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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혼자 등교를 안 하는 이유

by CJbenitora

첫째는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10분 거리의 학교를 혼자 갔다. 이렇게 하기 위해 입학 전에 손을 잡고 학교길을 몇 번 같이 가보았고 어린이집 때의 친구와 중간에 만나서 함께 가도록 미리 그 부모님과 얘기도 해 놓았다. 아이는 친구가 기다리는 곳까지 엄마와 같이 가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자 갔다. 간혹 친분 있는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만나면 씩씩하게 혼자 다니는 모습을 봤다며 우리 애는 언제 그러겠냐면서 우리 첫째 칭찬을 심심찮게 했다.


2학기가 되면서 독립심을 더 길러주고 싶었다. 통학 때 이용하는 큰길 외에도 여러 길을 알려주었다. 등교 시간을 절약할 뿐 아니라 동네지리를 익히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어느 날은 아빠와 반대쪽 길로, 다른 날은 엄마와 골목길로, 아이는 2학기를 시작하곤 한 달간 많은 길을 수차례 다녀서 집과 학교 사이 길을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1학기에는 그렇게 혼자 잘 다니던 녀석이 2학기가 절반이 넘어 지났는데도 혼자 등교를 하려 하지 않았다. 길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닌데 왜 혼자 가지 못 하겠다고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1학기에는 등교시간으로 치면 반에서 1등은 아니라도 2,3등을 다퉜는데 2학기에는 지각이 걱정될 정도로 집에서 늦게 나갔다.


'무엇 때문에 저러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니 다섯 가지의 이유가 떠올랐다.

1. 이제 더 이상 친구와 같이 가지 않아서

2. 엄마손 잡고 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3. 새로 알게 된 길은 부모님과 함께 가는 길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려버려서

4. 동생은 아빠엄마가 차로 어린이집 등원시키니까 질투심에

5. 부모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첫 번째 이유는 아이 스스로가 얘기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비록 학교에 거의 다 가서 친구와 만나 같이 가는 것이었지만 누구와 함께 등교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른 것 같았다. 친구와 같이 가지 않으니 1차적 시간 압박이 사라졌고 집에서 늦게 나가는 습관도 생긴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1학기때도 어쩌다 아이와 걸어가다 보면 한 두 살 많아 보이는 형아나 누나들이 엄마손 잡고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2학기가 되어도 그런 애들이 보이니 더 어린 자기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이유는 1학기때 알던 길이 아닌 새로 알게 된 길은 애초부터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혼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번째 이유는 동생은 어린이집에 차를 타고 등원하는데 자기는 걸어가야 하는 것에 질투 나서 인 것 같았다. 자신도 어린이집 다닐 때는 동생처럼 했으면서 지금은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다섯 번째 이유는 단호하게 아이에게 혼자 가라고 못 하는 부모 탓인 것 같았다. '평소 운동도 안 하는데 걷기 운동하는 셈 치고 아이 바래다주며 왕복 20분 정도는 걷자'는 생각이 있었고 조그만 애가 골목길에서 차사고 라도 날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아이는 연말인 지금도 혼자 등교를 하지 않는다. 당장 오늘도 날이 밝으면 아빠와 함께 학교로 갈 것이다. 아빠는 혼자 이런저런 이유를 찾지만 사실 초1은 만 7세로 일반적인 경우 독립심을 요구하기엔 어린 나이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혼자 걸어가지 않는다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한 때이려나 싶다.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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