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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Feb 06. 2024

어린이 자료실에서 보낸 오후 시간

"아이들에게 평생 습관으로 하나만 남겨 주고 싶다면 뭘 남겨주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책 읽는 습관밖에 없다.


주변에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전에 애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여기서 조금 더 극성으로 가면 집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BGM으로 틀어주기도 한다. 


지금은 고3이 된 조카가 딱 그렇게 자랐다. 사촌누나와 자형이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자신들의 학벌에 아쉬움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카는 걸음마를 뗄 때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라서 좋은 고등학교를 갔지만 조카의 표정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부모 주도로 애들을 학원 뺑뺑이를 돌리며 공부시키는 집이 있는 반면 다른 끝단에는 혼자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집도 있다. 맞벌이하는 부모는 집에 늦게 들어오고 애들은 하교하면 알아서 밥을 차려먹고 방에 들어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잘 크는 애들은 잘 큰 다지만 과해도 덜해도 안된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북돋아주고 아쉬운 것은 재미를 살려주는 최소한의 부모 역할은 필요하다.


나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더라도 답은 명확했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무리 옆에서 시켜도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저녁 10시까지 함에도 영어성적이 떨어지자 부모님은 학원을 보내려 하셨다. 안 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어머니의 성화로 간 영어 학원에서의 공부는 성적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남은 것이라곤 학원 친구들과 노래방에 놀러 간 기억뿐이다.


어머닌 지금도 그 얘길 하면 "그때 학원이라도 갔으니 그 성적을 유지한 거야"라고 하신다. 어머니껜 죄송하지만 내가 놀면서도 상위 10~20% 사이 있었던 것은 학원 공부 때문이 아니라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공부 습관이 없는 내가 결국 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에서 한 문제를 틀리고 외국어영역에서 전국 5% 안에 들었던 것도 독서 습관으로 익힌 문해력의 힘이었다. 


이런 나를 반쯤 닮은 초등학생인 첫째는 학교생활을 재밌게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보는 것과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또래들이 다 그러니 그러려니 한다. 주말에만 시간을 정해두고 허락했더니 알아서 본인이 시간을 지킨다. 주중에는 수학문제집을 혼자 풀고 한자 공부를 스스로 한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책 읽기 습관이 없다는 것이다. 원인을 생각해 보면 걸리는 것이 몇 개 있다. 어릴 때부터 남들 다한다는 자기 전 그림책 읽어 주기를 안 해줬다. 부모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집에서 쉴 때도 아빠는 컴퓨터, 엄마는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을 늘 보았다. 내가 도서관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린이집 보내고 가거나 주말에 본가의 부모님께 보내놓고 갔으니 아이 눈에는 평소 독서를 하는 어른이 주변에 없던 것이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평일 중 한 시간은 학교 안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종이"라는 앱으로 공유해 주시는 사진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사진에서 첫째가 잡고 있는 책을 보면 언제나 똑같다. '흔한 남매'가 주인공인 만화책이다. 그 만화책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이제는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르진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환경 속에 데려다 놓는 방법이 제일 빠르다.


주말에 '흔한 남매' 책을 보러 가자고 꼬드겼다. 도서관에 가자고 할 때는 단칼에 거절하더니 흔한 남매 얘기가 나오니 같이 가겠다고 했다. 도서관을 가는 20분 동안 차에 앉아 오후 잠을 이기지 못해 어찌할 줄 모르녀석이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정신을 차렸다. 어린이 열람실에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아이는 많은 친구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신나 했다. 고대했던 흔한 남매 책을 찾았다. 책이 인기가 좋은지 서가에는 이미 학교에서 읽었다는 책 하나만 남아있었다. 아이는 아쉬운 대로 건성으로 한번 읽고는 곧 다른 책을 가져왔다. 푹신한 바닥에서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 옆에서 나도 어린이용 서유기 한편을 뽑아 읽었다.


아이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긴 하지만 주변에 책 읽는 친구들과 형, 누나를 보면서 책 읽는데 점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독서 환경 만들기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일과 공부를 핑계로 아이들을 주말마다 낮엔 본가에 데려다 놓고 방치하다시피 하였다. 그전에도 그리 안 한 건 아닌데 가끔이라도 주말에 가족끼리 시간을 보냈다. 같이 놀러도 가고 집에서 놀기도 했는데 최근엔 그 가끔도 없었던 것이었다. 철 모르는 두 살배기 둘째는 본가에 둬도 방 안을 뛰어다니면서 놀 시기이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첫째는 마냥 놀기만 할 수는 없는 시기이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잠시라도 같이 책을 읽고 주말에 한나절이라도 도서관에 가면서 책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다.


독서만큼 좋은 간접경험의 수단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영상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학(學)의 관점에서는 독서가 최고다. 습(習)은 커가면서 직접 경험과 합쳐져서 저절로 되는 것이니 일단 學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요 몇 년간 공부하며 일을 하고 개인시간도 마음껏 보냈으니 이제 아빠로서 첫째의 교육에 우선순위를 맞출 것이다. 요즘 유행이라는 '빡독'은 아니라도 만화책부터 천천히, 일주일에 하루라도 한나절 정도는 도서관에 가서 같이 책을 읽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첫째가 좋아하는 줄넘기도 같이하고 작년부터 시작한 첫째와의 여행도 겨울방학 동안 다녀올 것이다.


후계자 육성은 경영에서도 아주 비중이 높은 필수 역량이다. 경영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후계자를 골라 어떻게 육성할지'이다. 나의 인생의 후계자는 정해졌으니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


'강제는 없다' 재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코칭해 줄 뿐... 자주적으로 삶을 사는데 기본이 될 육성의 최종 목표는 평생 가는 독서습관 만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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