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이가 막 기저귀를 떼었다. 아내가 아이와 함께 노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참여를 권했다. 100인의 아빠단과의 첫 만남이었다.
아이의 말이 또래보다 똑똑하고 이해력과 호기심이 강해서 총명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마침 그 전년도부터 가족친화인증사업의 심사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육아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별 고민 없이 신청을 하고 선정이 되었다.
그해 7월부터 네이버의 '100인의 아빠단' 카페에서 미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션은 아이와 함께 몸으로 놀아주기, 산책하기, 한글놀이하기 등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그냥 놀 때와 목표가 주어지고 놀 때는 확실히 몰입감과 재미가 달랐다. 아빠는 미션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는 그저 아빠가 놀아주니까 좋아했다. 약 4개월 간 매주 미션을 수행하던 100인의 아빠단 활동이 끝나고 열심히 미션수행한 사진을 카페에 올려놓은 것을 인정받아 장려상을 받았다. 10만 원 상당의 식당이용권을 부상으로 받아 가족들과 외식도 했다.
시간은 쏘아버린 화살과 같아서 코로나19가 덮치고 첫째는 초등학생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생긴 둘째도 쑥쑥 커서 어느덧 2019년 어느 날의 형아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햇볕이 길어지는 봄날에 '2025년 100인의 아빠단' 모집공고가 떴다고 아내가 카톡을 보내왔다. 아내는 내가 첫째 때처럼 둘째와도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기 바랐다. 둘째도 말을 곧잘 하고 잘 알아듣는 단계에 진입했고 이전의 좋은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신청을 하여 선정이 되었다.
100인의 아빠단의 틀은 그대로인데 6년간의 노하우가 쌓여 카페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교육, 놀이, 관계 등 여러 섹션으로 매주 다른 수행미션들이 같은 육아하는 아빠멘토들을 통해 공지되었다. 아빠들의 육아가 전에 비해서 일상화되었음이 느껴졌다.
첫 번째 미션은 자연보물 찾기였고 아이가 밖에서 놀면서 주워온 솔방울, 무당벌레, 돌멩이 모든 것이 보물이었다. 두 번째는 사고팔기 놀이로 돈의 개념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직 그 수준에는 이르지 않아서 물물교환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물 마시는 습관 들이기, 상추 키우기, 풍선놀이하기, 몸으로 놀아주기, 대화기록 남기기, 계단 오르내리기, 한글과 친해지기까지 매주 미션을 시행하였다. 미션 사진을 글과 함께 올리면 아빠들의 댓글이 주르르 달렸다. 아이와 시간을 보낸 것을 칭찬하는 댓글이었다. 그러면 나 역시 게시판의 미션수행글들을 전부 클릭하며 다른 아빠들은 아이들과 어떻게 보내는지 확인을 하고 응원댓글을 달았다.
각자 미션 수행은 자유롭게 하지만 결과물은 천차만별이었다. 사진을 안 넣거나 사진 한 장에 달랑 몇 줄의 글만 적는 아빠도 있고 10장이 넘는 사진에 카페를 통해 내주는 미션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추가미션을 더해서 아이들과 수행한 아빠도 있었다. 내가 올리는 게시물은 활동을 증명하는 사진을 위주로 글을 몇 줄 추가하는 정도로 나중에 보았을 때 추억이 살아날 정도 선에서 작성되었다.
이번 주 미션은 동네산책하기인데 6년 전 첫째를 데리고 아장아장 산책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미션이었다. 어제 아이 하원시킬 때는 차를 가져가지 않고 걸어가서 저녁 먹기로 약속한 장소로 가는 15분 동안 시간을 같이 보냈다. 골목길임에도 차가 자주 다녀서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간간히 멈춰 서서 돌 위에 올라가고 개미를 쳐다보고 신나게 달리고 풀잎을 잡아당기는 아이의 행동을 옆에서 지켜만 봐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삶에는 때로는 강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일 핑계로 자기 전에 놀아주는 것이 전부인 육아 흉내 아빠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짜증을 웃음으로 바꾸는 육아아빠로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이 그것이다. 카페에 6년 전에 올려놓은 첫째와의 추억을 꺼내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회상에 잠기고 있다. 내가 선택한 강제인 '100인의 아빠단'의 다음 주 활동도 기대된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둘째와 미션을 할 때는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중한 추억은 사진으로 남아 수년뒤에 나를 이 시점으로 데려올 것이다. 벌써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