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vs 2024년
학교를 마치고 동네 놀이터에 가면 언제나 같이 놀 친구들이 있었다. '술래잡기'를 비롯해 요즘에는 하는 아이를 보기 힘든 '말뚝박기, 오징어독구'와 같은 놀이를 매일 했다. 그렇게 오후 내내 놀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거나 어둑어둑해져서 친구들이 집에 돌아가면 마지못해 놀이를 마쳤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주로 학교와 학원에서 논다. 동네마다 잘 만들어진 놀이터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오거나 휑하기 때문이다. 가봐야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신기한 건 간혹 한 번씩 아이들을 하원시키면서 놀이터에 들러 미끄럼이나 그네를 태우고 있으면 30분 내로 몇몇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놀이터로 온다는 것이다. 우리 식구도 어린이집 하원길에 보이는 놀이터에 동네 아이들이 부모님과 와서 놀고 있으면 일부러 차를 멈춰 놀고 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서로 처음 보지만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놀이를 하고 놀아도 즐거워한다. 붙임성 좋은 애들은 나이를 물어보면서 같이 놀자고 하기도 한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같이 다녔던 친구 하나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랫동네로 이사를 갔다. 이제 더 이상 같은 동네가 아니라서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엄마들끼리는 연락처를 교환 한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가을에 한번 만나고 1년여 만에 금요일 저녁시간에 동네 운동장에서 같이 놀기로 약속을 하였다. 애들 엄마가 아이 둘이 모여 논다는 사실을 첫째와 같은 반 친구의 엄마에게 얘기를 해서 아이 한 명이 더 합류했다. 이렇게 세 가족이 모이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둘째를 데리고 집에 있으려다가 둘째가 형아를 따라가고 싶어 하여 밖으로 나왔다.
첫째는 약속시간에 미리 와있던 친구 둘을 보자 너무 신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이 셋은 줄넘기를 뛰다가, 같이 운동기구를 타다가, 술래잡기를 했다. 운동장과 옆의 놀이터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같이 하니까 즐거워 보였다.
애들끼리 잘 노니까 부모들도 편했다. 애들 먹이려고 사온 음료수와 과자, 빵 외에도 엄마들이 마실 커피도 다 챙겨 와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를 전담했다. 둘째는 둘째대로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또래로 보이는 아이 옆에서 맴돌았다. 그 아이도 우리 둘째가 하는 것을 따라 하면서 같이 노는 듯 아닌 듯 놀았다. 그 모습이 우스웠다.
그 아이도 엄마가 전담하고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아이 나이를 물으니 둘째랑 태어난 년도와 월이 똑같았다. 그 애는 외동이라 확실히 형아가 있는 우리 애보다는 행동이 조금 더 소심하긴 했지만 둘이서 같이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아야 하는구나!'
그렇게 핸드폰도 유튜브도 화려한 놀이기구도 없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한참을 놀았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육아로 힘들었던 시간을 수다로 공유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밤 10시가 되었다. 운동장의 불이 꺼졌다. 이제 한 가지 숙제가 생겼다. 밤 12시까지 놀겠다는 아이들을 떼어놓는 것이었다.
'그때도 그랬지!'
1980년대 동네 골목에서는 놀고 있던 우리를 부르는 엄마들이 있었다. 동생과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못 들은 척 놀았다. 그러다 화난 엄마들이 친구들 손을 하나씩 붙들고 돌아가면 우리도 집으로 향했다. 물론 우리 엄마가 먼저 우리를 데리러 오기도 하였는데 그땐 어딘가에 끌려가는 소처럼 체념하고 엄마뒤를 따라갔다. 학교를 마치고 해가 머리꼭대기에 있을 때부터 놀아도 저녁은 빨리 왔다. 매일 놀아도 친구들과의 헤어짐은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날에도 우리는 학교 끝나면 동네친구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어쩔 때는 동네 고물상이, 어떤 때는 학교 운동장이, 또 어떤 때는 공중전화부스가 꾸러기들의 놀이터였다.
36년의 시간 격차를 건너뛴 현재에서 우리는 입장이 바뀌었지만 같은 고민에 빠졌다.
'그 시대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강제로 아이를 끌고 가느냐. 잘 달래 보느냐.'
각자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에게 내일 오후에 첫째와 물놀이장에서 놀기로 했으니 시간 되면 만나자고 말을 꺼냈다. 사실 그 시간에 아이 둘을 본가에 맡겨두고 주중에 밀린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아이들의 표정에 이런 말이 나오고 만 것이었다. 첫째도 내일 예정에도 없던 물놀이를 데려간다니 신이 났다.
"언제쯤 올 거예요?" 한 아이의 물음에
"2시쯤이면 점심 먹고 물놀이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해줬다.
다음날 둘째는 원래 예정대로 본가에 맡겼다. 첫째는 오전에 줄넘기 학원에서 연습하는 스케줄이 있어서 보냈다. 오전 연습을 끝낸 첫째를 데리러 가니 이미 마음이 물놀이장에 있었다. 점심을 대충 먹이고 수영복으로 갈아입혔다. 아직 무더위가 남아있는 8월 말을 향해가는 주말날씨는 물놀이하기에 딱 좋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물놀이장에 도착했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왔었는데 그때에 비해 아이들이 절반 밖에 없었다. 2시 정각이 되자 물놀이장에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와 같이 샤워를 하고 물이 발목 위까지 찬 물놀이장에 들어갔다. 45분 물을 틀어주고 15분을 쉬는 것이 한 타임이었는데 2시 타임이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물을 맞고 있는데 평소라면 혼자서도 잘 놀던 첫째가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내 친구한테 전화해 봐."
"이제 2시 10분이야. 올건지 안 올 건지는 친구랑 친구 부모님이 결정하는 건데 아빠가 전화하면 독촉하는 것 같잖아!"
"그럼 언제 전화할 거야?"
"그래도 한 시간은 우리끼리 놀다가 그때도 안 오면 한번 물어보자."
"아니, 20분 되면 물어보자."
"20분은 또 왜 20분인데? 기다릴 거면 더 기다려 보자. 어차피 미끄럼 타고 놀고 있으면 올 때 되면 와."
나도 아이 친구가 오면 둘이 놀게 하고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었기에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는 조바심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멀뚱 거리는 첫째를 달래고 있는데 인사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왔구나."
드디어 아이 친구가 왔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제의 그 재밌어 죽는 표정을 다시 지으면서 물놀이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뛰기 금지라고 쓰여 있는 경고문은 안중에 없었다.
"뛰지 말고 놀아"
한마디 하고 돗자리를 깔아 놓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이친구 엄마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뵙네요. 괜히 저희가 물놀이장에 온다고 해서 일부러 오신 것 아니에요?"
"아니요. 우리 애도 친구랑 놀고 싶다고 해서 오전에는 TV 보다가 점심 먹고 바로 짐 챙겨서 나오는 길이에요."
아이 친구 엄마도 내가 깐 돗자리 옆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우리는 물놀이 시설이 돌아가는 시간에는 서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였고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챙겨주었다. 아이 둘이 노는 모습을 보는데 아까 내가 첫째와 잡기도 하고, 같이 미끄럼을 타기도 할 때와 노는 것은 비슷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친구와 놀면서는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둘이서 미끄럼 탈뿐인데도 깔깔, 물에 앉아있는데도 깔깔, 떨어지는 물벼락을 맞으면서 깔깔, 잠수놀이 하면서 깔깔대고 있었다.
그렇게 4시간을 놀고 물놀이장 폐장시간이 되어 헤어졌다. 폐장시간이 저녁 9시면 9시까지, 12시면 12시까지 놀 분위기여서 6시로 정해진 폐장시간이 반가웠다.
친구와 헤어지고 옷을 갈아입은 첫째와 본가로 향했다. 우리를 본 둘째가 "아~빠~" 하면서 방방 뛰었다. 아까 첫째가 자기 친구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겹쳤다.
'에고 불쌍한 것'
형아가 태어난 해에는 출생아 수가 406,243명인데 자기가 태어난 해에 출생아 수는 249,000명으로 6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애가 안타까웠다. 같이 놀 친구는 더 찾기 어려울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해에는 출생아 수가 86만 명이었고 그 앞 뒤 연도도 비슷했기 때문에 놀 친구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저출산 시대 아빠는 산업화 시대에 아이들보다 회사 나가는 게 우선이던 아빠들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친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빠가 같이 놀아줄게.'
그날 한 아빠는 아이의 친구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둘째도 간혹 친구들끼리 만나는 날을 주선하여 끼리끼리 노는 경험을 되도록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고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