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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Feb 04. 2021

노르웨이의 겨울왕국 살아남기

레이어링 제대로 하는 법

어디서든 노르웨이인을 만나게 되면 자기 나라의 여름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지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을 한 번 쯤은 들을 수 있는데, 이에 속지 마시라. 노르웨이는 겨울의 나라다. 오슬로 기준 11월부터는 눈이 내리고, 심할 경우 5월까지 눈이 남아 있다. 물론 고도가 높거나 북쪽으로 간다면 7월에 가더라도 어디서든 눈을 볼 수 있다. 물론 여름에는 자정까지도 빛나는 해를 볼 수 있지만, 25-30도를 웃도는 따스하고 온화한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흐린 날을 빼고 통틀어 2주 정도이다. 여름 휴가로 노르웨이에 올 계획이라면 무조건 6월 말부터 7월에. 8월 초까지도 괜찮지만 중순이 지나면 비가 내리면서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15-19도 정도로 떨어진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겨울은 그냥 추운 게 아니다. 한국의 추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해가 짧다보니 지면이 데워지지 않아서 그런지, 늦게까지 불빛과 열기를 뿜어대는 가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습도가 낮아서 그런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가져와서 같은 방식으로 입으면 이상하게 추운 느낌. 그래서 정리해본, 노르웨이에 살러오거나 놀러온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긴 겨울을 살아남는 법.

18년 12월에 찍은 동네 사진. 해가 뜬 아침 9시 경인데도 어슴푸레한 느낌이 난다.



그냥 껴입으면 안돼. 레이어링 제대로 하는 법


레이어링의 기술은 겨울을 두 세 번 겪고 나서야 배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핵심이다. 한국에서는 롱패딩처럼 안에는 얇은 옷을 입더라도 재킷을 두꺼운 걸 입어주면 웬만한 방한이 가능하다. 아주 추운 날에는 안에 얇은 것을 겹겹이 껴입고 두터운 파카를 입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그냥 춥다고 껴입기만 하면 땀이 나는데 이게 제대로 증발되지 않으면 젖은 부분이 차가워지면서 재채기가 나고 그래서 춥다고 목도리를 하고 땀이 나고 그게 배출되지 않고 .... 지옥의 악순환이 따로 없다. 


북방의 도시 트롬소 (Tromsø) 방문시 레이어링 하는 방법 알려주는 사진. 출처는 visittromso.no

(1) 첫 번째 레이어


방한의 기본은 모 (울). 스포츠웨어를 파는 현지 상점에서는 어디에서나, 심지어 식료품점이나 슈퍼마켓에서도 양모나 메리노울로 이루어진 내복 레이어를 구매할 수 있다. 트롬소처럼 북방의 추운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여름에 가더라도 얇은 울로 이루어진 내복을 가져가거나 구매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돈내산 꿀팁은 큐부스 (Cubus) 와 같은 여성의류점이나 약국 (아포텍; apotek 1 이나 vitusapotek)에 가면 민소매 싱글렛 (singlet) 이나 반팔로 나온 100% 메리노울을 파는데 1년 내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본인은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편이라서 한겨울에 야외에서 가벼운 활동만 하는 경우 민소매 메리노울을 한 겹 입고, 울 긴팔 내복을 한 번 더 입는다.

린덱스 (Lindex)에서 현재 판매하고 있는 메리노울 FIX 스틸롱스 (stillongs) 출처는 lindex.com

상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실 울 하의이다. 현지에는 바지 안에 있는 '울 하의 내의'를 칭하는 말이 따로 있을 만큼 (스틸롱스; stillongs) 중요한데, 위 왼쪽사진에 보이는 두꺼운 내복보다는 청바지 안에 입을 수 있는 얇은 울 내복 스틸롱스가 데일리룩으로는 더 유용하다. 직접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꽤 좋아보이는 하의 내복 사진을 하나 가져왔다. 이제 얘네 없이는 밖에 나갈 수 없어...!



(2) 두번째  레이어


내가 자주 저질렀던 실수 중 하나가 울 위에 면으로 된 티셔츠를 입었던 것이었는데, 면은 땀을 잘 흡수하지만 겹겹이 껴입었을 때는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축축하고 찝찝한 기분만 안겨준다. 내복 위에 입어야 할 것은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루종일 신체 활동을 많이 할 예정이면 가장 추천하는 것은 바로 플리스 (fleece; 속칭 후리스)! 가볍고 보온성이 높으면서 통풍을 방해하지 않아 산행이나 스키를 탈 때 제격이다. 특히 지퍼가 달린 플리스 자켓을 입어준다면 혹시나 더워졌을 때 쉽게 벗을 수 있다. 


노르웨이 전통 무늬인 마리우스 스웨터 (노르웨이어로 mariusgenser). 사진 출처는 sandnesgarn.no/mariusgenser

야외에서 오래 있을 예정인데 격한 운동없이 가벼운 걷기 정도만 할 것이라면 내복 위에 울 함량이 높은 스웨터를 입어주는 것이 좋다. 노르웨이는 울 생산을 많이 하는 나라이고 겨울에 취미로 사람들이 뜨개질도 많이 하는데, 두터운 울 스웨터는 옷장 안에 누구나 한 두 벌은 가지고 있는 필수템이다. 그리고 울 함량이 높은 것을 고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한국에서 시중에 판매하는 두꺼운 합성섬유 스웨터를 입었을 때보다 비교도 안되게 따뜻하다. 단점은 목이나 얼굴 등 예민한 피부에 닿았을 때 따가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메리노울 함량이 높은 것을 찾거나, 최소 울 50%에 다른 인공 섬유가 섞인 것을 입으면 덜 따갑다. 


하의의 경우 안에 내복을 입은 다음에야 아무거나 괜찮다. 아무리 그래도 청바지는 좀 춥더라. 물론 스키, 스노보드, 산행 등 운동을 할 예정이라면 많이 두껍지 않아도 방수가 잘 되는 바지를 입어야 한다. 눈썰매를 탈 예정이라면 발목이나 등의 옷 사이 틈새로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시보리가 내장된 두꺼운 스키바지 같은 것을 입는 것이 필수!



(3)  마지막 레이어, 아우터


울을 두 세 겹 입어주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자켓. 아우터는 생활방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계절을 망라하고 예기치 않은 보슬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잦다보니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보통 모자를 뒤집어 쓰고 제 갈 길 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오슬로도 그런데 비가 자주 오는 트론하임 (Trondheim; 트론헤임이라고 쓰기도.) 이나 스타방에르 (Stavanger; 스타방게르, 스타방거라고 쓰기도.)에 사는 경우 비나 눈이 가로로 내리는 것이 예삿일이기 때문에 방수 기능이 있는 올웨터 자켓 (all-weather jacket), 한국에서 바람막이 자켓으로 알려진 형태의 자켓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한국에서는 쓸 일이 거의 없는 우비나 장화도 봄 가을, 초겨울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다. 


방수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아무래도 바람을 잘 막아주는지이다. 굳이 너무 두껍지 않아도 소매가 너무 넓지 않고 모자가 달려 있다면 이미 안에 울 레이어들을 잘 껴입었기 때문에 예상외로 땀 흘리지 않고, 실내에 들어가서도 벗어서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 작년까지만해도 발목까지 오는 코트나 패딩이 오슬로 길거리에 하나도 없었는데 2021년에 들어서 슬슬 롱패딩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길에 슬러시처럼 녹은 눈이 많아서 걸어가다 보면 긴 아우터의 끝을 더럽게 만들기 쉽기 때문에 아주 긴 롱패딩이 자리를 잡을지는 모르겠다.

겨울에 아이들을 '포장'하는 방법. 출처는 barnehage.no.

노르웨이 겨울 패션 중 단연 최고의 실속과 귀여움을 자랑하는 것은 아이들의 아우터이다. 상하의 분리가 없고 모자까지 달린 점프수트 모양의 아우터인데 (노르웨이어로 vinterdress; '드레스'라고 하는데 유일한 의미가 이 일체형 겨울 아우터이다), 방수도 잘 되고 잘 더럽혀지지도 않으면서 보온성도 뛰어나다. 이 '드레스'를 입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잘 포장되어 있어서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달려가곤 한다.




(4)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잡화: 모자, 목도리, 장갑, 양말


Pannebånd의 예시. 출처 garnstuio.com

아무리 옷을 잘 껴입었더라도 잡화를 제대로 장착하지 않으면 손발이 얼고 귀가 얼고 목에 바람이 솔솔 들어와 덜덜 떨기 십상이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털모자의 중요성인데, 털모자나 비니를 패션으로 쓰고 다니는 한국과는 달리 여기서는 귀와 머리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털모자가 겨울의 절대 필수품이다. 초겨울과 초봄에 여성들은 모자가 아닌 이마/귀 가리개 (노르웨이어로는 pannebånd; 직역하면 '이마 띠' 이다)를 쓰는데 아주 유용하고 저렴한데다 뜨개질로 만들기도 쉬워 널리 사랑받고 있다. 


털모자와 목도리, 양말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울 함량이 얼마나 높은지이다. 누구나 이를 필요로 하다보니 특히 울 양말은 겨울에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가까운 노르웨이인 지인이 있다면 양말 선물을 해보자. 세상을 얻은 듯 좋아할 것이다. 본인은 한국에서 저렴한 귀여운 캐릭터 양말을 한 보따리 사가지고 와서 시댁 식구들에게 무슨 때마다 선물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반응이 아주 좋다. 

bøff의 쓰임새. 출처는 nameon.no/boff

목도리가 치렁치렁하여 불편하고 울 함량이 높아 따갑다면, 혹은 운동을 하러 간다면 메리노울 함량이 높은 얇은 원통형의 워머 (노르웨이어로는 bøff; 주로 넥워머로 사용하는데 쓰임새가 많다) 를 지참하면 좋다. 산책 중 몸은 따뜻한데 코와 볼이 많이 차가워진다면 그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하기 아주 유용하고, 목도리가 필요하지 않을 때 쉽게 들고다니면서 사용하기 좋다.


가능한 동물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치품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얼마 전 끝끝내 구매하고 만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가죽 벙어리 장갑. 장갑은 아무리 울 함량이 높다 해도  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너무 추웠고, 눈이 닿았을 때 너무 잘 젖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앞으로 수 년간 잃어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쓰겠다고 다짐하며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었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더이상 손 끝이 차갑지 않아 양에게 진심으로 너무 고마웠다.

장갑을 산 날 내가 남편에게 보낸 메시지. 



노르웨이의 긴 겨울을 나는 데 있어 울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템이다. 한 두 해 살다보니 어느새 옷장 안에 두꺼운 울 내복, 데일리용 울 내복, 스키 등 야외 활동용 울스웨터, 얇은 도시용 울 스웨터 등 양모로 된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격리를 시작한 작년 부터는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울로 만든 아이템들이 그득히 쌓여가고 있는데 그것이 마치 큰 자산인 것처럼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제 나는... ㄷㅓ이상.. 춥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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