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울산마라톤
"난 이제 죽었다."
2024년 울산마라톤에서 동생과 만나서 가장 처음 한 말이다. 그땐 하프 마라톤을 뛰기 위한 아무런 훈련이 되지 않았음을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 맞이할 2시간이 넘는 시간이 두려웠다. 걷뛰를 거듭한 끝에 2023년도 첫 하프 때 보다 못한 2시간 24분 대의 기록을 받아 들고도 아쉬움보다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2025년 울산마라톤은 울산공업축제의 마지막날인 10월 19일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날을 위해 작년 10월 말부터 매일 조깅을 한건 아닐지 생각할 정도로 시기가 절묘했다.
1년 동안의 조깅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날으로 정해 놓으니 몸에 꾸준히 축적된 달리기 DNA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함이 있었다. 이미 가을 대회를 위해 몇 번의 훈련을 함께 한 동생은 내가 자기보다 먼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이라고는 안 하고 살던 사람이 운동을 업으로 하고 살던 사람에게 자기보다 잘 달릴 것이란 말을 듣는 것은 어떤 칭찬보다도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그 칭찬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었다.
아침 해 뜨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었다. 작년에는 종합운동장 내부에 테이핑 영역이 있고 협찬사들이 선크림 등을 할인해서 팔기도 하였는데 올해는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종합운동장에는 딱 행사무대와 급수텐트만 있었다. 나머지 동호회 천막이나 탈의실, 짐보관소, 협찬사 부스는 바깥의 보조경기장에 위치하였다. 이렇게 하니까 확실히 경기장은 쾌적했으나 보조경기장에 나가도 신나는 볼거리는 없었다. 할 것 없이 돌아다니다 한 쇼핑몰 앱에서 오늘 가입 시 10만 포인트를 준다고 하며 개인정보를 받아가는 것에 낚이기만 할 뿐이었다.
선선해진 날씨에 짐을 최대한 늦게 맡기고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작년보다 참가자는 더 많아진 것 같은데 대회 운영은 매끄러웠다. 몸을 풀고 나서 하프 참가자 출발선에 섰다. 출발시간이 8시 30분이라 여유로웠는데 진행자가 8시 24분이 되자 갑작스럽게 카운트 다운을 외치더니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얼떨결에 출발하여 종합경기장 밖으로 나가면서 동생과 각자 페이스 대로 뛰기로 했다. 뛴 지 몇 분 만에 신발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동생을 먼저 보내고 잠시 길 옆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 털고 이물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달렸다. 30초 남짓의 이 시간은 4km 뒤에야 동생과 다시 만날 수 있을 만큼의 격차를 만들었다.
경주벚꽃마라톤, 포항해변마라톤의 초반 병목에 비하면 병목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지 않고 체력 안배를 하였다. km당 5분 30초를 넘기지 않는 수준에서 달리니 점점 나와 비슷한 속도의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급수대는 그냥 지나치고, 동생을 앞서고 나서 지나간 6km 지점의 두 번째 급수대에서 물 한 컵을 마셨다. 진행 도우미들이 종이컵 가득히 따라놓아서 몇 번을 나눠 마셔야 했고 달리는 진폭으로 인해 떨어진 물이 신발을 적시긴 했으나 미리 마셔두는 게 중반 이후 레이스에 대비한 대책이었다.
작년에는 내리쬐는 햇볕으로 인해 무더웠는데 올해는 흐리고 간간히 보슬비도 내려 선선했다. 9km 반환점을 도는데 작년과는 달리 힘이 많이 남아있었다. 급수대에서 미리 준비해 온 식염포도당을 입에 털어 넣고 이온음료를 집어서 마시고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km당 5분 10초 페이스를 유지하였다. 이렇게 해야만 저 멀리에 보이는 2시간 페이스메이커를 잡을 수 있었다.
앞만 보며 뛰다 보니 12km 지점 급수대가 보였다. 내 무리에 같이 뛰는 여성분과 그녀의 개인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는 남성분이 있었다. 그중 남성분이 여성분에게 말을 걸었다.
"힘들진 않아요?"
"힘들어요."
"이대로 가면 됩니다. 잘하고 있어요."
"네"
"지금 에너지젤을 미리 까두세요. 곧 급수대예요."
"네, 젤을 먹고 나면 그 힘으로 계속 달릴 수 있겠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챙겨 온 에너지젤 하나를 꺼내 먹었다. 복숭아 맛의 젤이 입에 들어와서 강렬한 단맛을 선사했다. 물을 마셔서 진득한 느낌을 없애고 뛰기를 지속했다.
15km 지점에서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이끄는 무리에 잠시 합류하였다. 지금까지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 무리도 곧 지나쳐 갈 수 있었다. 계속 뛰다 보니 고관절 주변이 뻐근하고 무릎도 무거워지는 것이 통증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변을 보니 뜀을 멈추고 겨우 걸어가는 사람, 걷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보다 속도를 더 올려서 갈 수는 없겠지만 이대로 유지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번째 반환점을 돌고 나와서 동생이 저편에서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동생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파이팅을 외쳤지만 동생은 달리기에 집중하느라 그런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힘이 빠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레이스 중의 파이팅은 지쳐가는 몸을 깨우고 쳐지는 페이스를 원래 상태로 돌려주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쑥스러운지 파이팅에 화답을 크게 해주진 않았지만 엄지를 세운다거나 주먹을 꽉 쥐는 등 소극적인 제스처를 취해주었다. 그런 모습에서도 힘이 났다.
이제 레이스는 후반을 향하고 있었다. 10km 참가자들의 후미 주자들과 만났다. 모두가 지쳐있었다. 힘이 남아서 저 뒤에서 빠르게 뛰어와 앞으로 사라지는 몇몇의 별종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신력으로 뛰고 있었다. 마지막 급수대가 나왔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1km 남았다고 소리쳤다. 힘을 더 내서 달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그대로 달리고 있는데 1km 팻말은 500m를 더 달리고 나니 보였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는데 짜낼 힘도 거의 없었다.
'피니시가 얼마 남지 않은 이때라도 메이저 마라톤처럼 많은 인파들이 모여서 파이팅을 외쳐주거나 이름을 불러주며 열광해 주면 없던 힘도 솟아날 텐데...'
이런 바람이 무색하게 일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울산 거리는 한산함 그 자체였다.
도로에서 종합운동장 쪽으로 들어섰다. 아까 12km 급수대 부근에서 같이 뛰던 여성분이 꾸준히 내 뒤를 따라오다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앞질렀다.
'저 사람도 나만큼 힘들건대 힘내서 달리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저 정도는 달릴 수 있다.'
그녀의 보폭과 리듬에 맞춰 바짝 쫓아 뛰었다.
경기장 내부에 들어서자 트랙 반바퀴만큼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10km 후미와 뒤섞여 제법 주로가 혼잡했지만 이제 200m 남짓 남으니 질주할 힘이 솟았다. 마라톤은 정신력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지금부터라고 생각하고 기합을 넣었다. 몸이 바로 질주 모드로 들어갔다. 100m 달리기 하듯 뛰어나가니 경쟁하던 여성분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수십 미터 앞에 있던 사람들도 다 따라잡으면서 골인지점을 통과하였다.
급수대까지 가볍게 뛰어서 생수 한 병을 받아 들었다. 이제 나의 레이스가 끝났으니 동생의 골인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펜스로 이동하였다. 서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 섰는데 다리가 저렸다. 계속 뛰던 다리가 멈춰 서니 혈액이 원활하게 돌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면서 다리를 풀어주고 있으니 몇 분 후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다 왔다. 질주하자. 빡런해야지!"
동생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피니시라인을 통과하였다.
간식과 메달을 받고 짐을 찾아서 출발 전에 만날 장소로 지정해 놓은 곳에 가서 퍼질러 앉았다. 스마트폰으로 기록을 살펴보고 있으니 동생도 짐을 찾아왔다.
1시간 54분 19초
6개월 전의 포항 해변 마라톤에서의 내 PB인 2시간 3분 기록에 9분을 앞당긴 기록이었다.
동생도 29초 차이로 2시간 언더를 기록하였다. 나도 동생도 모두 정해둔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막상 하프마라톤을 2시간 내로 들어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자 기쁨보다는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노력을 이기는 것은 없구나!'
꾸준히 하면 1년 전의 나라면 꿈도 못 꿀 좋은 결과를 당연하듯이 받아들이는 날이 오는 것이었다.
작년과 달리 막걸리도 두부김치도, 살 거리도 없이 휑한 대회였지만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은 가득했다.
내년도 대회는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은 체력을 갖게 될 것이다.
며칠 뒤, 11월에 있을 태화강 인권 마라톤에서 2시간 페이스메이커를 해주기로 한 형에게 연락을 하여 이 소식을 전했더니 그때는 1시간 50분을 목표로 뛰자고 하였다. 지금 기록에서 4분도 더 당겨야 하는 것인데 대회 후 3~4일이 지나도 허벅지 앞쪽이 당기고 몸이 무거워 회복조깅도 겨우 하고 있는 처지에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전반 2주간 인터벌 훈련 2번, 장거리 훈련 1번 하기로 했으니 어찌 되겠지! 그리고 남은 후반 2주간을 푹 쉬면서 회복해 보자!"
다음 꿈이 생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