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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y 04. 2024

8.71km 달리기

2024 울산 커플마라톤

달리는 것은 게을리하면서도 마라톤에 참여할 마음은 생겼다. 벚꽃마라톤을 접수하면서 4월 말에 진행되는 10km 커플마라톤에도 참여 접수를 하였다. 동생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뛰기로 했다.


보름 전의 경주 벚꽃마라톤에 참여하였을 때는 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 있어서 놀랐는데 이번 마라톤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큰 대회를 한번 참여하고 나니 달리기 적당한 규모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자리 잡았다. 내 수준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회보다 딱 이 정도의 대회가 적당하다 느껴졌다. 내가 달리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놀고 있겠다며 아내가 따라왔다. 달린 후 고된 몸으로 운전해서 집으로 오는 것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대회장 입구에 들어서니 동생이 보였다. 작년 대회에서 중간에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기록에 몇분 손해를 보았다. 같은 실수를 안 하기 위해 미리 화장실을 다녀왔다. 곧 출발 신호가 울렸다. 초반의 혼잡한 상황에서 천천히 뛰며 몸을 잠깐 풀었다. 동생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작년 가을 대회에서 나보다 늦게 들어온 것도 있고 본인의 체력에 실망한 것도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일주일에 4일 이상 연습을 했다고 했다. 나 역시 기록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습을 안 하고 욕심을 부렸을 때의 결과를 너무도 잘 알기에 평소 페이스대로 천천히 뛰었다. 대회장으로 오면서 몇 번을 강조하던 와이프의 당부말이 귀에 맴돌았다.

"완주를 목표로 해요!"


동생이 치고 나가고 나니 나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조금씩 추월하기 시작했다. 속도를 올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보름 전의 벚꽃마라톤을 뛰고 나서 매일 조금이라도 뛰었다면 자신 있게 속도를 낼 텐데...'

시험과 대회날은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이 향상됨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채우는 날이지만 준비를 소홀히 한 사람에게는 운을 바라며 그간의 게으름을 반성하는 날이었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아는 형이 달리기로 인생이 바뀌는 것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언 8개월. 그간 5km, 21km, 10km 총 3개 대회에 참가했고 달리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쌓였다. 또한 운동이 습관이 아닌 사람이 대회를 뛰면서 억지춘향으로라도 운동의 압박을 받았다. 10년 전 10km를 처음 달리고 무릎통증에 1주일을 다리를 절며 다닌 기억이 남아 게으른 몸을 채찍질했다.


뛰면서 알게 된 것이 많았다. 무릎은 꾸준히 달리기만 하면 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습을 게을리하면 바로 티 나는 것이 관절이었다. 심장이 짜릿한 느낌이 들면 힘들게 운동하고 있다는 것이니 천천히 뛰어야 한다는 것, 우리 동네를 외곽으로 달리면 40분 정도 걸린다는 것, 기온이 10도 밑으로 내려가면 긴팔 T와 긴 운동복 바지를 입고 기온이 0도 밑이라면 내복이나 점퍼를 걸치기 보다 장갑을 꼭 끼고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5km 반환점을 넘어섰다. 10km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5km 출발 총성이 울렸는데 5km 선두그룹은 반환점을 돌고 있었다. 내 기준에는 1/4 정도 온 것이라 남은 3/4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도 몸은 가벼웠다. 


오르막이 나왔다. 몸이 힘든 티를 내었다. 약간의 경사에도 몸이 더 지치는 것이 체감되었다. 속도를 낮춰서 천천히 뛰었다. 내리막에서는 발 뒤꿈치를 먼저 닿으면서 성큼성큼 뛰었다. 무릎과 체력을 배분한 달리기였다. 오르막에서 나를 앞선 사람들을 일부 다시 제쳤다.


쭉 이어지는 평지에서는 일정하게 속도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썼다. 몇몇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중간에 걷고 있었다. 조금 더 뛰니 5km 참여자들과 합류지점이 나왔다. 후미그룹들이라 그들은 아예 걷고 있었다. 애초에 참여 마음가짐 자체가 다른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어찌 되었건 조금이라도 기록을 줄여 완주를 해보자고 낑낑대는 내 모습이 비교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 신나게 내려온 내리막길을 거슬러 올랐다. 힘이 있던 아까와 달리 힘이 다 빠진 몸으로 올라가려니 당장이라도 걷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숨을 헐떡이고 있어도 좀 있으면 목표지점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한 발 한 발 뗄 수 있었다. 삶이든 달리기든 목표와 계획은 끝까지 가는데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결승점이 보였다. 늘 그랬듯 남은 힘을 다 짜내어 뛰었다. 내 앞에 가는 몇몇을 따라잡았다. 기록 단축에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지만 자기 만족감을 올리고 전력을 쓰며 운동을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간식과 완주 메달을 받아 동생과 마치고 만나기로 한 벤치로 갔다. 동생은 이미 맡긴 짐을 찾고 와서 신발끈을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형, 금방 도착했네. 나도 좀 전에 들어왔는데"

동생은 연습을 별로 안 했다는 내가 자기와 별 차이 없이 도착한 것이 놀라웠던 모양이었다.


기록은 54:23이었고 동생은 나보다 2분 30초 빨랐다. 생각보다 빠른 기록에 러닝앱에서 거리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오늘 뛴 총거리는 8.71km였다. 10km로 환산하면 벚꽃마라톤때와 별 차이가 없는 기록이었다.


작년 하프서 나보다 늦게 들어왔던 동생은 연습으로 이전과 같은 컨디션을 찾아 다시 나를 제쳤다. 연습을 거의 못했던 나도 완주로 목표를 낮춤으로써 몸에 무리 없이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대회는 가을에 있을 하프마라톤이 될 것이다. 하절기 러닝 계획을 세워 반년 뒤 가을 대회에서 좀 더 큰 결실을 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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