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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이 느껴지는 하프마라톤

제20회 울산인권마라톤

by CJbenitora

상반기에 장인어른과 친동생이 함께 경주에서 열린 벚꽃마라톤이 인상 깊었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벚꽃길을 각자의 속도로 뛰고 함께 국밥을 먹었던 좋은 기억이었다. 하반기에도 장인어른께 마라톤 접수를 해 놓을 테니 함께 달리자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한여름 접수기간에 제20회 울산인권마라톤에 '새바람'이라는 단체 이름으로 3명을 등록했다. 대회가 한 달쯤 남았을 무렵 장인어른이 동창들과 약속이 있다고 대회날 참여가 어렵겠다고 통보하셨다. 아직 취소가 가능한 날짜였기에 취소를 하였더니 50%가 환불되었다. 이제는 괜히 오지랖을 피워 단체 접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본인이 뛰고 싶으시면 말씀하실 테니 그때 접수를 도와 드리자!'


이렇게 해서 인권마라톤은 동생과 둘이서 참여하게 되었다. 영천댐 마라톤에서 대회장에 빨리 도착하니까 모든 게 여유롭기에 이번에도 9시 30분 출발임에도 7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아침기온이 낮아서 스트레칭하고 나서 1km를 뛰어 보았는데도 몸에서 열이 올라오지 않았다. 인권 관련 몇 가지 서명을 하고 부스에서 하는 퀴즈 맞추기에 참여해서 라면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2시간 페이스메이커를 약속했던 형을 만났다. 그 형도 자기 동생과 같이 왔는데 얼마 전 무리하게 훈련하다가 부상을 입어서 오늘은 5km만 뛰고 응원을 하겠단다. 그 동생분도 혼자 훈련해서 얼마 전에 1시간 40분을 달성하였다는 실력자였다. 우리는 오늘 목표가 한 달 전 울산마라톤 하프 기록보다 조금 더 빨리 들어오는 것이라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덧 출발이 얼마 안 남았다. 질주 2번을 가볍게 하고 옷가지를 짐보관소에 맡겼다. 단체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출발선으로 이동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 풍선이 보였다. 오늘은 저 풍선만 따라가 보기로 했다. 9시 30분이 되자 출발 신호가 울리고 모두가 뛰기 시작했다. 애플와치 배터리가 하프를 뛰는 시간 동안 견디지 못할까 봐 쭉 전원 오프 상태로 있다가 출발에 맞춰 켜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짐을 맡기고 나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2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소변이 마려웠다. 출발 1분 만에 동생을 먼저 보내고 주로 옆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최단시간을 머릿속에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30초가 조금 더 지나있었다. 주로에 복귀하니 1시간 50분 풍선은 점이 되어 사라졌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몸이 가벼워지니 속도가 저절로 났는데 초반에 속도를 올리면 후반에 힘들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속도를 낮췄다. 1km 당 속도가 5분 10초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조절을 했다.


초보러너일 때는 매 1km 표시가 눈에 잘 들어왔는데 어느 정도 달릴 수 있게 되니까 그런 표시가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앞을 보며 달릴 뿐이었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나를 추월하고 속도가 느린 사람은 나에게 따라 잡히면서 자기 속도에 맞춰갔다. 한 사람씩 따라잡으면 기분이 좋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달리기라는 것은 훈련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빠르면 내가 더 훈련을 열심히 한 것이지 잘나서 그런 게 아닌 것이다.


급수대는 2.5 ~ 3km 거리마다 있었는데 대부분 물을 많이 준비하는 다른 대회와 달리 스포츠용 이온음료가 많았다. 이온음료는 10km 이상을 뛰고 나서 마시면 좋은데 초반에 마시니까 물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다리를 몇 개 지나고 구영리 쪽으로 넘어가는 파크골프장 옆 길까지 오니까 주변에 사람이 몇 없었다. 초반에 놓친 1시간 50분 풍선이 200m쯤 앞에 보였다. 그 무리의 맨 끝에는 동생이 있었다. 울산마라톤이 끝나고 한 달 동안 나름 훈련을 했다고 하더니 동생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잘 뛰고 있었다.


선바위교를 지나 반환점을 지나자마자 급수대가 있었다. 반환점 나오기 전에 꺼내 들었던 파워젤을 쭉 짜 먹고 물을 집으려고 하니 물이 없었다. 이전 대회에서는 반환점에 급수대가 탁자 5개 정도로 여유롭게 있었는데 이번엔 탁자 2개가 다였고 물 따르는 인원도 2명밖에 없어서 잠시 서서 음료를 실시간으로 따라 주는 것을 마시고 가야 했다. 파워젤을 먹지 않았다면 그냥 스쳐갔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의 시간 손해를 감수하고 이온음료를 한잔 마셔 입속의 단맛을 씻어내고 잘라놓은 바나나를 하나 들고 다시 출발하였다.


동생도 여기서 지체해서 나와 같이 달리게 되었다. 초반에 화장실 다녀온 30초가 10km 반환점에 와서야 메워진 것이었다. "형은 먼저 가. 나는 신경 쓰지 말고."라고 하는 동생의 말을 듣고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였다. 끝까지 5분 10초의 속도만 맞춰가면 아직도 100m 이상 앞에서 가고 있는 페이스메이커와 같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응원의 중요성을 느꼈다. 길가에서 응원용 풍선을 들고 파이팅을 외쳐주는 자원봉사 하러 온 학생들, 일반 시민들,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에게 화답을 해주면서 힘이 생겼다. 울산마라톤 때 넓은 주로에서 응원도 없이 혼자와의 싸움을 하던 때에 비하면 훨씬 정감 있고 재미있었다. 쳐지는 몸을 다시 바로 잡았다. 15km 지점에서 식염포도당을 꺼내 먹고 끈질기게 풍선을 따라갔다. 결승선에서는 따라붙으리라...


18km가 넘어가니 애플와치 배터리가 없다는 경고가 떴다. 즉시 멈춤 버튼을 눌렀지만 시계는 그대로 꺼져버렸다. 2시간도 못 버티는 와치는 이제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 전에 주문한 스포츠 와치가 오는 데로 초기화해서 친구에게 줘버려야겠다.


갑자기 뒤에서 1시간 50분 페이스 메이커 하나가 한 주자와 발을 나란히 하면서 나타났다. 보통 각 시간 대별 페이스메이커는 2명씩 배치되는데 뒤에 있던 페이스 메이커였나 보다. 어디서 뛰어나온 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페이스를 끌어올려 이 사람들과 맞췄다. 이제 남은 거리는 2km이고 한 번의 반환이 남았다. 앞에 가는 페이스 메이커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2명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 페이스 메이커 주변에도 나를 포함 2명이 붙어있었다.


반환을 돌았다. 1km도 안 남은 거리였다. 동생이 반대편에서 오는 것이 보여서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조금 더 달리니 내 페이스메이커가 앞의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다. 그는 자기 풍선을 숨기더니 같이 달리던 1명과 함께 속도를 더 내어서 달렸다. 그들처럼 달릴 힘이 없던 나는 따라 잡힌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릴 뿐이었다. 곧 결승점이 보였다. 이때부터는 질주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몸이 알고 있었다. 함께 가는 무리들도 속도를 더 내었지만 전속력으로 뛰는 내가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1:48:53


물 한 병을 받아서 숨을 고르며 걷고 있으니 곧 동생이 모습을 나타냈다.

"다 왔다. 질주하자!"

여느 때처럼 소리 높여 응원하였다. 전속력으로 통과한 동생의 기록은 1:50:35였다.


"재밌었다"

우리 둘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규모는 울산마라톤이 훨씬 컸어도, 주로 통제도 울산마라톤이 잘 되었어도, 급수대가 울산마라톤이 훨씬 길었어도, 재미는 인권마라톤이 더 우위였다. 태화강의 풍경을 보며 달리는 맛, 곳곳에서 응원해 주는 응원단, 고저차가 많이 없는 길들이 재미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 달 전보다 5분 26초를 더 빨리 달렸음에도 다 뛰고 나서 피로도도 적었다.


2년 전 이맘때 2시간 21분 47초로 들어올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걷뛰걷뛰를 하며 완주를 이뤄냈던 그때에 비해 몸은 많이 튼튼해졌고 속도도 많이 올랐다. 2시간 20분대 주자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다음 하프 마라톤의 목표는 1시간 45분 이내로 들어오는 것으로 잡았다. 석 달간 매일 달리면 내년 봄에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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