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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r 19. 2024

꽃보다 아이

꽃보다 아이 시즌2 밀양 편 1/2

작년에는 큰애와 경남 고성을 갔다. 둘만의 1박 2일의 여행은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아이가 제도권 학교교육을 받을 만큼 충분히 컸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이와 하는 여행은 맛집도 명승지도 필요 없었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곳만 있으면 충분하였다.


올해도 초2가 되기 전에 여행을 계획했다. 그 새 둘째가 아장아장 수준에서 뜀박질이 가능한 수준까지 큰 바람에 둘째도 데려가기로 했다.


일행이 하나가 아닌 둘이기에 여행지는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집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 아름다운 문화관광의 도시로 홍보하고 있는 곳,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 밀양이었다. 혼자 아이들 통제가 안되면 낮에 놀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버리면 그만이었다.


2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점심 무렵 출발하였다. 첫 목적지는 표충사 입구의 '우리 아이마음숲 놀이터'였다.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놀이터에는 계곡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전경을 볼 수 있는 다리를 비롯해 아이들이 놀만한 놀이기구가 많았다. 다만 기구들은 높고 커서 25개월이 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초2가 넓은 놀이터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동안 25개월은 가장 낮은 미끄럼틀만 수십 번 탔다. 그러다 강아지를 데려온 가족이 오자 주변을 얼쩡이며 강아지를 만져보려고 하였다. 그 가족의 양해를 얻어 강아지를 쓰다듬고 따라다니는 등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게 해 주었다.


맨손이 얼음처럼 차가워질 만큼 놀고는 시내로 이동했다. 먼저 밀양의 상징인 영남루를 방문했다. 첫째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화장실부터 찾았다. 차 안에서 뭘 먹느라 지저분해진 둘째의 손과 입을 씻기고 영남루에 올랐다.


넓은 나무 바닥과 몇 아름 되는 큰 기둥은 아이들이 얼음땡 놀이를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뭣도 모르고 형아를 따라 뛰어다니는 둘째와 아빠 보고 쫓아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첫째, 아이들 수준에 맞춰 놀아주었다. 이곳에서 옛 선인들은 노래에 장단 맞춰가며 한상 깔아놓고 앉아서 풍류를 즐겼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아이들 장단에 맞추어 뛰어다니고 있었다.


밀양강 건너편에는 풍물패들이 밀양아리랑을 부르며 고수부지 공연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달집 태우기를 위해 높게 쌓아 올린 캠프파이어 나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놀면서 중간중간 짬을 내어서 첫째에게 이런 행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근조근 설명해주었지만 듣는 척 마는 척이었다. 아빠가 빨리 쓸데없는 설명을 그만하고 자기와 놀아주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허기지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영남루 앞 시장에서 꽈배기를 사서 손에 하나씩 들렸다. 다음 코스인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바로 다리건너에 있는 시립도서관은 일을 하러 이 도시에 올 때면 늘 들르는 곳이었다. 정수기와 깨끗한 화장실이 있고 여유 시간을 뜻있게 보내게 해 줄 책도 많았다. 안내를 받아 도서관 1층 어린이실 내부에 위치한 수유실에 들어갔다. 빵빵한 둘째의 기저귀를 갈았다.


아이들은 어린이실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곳에 유아용 나무 미끄럼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끄럼을 타다가 다른 아이들이 오면 서로 몇 살이냐고 물으며 같이 놀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앉아서 책을 읽었다. 둘째는 공룡책을 보고 첫째는 만화책을 뒤적였다. 누가 책 읽는 곳에 미끄럼틀을 넣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것이었다. 점점 아이들 얼굴에 피곤함이 보였다.


6시가 다 되어 문을 닫는다는 방송을 듣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둘째가 차에서 잠이 들어버렸지만 식사를 하고 숙소에 가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끼리 놀 때 검색해 둔 한식뷔페로 향했다. 36개월 미만은 요금을 받지 않기에 자는 둘째는 안고 들어가 아이 의자에 앉혀 재웠다. 접시를 들고 첫째와 같이 서로 먹고 싶은 것을 덜어와 먹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둘째는 깨지 않았다.


아까 낮에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짬짬이 검색해서 숙소를 전화로 예약해 두었다. 배는 가득 채워 든든하겠다, 잘 곳도 있겠다,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삼랑진에 있었다.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다. 20~30분 더 이동해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50년 전만 해도 번성했다는 삼랑진을 볼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어차피 여행은 낯선 것과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밤길을 달려왔는데 삼랑진은 고요하고 어두웠다. 삼랑진 역만이 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숙소에 가까워지니 깜깜한 시골길 왼편에 통유리로 된 카페가 보였다. 아름다운 조명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몇몇 손님들이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도 아니고 유명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골길 한가운데의 저 생뚱맞은 건물은 뭘까?'


계속되는 의문은 여기서 접었다. 밤은 어둡고 아이들은 피곤해하니 숙소에 들어가는 게 먼저였다. 카운터에 있던 주인아주머니는 아이 하나를 안고 하나는 손잡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아까 예약한 사람임을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룸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씻겨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각자에게 태블릿 PC를 들려준 후 샤워를 하고 나왔다. 


이제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10년 전 '꽃보다 할배'가 인기 있을 이서진이 같이 간 노(老)배우들과의 여행에서 온갖 수발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밀양 삼랑진 외딴 호텔에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자기 볼 것을 열심히 보는 두 명의 아이와 내일은 어디로 갈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있는 한 명의 아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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