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영남알프스 전국 마라톤
2023년 하반기에 2개 대회, 2024년도에 4개 대회, 2025년도에 9개 대회를 달렸다. 영남알프스 전국마라톤이 열 번째 대회였다. 올해 마지막인 이 대회를 위해 하프마라톤이 끝나고 2주 동안 조깅을 꾸준히 하고 1.5km 전력질주도 한번 하였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이번에도 개인최고기록(PB)을 세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설레기 시작했다.
보통 2주쯤 전에는 배번호와 책자, T셔츠 등이 택배로 오는데 이번 대회는 일주일도 안 남은 화요일에 배번호만 배송되었다. 그것도 아내가 받았는데 챙겨놨다고 하더니 달라니까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주질 않았다.
"분명히 가방에 넣어뒀는데..."
아내 탓하기만 한다고 없어진 것이 나오는 게 아니어서 하루만 더 찾아보고 수요일에는 관계자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택배를 받은 사람이 잃어버렸다고 하여 배번없이 참가해야 할 것 같으니 주최 측에서 임시로라도 조치를 해줘서 기념품이라도 받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저녁 늦게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당일날 본부석으로 오면 임시 배번을 챙겨주겠다고 하였다. 그나마 조치가 빨라서 대회전부터 상할 뻔했던 마음이 평온을 되찾았다.
11월의 마지막 날이자 대회날이 되었다. 첫째 아들이 다니는 줄넘기 학원에서 이번 대회에 식전 공연을 하는데 공연 끝나고 참여한 애들 전부가 5km를 달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침 6시에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남은 가족도 준비해서 7시에 출발했다. 보통 대회는 혼자 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이번 대회는 온 가족이 출동하는 것이라 느낌이 달랐다. 40분을 운전하여 상북면민운동장에 도착하니 주차 전쟁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주차안내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얼마 안 걸려 주차를 했다.
5분쯤 걸어서 운동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고 있었고 마침 줄넘기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가 공연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부스의 위치를 파악했다. 본부석으로 가서 배번 분실 사실을 얘기하고 배번을 받았다. 어느새 식전공연은 태권도 시범단으로 바뀌어 있었고 기합소리가 운동장을 울리고 있었다.
봄과 같은 따뜻한 날씨라 일찍 반바지, 반팔로 환복해도 문제가 없어 보여서 환복하고 짐을 맡겼다. 둘째는 아빠가 스트레칭하고 천천히 조깅하고 있으니 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곧 다 함께 몸을 풀고 하프참가자들이 출발선으로 이동하였다. 길가에 서서 그들이 뛰는 것을 응원하였다.
하프출발 후 10km 주자들도 출발선에 정렬하였다. 유모차에 장식을 달고 아이를 태워 뛰려는 분 옆에 자리를 잡았다.
5,4,3,2,1
신나게 카운트 다운을 하고 몇 발짝 안 갔는데 유모차가 멈췄다. 나도 받힐뻔하며 움찔하며 멈췄는데 내 뒷사람도 당황하였다. 바닥의 기록측정기 경사에 바퀴가 순간적으로 걸렸다가 빠져나오며 생긴 일이었다. 다음엔 원래처럼 일반 러너들 속에 섞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출발부터 1km까지는 대부분이 순탄한 내리막이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일부러 무릎을 더 굽혀 달렸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든 말든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였다. 러너들 중에 주말마다 우리 동네 운동장에서 뛰는 여성분과 실루엣이 같은 분이 있었다. 모자, 고글 등으로 가려도 실력을 보니 딱 그분이었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분이 전방 20m 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점점 멀어졌다. 이렇게 가다가 느려지는 주자들을 하나씩 따라잡다 보면 힘이 빠질 저분도 잡을 수 있을 거란 희망회로를 돌렸다.
말없이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다가 코스 중 유일한 반환점인 초반 3.5km 지점을 돌고 오는 하프주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힘찬 발걸음에 나도 힘이 났다. 오르막이 나왔다. 반환점까지 꽤 경사도가 높아서 땅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뛰었더니 몇몇을 추월할 수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 내 뒤에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달렸다. 대회 코스에 반환점이 있는 것이 좋은 이유가 러너들 간에 서로 달리는 모습을 잠시나마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힘들게 올라왔던 길을 헉헉 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내리막을 달려 나가는 기분도 좋았다.
'고생 끝에는 낙이 옵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마음속으로만 파이팅을 외치며 뛰었다. 조금 더 달려 아까 지나온 5km 주자들의 반환점까지 왔더니 한참 5km 후미 주자들이 뛰고 있었다. 잠시 복작복작하게 달리다가 5km 주자들과 헤어져서 10km와 하프가 달리는 옆길로 빠졌다.
지금까지는 시골도로였다면 이 길은 공장들 사이에 난 골목길이었다. 뒤에서 속도를 내며 달려서 우리 무리에 낀 아저씨가 잘 달리기에 그분과 속도를 맞춰보았는데 그가 10분도 안되어 다시 속도를 줄였다. 잠시 목표를 세워서 달려서 편했는데 아쉬웠다. 골목길 중간에 있는 주택 대문 위의 공간과 2층 옥상에 남아시아에서 온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주자 중 일부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파이팅을 주고받았지만 나는 그럴 체력이 없었다.
골목길이 끝나고 왼쪽으로 돌아 대로를 타기 시작하였다. 급수대가 보였다. 절반이상 달려왔으니 목이 안 말라도 물을 마시기로 하였다. 종이컵을 잡고 물을 두 번에 나눠 마시는데 다 마시고 나니 다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시지 말걸'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항상 물을 마시고 나면 줄었던 속도를 금방 회복하였는데 이번엔 회복이 안되었다. 약간의 오르막길이라 그런지 속도가 느려진 게 느껴졌다.
그즈음 내 주변에 낮은 케이던스로 성큼성큼 뛰어가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오른쪽 신발에 끈이 풀렸는데 끈이 길지 않아 끈을 밟고 뛰진 않고 있었다. 끈 묶으란 말을 하는 게 맞나 싶어서 묵묵히 뛰기만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분들도 그게 눈에 들어왔는지 아이를 보는 사람마다 끈이 풀렸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 아이는 무시할 수 없는지 '자기도 알고 있고 묶어도 풀려서 이대로 끝까지 뛰기로 했다'는 설명을 하였다.
'힘들 텐데 대답한다고 욕본다.'
얼마 안 가서 하프와 10km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직진을 하지 않고 좌회전을 하여 10km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에 몸이 가벼워지질 않았다. 간혹 싱글렛을 입은 주자가 동반주자와 서서히 나를 앞지르긴 했고, 앞서던 걷뛰 하는 주자를 내가 따라잡기도 했지만, 이쯤 오니 나도 앞사람을 제칠수 없었고 뒷사람도 나를 제칠수 없었다. 모두가 몸이 무거웠다. 문득 초반의 그 여성러너가 생각나서 찾아보았지만 후반 오르막이 길게 펼쳐져있는 구간이라 몇백 미터 앞이 잘 보임에도 그녀의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실력으로는 아직 잡을 레벨이 아님을 깨달았다.
거의 끝이 보이는 지점에서 다시 5km 주자들과 만났다. 그들도 뛴 지 40분이 지난 시점이라 전부 걷는 사람들 밖에 없었다. 그중 우리 첫째와 줄넘기 학원을 같이 다니는 남자아이가 보이기에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그 녀석도 나를 알아보았다.
"앗, 안녕하세요!"
오르막을 다 올라 우회전을 하자 결승선이 보였다. 보폭을 넓히고 허리를 세우고 탄력을 주며 질주를 하였다. 모든 달리기는 질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앞선 주자를 다 제치고 골인점을 통과하였다.
공식기록은 47분 52초
하지만 스포츠 시계는 50m가 모자란다고 나와서 천천히 10km를 채우고 시계시간을 보니 48분 16초였다. 대회장에서 물과 메달과 간식을 받고 맡겨둔 짐을 찾았다. 어묵탕과 두부김치 줄이 짧길래 다른 주자들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받아서 둘째와 놀고 있는 아내에게 갔다. 짐을 내려두고 부스에서 나눠주는 생맥주 한잔을 받아와서 마셨다. 이런 시간이 있어서 힘든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첫째도 5km를 30분 20초의 준수한 기록으로 달렸다. 30명의 줄넘기학원 아이들 중 5등이라고 하였다. 개중 나이가 가장 어려 걷지 않고 끝까지 뛴 것만 해도 대단한데 5등을 했다니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신나서 달리기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첫째를 보며 한 명이 또 달리기의 재미에 빠졌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번 10km 대회 성적은 영천 마라톤 때에 비해서 30초 정도 늦었다. 비록 기록을 경신하지는 못하였지만 내가 47분 정도의 실력이 되었음을 한번 더 증명하였다. 이제 내년 봄에 있을 대회를 대비하면서 겨울 동안에도 꾸준히 훈련을 하면서 3개월 뒤를 준비할 일만 남았다.
내년도 대회도 기다려라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