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해보고 싶은 것이 몇 개 있었다. 아이와 배낭여행 가기, 도서관에 붙어 앉아 하루종일 책 읽기, 주말아침에 동네 한 바퀴 같이 돌며 쓰레기 줍기 같은 소소한 것이었다.
그중 목욕탕에 함께 가기도 있었다. 이건 첫째 아이가 17개월쯤 되었을 새해(新年)에 일본의 쿠마모토에 놀러 가서 이뤘다. 아기를 안고 온탕에 들어가 있다가 샤워를 하고 나온 정도였지만 앞으로 커갈 아이가 내 등을 밀어주는 상상에 즐거웠다.
둘째 아이가 잘 걷고 뛰고 하여 평소 첫째와만 가던 목욕탕에 같이 데려가보았다. 초등학생인 첫째야 놔두면 탕을 오가며 놀았지만 둘째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해서 사우나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열탕에도 못 들어가고 애 뒤만 쫓아다녔다. 좀 더 크면 나을 테니 그날 이후 한동안 아이와 목욕탕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날은 점심 먹으러 본가에 갔더니 아버지만 혼자 계셨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고 했다. 오전에 한바탕 밖에서 놀아서 땀범벅인 애들을 씻겨야 했는데 불현듯 목욕탕에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이번주 목욕 아직 안 하셨으면 목욕탕 가실래요?"
"그래, 아직 안 했다."
"그럼 목욕하러 가요. 애 하나씩 맡으면 번갈아 사우나도 할 수 있겠어요."
호주생활할 때도 목욕을 하려고 멜버른 외곽의 온천을 찾았던 나였다. 20대 후반엔 전국 목욕탕을 가보고 블로그에 남기는 것도 시작했다가 일이 바빠져 몇 번 업로드 못하고 흐지부지 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흔쾌히 오케이 하시자 목욕할 생각에 들떴다. 차를 타고 10분 거리의 목욕탕으로 향했다. 총각시절 무던히도 다니던 곳이었다.
욕장에 들어가니 첫째가 신이 났다. 온탕에 잠시 몸을 담그는 듯하더니 냉탕에서 놀았다. 내가 아이 때도 그랬지만 온탕에서 몸이 풀리는 편안한 느낌 보단 답답한 느낌을 받는 시기였다. 둘째는 일어서면 자기 엉덩이까지 물이 차는 얕은 온탕에서 놀았다. 냉탕 물이 깊어 형아 따라 놀기는 무서워했다. 그 덕에 온탕에서 편하게 애를 보고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혼자만 챙겨도 되던 시절에 해외 가기 전 마지막 목욕이라며 욕탕에 누워 감상에 빠졌던 때가 벌써 15년 전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욕탕에서 그때와 같은 자세로 누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하였다.
'다시 15년이 흐르고 이곳에서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그때 아버지는 옆에 계실까, 아이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린 손자 손을 잡고 다녀주신 아버지가 있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볼 수 있었고 편하게 탕에 누워 옛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5월은 사과 꽃이 지고 열매가 맺는다. 모내기도 해야 하고 물도 대야 한다. 즉, 손이 많이 가는 농번기이다. 한동안 시골에서 바쁜 시기를 보내실 부모님이 걱정되면서도 농번기가 지나고 여름 볕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가 되면 다시 같이 목욕탕에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