아가며 들렀다가고 내 몸 내가 추스를 수 있는 G할머니!

세상의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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